스승-하녀-연인, 액션-코믹-멜로, 정소민 연기의 잠재력(‘환혼’)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tvN 토일드라마 <환혼>은 연기자들에게는 쉽지 않은 작품이다. 일단 사극 배경이 그렇다. 물론 <환혼>은 ‘역사에도 지도에도 존재하지 않는’ 대호국이라는 가상의 시공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흔한 사극의 연기 레퍼런스들이 별 쓸모가 없다. 사극 특유의 어법은 때때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무시된다. 머리 스타일이나 의복도 마찬가지다. 짧은 머리에 한복을 응용해 만든 의상도 우리가 익숙하게 봐왔던 사극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래서 언뜻 보면 중국의 무협을 재해석한 작품처럼 보이는 면이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은 무협과 흑마술 같은 판타지가 더해져 있는 게 특징이다. 실제로 박씨 집안이 이끄는 송림과 대호국 최고 의료기관 세죽원, 진귀한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는 진요원, 천기를 살피고 기록하는 천부관, 천부관 관주인 장강과 그 아들 장욱(이재욱)이 이끄는 장씨 집안, 서율(황민현)이 이끄는 서씨 집안 그리고 왕실 이렇게 무협의 세계를 재해석해놓은 듯한 세계관 안에서 사건들이 펼쳐진다.

이 작품의 연기가 쉽지 않다는 것은 낙수로 불리는 살수였지만 환혼해(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가) 몸종 무덕이가 된 인물을 연기하는 정소민만 봐도 알 수 있다. 혼은 낙수이지만 몸은 무덕이인 두 인물이 하나로 겹쳐져 있기 때문에 정소민은 두 인물을 오가는 역할을 연기해야 한다. 즉 낙수로써 장욱을 가르칠 때는 사부가 되어 지엄한 목소리를 내야하고, 또 타인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몸종 무덕이 될 때는 구수하고 우스꽝스런 사투리를 해야 한다.

물론 처음 사부의 목소리에서 몸종의 목소리를 오갈 때는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진 면이 있었다. 그건 우리가 익숙하게 사극에서 봐왔던 어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츰 이런 화법의 전환이 익숙해지면서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사부로서 카리스마를 드러내다가 세자 고원(신승호) 앞에서 영락없는 몸종의 사투리를 쓸 때 긴장을 무너뜨리는 방식으로 웃음을 주기 시작했고, 거꾸로 그렇게 허허실실해보이던 무덕이가 장욱을 구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질 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사부의 모습을 더 강렬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사부와 몸종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 인물은 이제 장욱의 연인이 되어가는 모습도 보여준다. 장욱이 길주(최지호)에 의해 환혼된 줄 알았다가 무사하다는 걸 알게 된 무덕이가 장욱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그렇다. 게다가 무협 서사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서율, 고원이 모두 무덕이에 조금씩 마음을 빼앗기는 4각 구도도 만들어졌다. 사제 케미로 시작했고 그러다 주종 관계에 연인 관계까지 동시에 뒤섞인 연기를 정소민은 갈수록 천연덕스럽게 해내고 있다.

게다가 낙수나 무덕이는 모두 태생의 비밀을 각각 갖고 있는 인물들이다. 낙수는 과거 아버지를 죽인 송림의 술사들에 대한 복수심으로 진무(조재윤)에 의해 살수로 키워진 인물이지만, 그는 드디어 알게 됐다. 사실 진무가 아버지를 환혼시켜 폭주하는 걸 송림의 술사들이 막은 것이고, 그렇게 아버지를 이용하고 버린 것처럼 자신 역시 속여 살수로 키워진 후 버려지는 처지에 놓였다는 걸 알게 된 것.

한편 무덕이는 진요원을 이끄는 진호경(박은혜)이 찾고 있는 잃어버린 첫째 딸이 아닐까 추정되고 있다. 진씨 가문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진요원 동굴의 문이 저절로 열린 것이 이런 추측의 이유다. 즉 정소민은 이제 낙수와 무덕이라는 두 인물에게 얽힌 태생의 비밀까지 풀어나가야 하는 연기를 선보여야 하는 상황이 됐다.

흥미로운 일이지만, 이런 쉽지 않은 연기의 난관들은 오히려 그간 제대로 끄집어내지 않았던 정소민의 잠재력을 꺼내주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이건 마치 이 드라마에서 기문이 막혀 술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하고 술사로서의 잠재력을 드러내지 못했던 장욱이 죽을 위기에 계속 던져지면서 하나씩 기문을 열고 잠재력을 꺼내는 그 과정을 닮았다. 그래서 적어도 정소민에게는 <환혼>이라는 작품이 남다른 의미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무협 액션에 코미디 그리고 멜로 연기까지 펼칠 수 있는 장이 열린 것이니.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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