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사냥’의 이 서늘한 공포는 어디서부터 생겨났나

[엔터미디어=정덕현] 총성 한 방에 이어 어딘가에서 들린 듯한 사람의 비명소리. MBC 월화드라마 <멧돼지사냥>에서 영수(박호산)는 동네 친구들과 멧돼지사냥을 나갔다가 흔들리는 풀숲을 향해 총을 쏜 후 걷잡을 수 없는 불안 속에 빠져버린다. 순간 사람을 쐈다고 직감했지만, 마침 나타난 친구 앞에서 그저 얼버무리고 그 자리를 떠났던 영수. 하지만 그날 밤 아들 인성(이효제)이 귀가하지 않고 결국 사라져버리자 영수는 자신이 쏜 게 혹여나 아들이 아닐까 하는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다.

아들을 쐈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그걸 확인하지도 않고 현장에서 도망쳤다는 죄책감. <멧돼지사냥>이 영수라는 인물을 통해 그리려는 공포는 <전설의 고향>이나 <여고괴담> 같은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나, 살벌한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범죄스릴러의 공포와는 사뭇 결이 다르다. 그건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사건을 계기로 스멀스멀 피어올라온 불안과 그것이 영혼을 잠식해가면서 만들어지는 파국을 바라보는 공포다.

물론 사냥을 나갔다가 총 한 방을 쐈을 뿐이고, 마침 아들이 사라져버리는 오비이락으로 자신이 아들을 쏜 게 아닐까 생각하는 건 너무 지나친 과잉일 수 있다. 하지만 불안이란 그렇게 별 맥락이 없는 것이고,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이유가 존재해야 꼭 생겨나는 그런 것도 아니다. 가만히 있는데도 피어오르고, 일상을 온통 뒤집어 놓을 수도 있는 것이 바로 불안이라는 것.

그렇다면 무엇이 영수로 하여금 이런 불안감을 증폭시켰고, 나아가 이 사건은 앞으로 마을 전체에 어떤 사건들을 불러일으킬까. 아직 사건이 전개되지 않았지만, 지금껏 밑그림으로 그려놓은 이야기들의 단초들을 엮어보면 대략의 예상치가 그려진다. 영수가 갑자기 로또에 당첨되어 큰돈을 벌었다는 사실과 아들 인성이 함께 사라진 현민(이민재)과 모종의 불편한 관계(아마도 학폭 같은)를 겪었을 거라는 사실이 그것이다.

로또 당첨으로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영수지만, 사실 이런 돈벼락은 그간 같이 없이 살아 서로 도우며 지냈던 친구들 혹은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에 어떤 균열을 예고한다. 그간 고생을 많이 했고 그래서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던 영수였다. 그러니 그가 로또에 당첨됐다는 사실을 마을 사람들은 겉으로 축하하지만 은근히 시샘하는 모습도 보인다. 부유하지 못한 농촌마을. 영수의 로또 당첨금은 그래서 불행과 불안의 씨앗이 된 게 아니었을까.

영수가 불안에 시달리는 걸 알고 있는 그 누군가가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걸 알고 있다고 협박하는 상황은, 그저 불안에 불과했던 일이 향후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사건으로 비화되는 단초가 된다. 불안이 사건으로 번져나가고 이로 인해 정겹게 느껴졌던 마을이 살벌하게 변화해가는 과정은 그래서 <멧돼지사냥>이라는 농촌스릴러물이 그려내려는 새로운 결의 공포다.

과연 영수가 갖게 된 이 불안은 어떤 사건들로 번져나갈까. 그리고 영수는 이 과정을 거치며 어떤 진실과 실체를 마주하게 될까. <멧돼지사냥>은 이런 궁금증들을 내세워 이런 일들이 언제 어디서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어쩌면 이 드라마가 만들어내는 진짜 공포가 아닐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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