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다해본 ‘1박2일’의 절묘한 선택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오는 12월 1일 첫 방송을 앞둔 KBS 2TV <해피선데이-1박 2일 시즌3>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꽤 오랜 기간 서서히 영향력이 줄어들었지만 한때 ‘국민 예능’이라 불렸던 영광스런 시절에 대한 기대가 여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케이블 채널의 약진과 관찰형 예능이라는 다음 트렌드가 도래한 지금, 그 전 세대인 <1박 2일>이 어떻게 적응 변화해갈지 그 생존 전략이 궁금한 것이다.

이와 함께 체면이 땅에 떨어진 KBS 간판 예능 프로그램의 부활을 위한 마케팅과 홍보에 열을 올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방식이다. 출연진은 철저하게 뒤로 빠지고 담당 PD인 유호진과 이미 유명해진 서수민 CP가 나선다. 관련 기사가 엄청나게 쏟아지지만 모두 PD의 말이나 의지를 담은 기사들이다. 시즌3을 소개하는 알리는 기자간담회에도 이 둘만 나왔다. 베일에 가려졌던 신입 멤버들을 다 공개되고 난 시점이지만 ‘연예인’인 출연자들은 프로그램과 관련해서 그 어떤 인터뷰나 코멘트도 찾아볼 수 없다.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모으는 무기로 제작진을 대표하는 PD를 전진 배치한 것이다.

출연진이 아닌, 스타PD도 아닌 PD로 마케팅을 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변화다. 특히 PD의 유명세와 프로그램의 성과가 정비례 하면서 누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누가 제작하느냐가 중요해진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이는 김태호PD를 시작으로 유호진PD의 직속 선배인 이명한, 나영석PD 등이 만든 성공과 예능의 프로그램의 제작방식과 포맷 자체가 변화한 것에서 나온 흐름이다. 이제 프로그램이 성공하면 PD는 스타가 된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추게 되어 다음 활동으로 이어진다. 마치, 톱스타들의 티켓파워와 같은 것이다.

예능이 계속해서 현실과 접점을 찾고, 출연진의 역량보다 리얼을 더 극단적으로 파고드는 장치와 정서가 더 중요해지면서 예능 제작진은 드라마의 작가들이 그러했듯 스토리텔러이자 전지적 위치에 올랐다. 게임이나 쇼, 대본에 의한 진행을 넘어서 캐스팅단계부터 디테일한 설정과 상황에 따르는 임기응변, 그리고 재치 있는 편집 등과 같은 기본 역량이 중요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기술적인 사안을 넘어 아빠와 아이가 여행을 간다, 연예인이 실제로 군대를 간다, 할아버지 배우들을 데리고 배낭여행을 간다와 같이 단 하나의 결정적인 콘셉트를 내놓는 게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 그래서 이런 기획을 한 PD(제작진)가 누구인지가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홍보하고 몰입하게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왜냐하면 오늘날 예능은 유대감 등의 정서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정서를 향유해 시청자들과 교감을 마련해야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다. 제작진의 역할은 출연자들이 잘 녹화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만들어주는 것을 넘어 방송과 현실의 경계에서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을 돕는 통로 역할로까지 확장됐다. 예전 쌀집 아저씨로 유명했던 김영희PD나 김태호PD가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뒤에서 모든 걸 조율하는 빅브라더와 같은 능력으로 시청자들의 환호를 받았다면, 나영석PD는 방송의 한 구성요소로 들어와 친근함으로 다가온다. 방송 속에서 난처해지고, 골탕 먹이고, 또 때에 따라 출연자들과 이합집산을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거의 브레히트적인 장치다.

요즘 많은 예능 PD들이 화면 안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원하는 만큼 스타가 되지 못하는 요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1박2일><꽃보다 할배>에서의 나영석 PD처럼 시청자들이 단순히 방송을 ‘보는’ 게 아니라 함께 여행하고 ‘노는’ 것처럼 만들어야 하는데, 텔레비전에 내가 나와서 정말 좋을 뿐 아무런 장치로서의 효용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다해본 <1박 2일>(그럼에도 버릴 수 없는 KBS 예능의 정수를 담고 있는 간판 프로그램이다)은 강호동을 다시 데려오는 대신 제2의 나영석PD를 만들려고 한다. 예전 영광의 시대를 함께한 주역이자 선배요, 현재 가장 탄탄한 브랜드파워를 갖춘 나영석PD를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개그콘서트>로 이름난 서수민CP의 지원사격 하에 차태현이나 김주혁이 아닌 과거 신입PD시절의 어수룩함이 각인된 유호진PD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어수룩한 이미지가 남아 있어 친근하지만 아직 능력은 검증받지 못한 인물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바닥에서 시작하는 마이너 정서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고, 출연자들이 서서히 캐릭터를 잡고 성장하는 것과 함께 성장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모든 걸 새롭게 출발해야 하는 <1박2일>에 어울리는 조합이고, 시청자들의 감정이입의 벽을 낮춰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캐스팅이다.

서 CP는 "바닥부터 시작하는 프로그램으로 시작하자"며 "시즌3 변화의 중심은 유호진 PD가 키를 잡았다는 것과, 그를 바라보는 6명의 새로운 캐릭터가 <1박2일>이라는 일상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 PD와 새 멤버들이 만들어 가는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달라"고 당부했다.

이 말이 바로 세 번째 시즌을 위해 마련한 <1박2일>의 핵심 전략이다. 다시 말해 복불복 게임으로 대표되는 리얼 버라이어티의 기존 틀도 가져가지만 그보다 새롭게 부상한 흐름에 발을 맞추겠다는 것인데 전통은 어느 정도 가져가 돼, 아직 능력 검증이 안 된 젊은 PD와 인지도가 부족한 멤버들이 밑바닥에서부터 성장하는 새로운 스토리를 쓰겠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미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유호진PD다. <1박2일>만의 힘을 “리얼함 속에 시청자들과 소통하는 진심”이라고 정의한 그는 시청자들과 소통을 담당해야 하는, 그 어떤 출연자보다 막중한 임무를 띠게 되었다. 제2의 나영석을 배출할 것이냐, 아니면 <1박 2일>이 그냥 저무느냐는 가혹하지만 유호진PD의 가녀린 어깨에 달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CJ E&M,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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