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스타들이 자리를 못 잡고 돌아가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이번 주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한 힙합듀오 언터쳐블의 슬리피는 어차피 최민수 곁가지로 나온 거, 이리저리 곁눈질을 하다 포기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졸았다. 그 순간 상황이 변했다. <스타골든벨> 이외의 예능 출연이 전무하고, 토크쇼가 처음인 그가 어쩌다가 의도치 않은 눈치 보는 캐릭터로 반짝반짝 떠올랐던 것이다. 힙합을 한다곤 하지만 들어본 이는 없다고 하고, MC들이 아는 거라곤 화요비의 예전 남자친구라는 것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의 순수한 힙합 정신과 다소 절박한 엔터테이너로서의 상황이 맞물리고 여러 협찬사와 주변인들의 갈망에 힘입어 빵 터졌다.

규현은 신기함에 눈을 떼지 못했고, 김구라는 동향 후배라는 점까지 작용해 모처럼 크게 웃었다. 윤종신은 진귀한 캐릭터의 출현이라며 눈치 보며 랩을 하고, 모든 면에서 2% 부족한 듯한 그의 여러 재미난 지점들을 꼬집었다. 실제 1박 2일 동안 ‘슬리피’는 실시간 검색어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사람들은 그의 활약상들을 모은 동영상을 보면서 새로운 캐릭터에 신나했다.

그러고 보면 지난 주 조세호로 돌아온 양배추도 히트했었다. 최홍만 성대모사와 더원의 모창으로 배꼽을 아주 잡아 빼더니 김구라 성대모사에서는 그간 울분과 한, 그리고 김구라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진한 페이소스를 끌어냈다. 물론 워낙 친밀한 선후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김구라도 너무나 흡족해했다. 흡족한 건 김구라뿐만이 아니다. 그간 웃음이 터지는 측면에서 서서히 빨간불이 들어오고 있던 <라디오스타> 제작진도 흡족할 만 했고 관련 ‘짤방’과 동영상들이 널리 퍼지며 조세호도 흐뭇한 상황이 이어졌다.

그런데 세상살이가 팍팍해지는 건 예능에서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문제는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는 것도 맞지만 하루아침에 또 사라진다는 것이다. 예전만큼 더 이상 반짝 스타의 출현이 잦질 않다. 아니, 거의 매주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지만 다음 인물이 나타나기 전에 잊힐 정도로 오래가지 못한다. 한때 토크쇼가 주를 이루던 시절 김정태, 김갑수, 손병호, 김응수, 권오중 같은 인물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조정치나 존박이 그런 경우다.



하지만 모두 자신의 신선한 캐릭터가 익숙해지는 지점에서 모두 영향력이나 재미가 반감되다가 이내 사라졌다. 조정치는 스스로 이 모든 인기와 관심이 거품임을 알고 있다고 했지만, 그 거품을 오래 유지시키기 위한 전략을 선보이지 못했다. 그냥 운명을 즐기고 받아들였다. 워낙 모든 유행이 빠르게 소비되는 사회이다 보니 신선함의 유통기한은 갈수록 줄어들고 막을 길은 노출을 조절하는 것 외에 사실 없는 상황이다.

반짝 스타들이 자리를 못 잡고 사라지는 이유는 점점 인스턴트화 되어가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지만 스스로 웃음을 창출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캐릭터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캐릭터는 롱런하기 힘들다. 알다시피 지금 예능의 대세는 관찰과 일상이다. 누구나 아는 예능선수라는 익숙함이 있거나 실제 사는 모습 속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다가가거나 해야 하는 시대다. 그러니 다른 예능 선수들이 바라봐주고 긁어줘야 하는 ‘신선함’ 하나만으로는 더 이상 성공하기 힘들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게 웃겼던 조세호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최근 토크쇼로 뜨는 반짝 스타들이 딱히 없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다.

그런 점에서 KBS <해피선데이-1박 2일> 등에 고정 출연하기 시작한 데프콘은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그 또한 단발성 게스트로 출연해 인지도를 서서히 올려간 케이스이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오랜 시간 수많은 라디오와 케이블을 통해 다져진 입담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MC들이 그에게 주목하지 않아도 스스로 치고 나올 수도 있고 웃음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데프콘이 기회를 꽉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이른바 자기역량이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신선한 캐릭터로 소비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입담을 선보일 기회를 잡은 것이다.



슬리피는 레이디 제인이 <라디오스타> 방송 후 고정 프로그램이 3개나 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데뷔 6년 만에 절호의 기회를 마주한 것이다. 다행이 그는 기회를 결과로 만들었다. 며칠 잠을 못 이룰 만큼 초조했던 시간들을 날릴 만큼 임팩트를 남겼다. 하지만 그 효과가 생각만큼은 길지 않을 것이다. 예능에서 사랑받기란 훨씬 더 복잡해졌고, 훨씬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빨리 잊혀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이 정도 선에서 만족하고 음악으로 다시 승부를 보겠다면 모르겠지만 혹시 예능에서 다시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는 것이다.

눈치 보는 캐릭터를 넘어서 스스로 자기 객관화를 하고 눈물을 머금고 노출을 전략적으로 해야 한다. 그냥 최대한 즐기는 조정치가 될지, 일단 숨고르기를 하는 장미여관의 육중완이 될지, 아예 이쪽 판에서 승부를 보는 데프콘이 될지 선택해야 한다. 확실한 것은 조급증을 경계해야 한다는 거다. 지금은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는 것조차 능사가 아닌 각박한 시대인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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