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데프콘, 유재석 소변발 제대로 받았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데프콘은 다가올 새해의 만사형통을 위해 집으로 찾아온 유재석에게 소변을 한번만 봐달라고 사정했다. MBC <무한도전> 섭외 차 찾아온 유재석에게서 국민MC의 정기를 받겠다는 것인데 그 소변발이 벌써부터 통한 듯하다. 지난 금토일, 점점 잔잔해가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KBS에 번쩍, MBC에 번쩍하며 단연 돋보인 이는 바로 예능 대세 데프콘이었다. 금요일 밤 MBC <나 혼자 산다>부터 시작된 데프콘의 행진은 토요일, ‘대포폰’으로 존재감을 알린 <무한도전>에서 봉오리를 맺더니 일요일에 새로운 터전인 KBS의 <해피선데이-1박 2일>에서 만개했다. 전통의 <무한도전>과 일요예능의 중심에 모두 그가 있었던 것이다.
이제 세트장에 가까울 만큼 익숙한 그의 집과 추래한 차림새는 그 자체로 웃음을 자아낸다. <나 혼자 산다>에서 보던 익숙한 그의 집에 <무한도전>의 유재석이 찾아왔고, 이 둘이 지난 주 <무도>의 대부분의 재미를 만들어냈다.
<무도>는 원래 멤버들의 관계망에서 오는 에너지와 스토리텔링이 이어져 전통과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 요즘 바로 이 멤버들 간의 시너지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이번 주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못친소’ 특집의 후속에 가까운 ‘쓸친소’ 특집을 준비한다는 전통과 연속성이라는 큰 서사는 이어가고 있지만 단 한 회만 잘라서 봤을 때 재미의 함량은 예년만 못하다. 멤버들만으로는 그림들이 뭔가 아쉽고 에피소드마다, 그리고 지난주의 경우 상황마다 기복도 상당했다. 그래서 ‘쓸친소’의 준비 과정들은 정서적 연대와 지지를 제하고 더 차갑게 바라보면 시리즈와 재탕의 경계에 서 있다고까지 할 수 있을 정도다.
이때 데프콘이 유재석을 받쳐주었다. 동묘앞 개그로 승천한 힙합비둘기가 케프콘(데프콘이 KBS에서 자리 잡으면서 유재석이 붙여준 별명)으로 나타났지만 그는 여전히 분위기 반전을 이끄는 식스맨, 어려울 때 등판해 급한 불을 꺼주는 소방수였다. 데프콘은 오랜만에 공중파를 보니까 반갑다는 지상렬의 집에 찾아가 성인방송국에서 진행하는 <노모쇼>이야기를 꺼냈다. 공중파에서 피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하는 지상렬은 폭발했고, 데프콘은 움찔움찔하고 사과하면서도 이미 출연하고 있는 <슈퍼독>에 나가보라는 말을 진심으로 덧붙이다 덧났다.
캐릭터의 계보 상 데프콘의 조상이라고 울컥하는 지상렬에게 진심으로 궁금하다며 사연들이 정말 많이 오냐고 마지막으로 너무 궁금하다고 다시 한 번 물었다. 그의 이런 진행은 왁자지껄한 에너지와 활력을 만들어냈다. 지상렬은 울분에 빠져 예의 그 막무가내 멘트를 터트렸고, 누군가는 말려야 했다. 이렇게 중재가 필요한 상황에서 웃음을 뽑아내는 것을 유재석보다 잘 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 없다.

그리고 다음날 <1박2일>은 아예 데프콘이 주인공으로 나섰다. 일요예능의 판도를 주도했던 경쟁작들이 관찰형 예능의 소포모어 징크스를 앓고 있을 때 그는 수염 하나로 웃음을 터트린 것은 물론, 새 시리즈에 대한 호감을 만들어냈다. 그가 마주한 면도 미션은 사실 어제 방송에 등장한 여러 미션수행 중 하나였지만 데프콘이기에 뽑아낼 수 있는 웃음이자, 리얼한 벌칙과 게임으로 대표되는 <1박 2일>의 정수를 오랜만에 느낄 수 있는 명장면이었다.
요즘, 1900년대 초중반 빈티지 패션이 유행하면서 포마드와 리젠시컷 등으로 대표되는 이발소의 남성 문화가 각광받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이발소라 하면 오래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추억 혹은 과거의 장소다. 여기서 데프콘은 47년 경력의 장인의 손길을 느껴야 미션을 통과할 수 있었고 그 까닭에 20년 만에 수염이 밀렸다. 여기까지. 어색한 얼굴을 보고 웃고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 모습 자체가 웃기기도 했으나 백미는 나이 지긋한 이발사 선생님과 데프콘의 주고받기와 망설임이 만들어내는 초조함이었다. 거기에 차태현의 리액션이 더해져 <1박 2일>의 최고의 재미를 만들어냈다.
이발소에서 원맨쇼로 웃음을 만들어냈다면 점심식사 미션에서는 그의 예능감과 진행 능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제작진은 점심밥을 공짜로 준다며 휴게소로 초대했다. 휴게소 식당 한 편을 고급 레스토랑처럼 꾸미고 코스 요리를 제공했다. 실제 연주자들이 클래식 음악들을 연주하고, 개그맨 류근지가 웨이터로 등장했다. 모두가 분위기에 도취되어 있을 때 데프콘은 다른 멤버들과 달리 제작진의 의도를 간파하고 류근지와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때로는 연주자들에게 그만하라고 호통을 치고 때로는 답답해 스스로 서빙을 하면서 분위기를 이끌고 미션을 웃음으로 매끄럽게 연결시켰다. 이번 멤버 구성원 중 가장 예능감이 틔어 있는 인물이란 걸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랬다. 지난주 <무한도전>이나 <1박 2일>의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에는 모두 데프콘이 있었다. <무도>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주 분량은 다음 주를 위한 분량이었고, 그 한편의 예능 방송으로서의 재미는 부족한 편이었다. 그나마 데프콘이 등장하면서 웃을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고공행진 중인 <1박 2일> 시즌3의 엔진이 데프콘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다소 어려운 미션이 주어진 날이라 웃음을 출연자 개인의 역량에 의존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 바로 그때 데프콘이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치고 나온 것이다.
데프콘 아버지의 말씀대로 외모만 강호동이 아니라, 더 이상 감초역할만이 아니라, 흐름을 잡아주고 이끌어가는 데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 모든 것의 근간이 바로 오랫동안 쌓아온 호감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다소 센 외모임에도 호감 캐릭터로 예능에 안착하게 된 것은 <무도>에서 오랫동안 보여준 친밀함, <나 혼자 산다> 등에서 보여준 인간적인 면모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 위에서 예능감이 터져주니 사람들이 더 쉽게, 더 편하게 생각하고 이는 데프콘을 웃음의 아이콘의 자리에 올려놓게 만든 것이다. 그 결과, 지난주에서처럼 보다시피 데프콘은 두 방송사의 간판 프로그램들을 휘저을 정도로 대세 중의 대세가 되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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