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보컬리스트들의 맹활약
[엔터미디어=노준영의 오드아이] 얼마 전 주말에 우연히 가요 순위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사실 주말에 이런 저런 활동들로 밖에 있다 보니 오후 시간에 하는 이런 프로그램들을 볼 기회가 자주 없었는데, 때마침 일 때문에 정해놨던 약속이 상대방의 급한 용무로 깨진 상태였다. 프로그램을 보며 난 상당히 모르는 가수가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여전히 아이돌 그룹은 많았다. 홍보를 위해 저마다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딱히 생각한 대로 안 풀리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대세가 저물어 간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가장 편하고 뜨거운 아이템은 아이돌 기획이라는 결론을 지으며 그렇게 시청을 마무리 지었다.
그렇지만 그 후 접속한 음원 사이트에서는 이런 모습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음원 차트 상위권에 올라있는 주인공들은 이적, 성시경, 박효신, 노을, 다비치, 에일리 등 소위 음악 잘하는 보컬리스트들의 음악이었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의 앨범에 수록된 곡이 아닌 O.S.T로 올라있는 것이긴 했지만, 그렇게 많은 아이돌 홍수 속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보컬리스트들의 활약상에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특히 이들 중 이적은 오랜만에 발매한 앨범의 수록곡들을 음원 차트에 줄 세우며 남다른 파괴력을 자랑한 상황, 이쯤 되면 트렌드에 맞서는 보컬리스트들의 도발에 가까운 활약상은 눈부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이 상황을 생각해 보려면 원점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현재 아이돌 중심 음악 시장의 주 소비 계층은 10대와 20대를 가로지르는 선상에 존재한다. 이들을 위주로 한 음악이 생산되고 있고, 대부분의 홍보 활동도 이 세대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들을 위해 주저하지 않고 소비를 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세대는 20대 이상이다. 이런 세대를 위한 음악이 생산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소위 ‘트렌드’라는 단어 뒤에 숨어있는 경향이 강했다. 시간은 가고 우리가 말하는 대세도 변한다. 10대들과는 또 다른 적극성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타겟층에 대한 심화적인 분석이 여태까지는 부족했던 것이다. 성시경, 박효신, 이적 등으로 대변되는 음악의 주소비층이 가진 파괴력을 아이돌을 먼저 생각하는 기획자들이 두루두루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음악 시장은 다양한 장르를 소비하는 계층이 숨 쉬고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홍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건 소위 ‘검색어 순위’를 들락거릴 수 있는 주인공들이고, 때문에 음악 쪽에 중심을 두고 있는 아티스트들은 다소 밀리는 것 같은 인상을 받는 게 사실이다. 물론 이런 상황은 그저 홍보 쪽에서 시끌벅적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 뿐이다. 마치 숨겨진 1mm 처럼 뒷전에 두었던 이야기들은 어쩌면 지배적인 트렌드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상품성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보컬’이라는 단어에 실려 있는 의미도 마찬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사실 음악에서 보컬이 차지하는 비중은 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중요하다. 보컬이 곧 음악의 색깔을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돌 열풍이 불고 난 이후부터 이 보컬에 대한 인지도가 크게 떨어졌다는 데에 있다. 심지어 음악을 들어도 그룹 내부의 메인 보컬과 서브 보컬이 딱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고, 메인 보컬의 존재감이 그다지 와 닿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누구나 꿈꾸는 롱런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 계속해서 벌어진 것이다. 기획의 중점 자체가 보컬이나 음악에 있지 않다보니 음악에 대한 무언가를 바라기도 참 어려운 현실이 펼쳐지고 만 것이다.

최근의 상황은 기획에서 발생한 이런 오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아니 뒷전으로 밀렸던 진짜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만드는 것 같다. 이적, 성시경, 박효신, 노을, 다비치, 에일리는 모두 노래라면 빠지지 않은 아티스트들이다. 자신들만의 확고한 보컬 역량을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음악으로 감동을 이끌어 내는 장본인들이다. 이런 아티스트들이 음원 차트에서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중들이 음악에 반응하고, 보컬에 감동하고 싶어 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비주얼을 이용한 보여주기식 기획이 무조건적으로 흥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안무를 이용한 퍼포먼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시대라지만 여기서 보컬 역량이 빠지면 안 된다는 평범하지만 뼈있는 진리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대세보단 다양한 생각들이 공존해야 하는 타이밍이다. 음원 차트의 판도가 소위 잘 먹힌다는 대세만 따라가고 눈만 사로잡으려던 기획이 왜 문제였는지를 말하고 있는 지금이다.
오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라면 더욱 좋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눈만 현혹하려고 하는 음악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살아왔다. 물론 지금도 이런 경향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중들의 냉정한 판단력이 판도를 뒤집고 있는 중이다. 무엇이 먼저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건 이제 기획자들의 몫이다.
칼럼니스트 노준영 nohy@naver.com
[사진=뮤직팜,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FNC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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