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네 살 서연이는 환하게 웃을 수 있었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스틸컷] 어떻게 그 상황 속에서도 서연이는 환하게 웃을 수 있었을까. 이제 고작 네 살. 무려 13번째 수술이란다.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안타까워 뭐라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서연이의 엄마와 아빠를 위로해준 건 오히려 그 네 살짜리 아이 서연이었다. 손을 흔들어주고, 두 손을 모아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서연이. 어른들도 참기 어려운 병원생활(거의 대부분을 병원에서 지낸)에서 이제는 병원이 자기 집이라고까지 말하는 이 어린 아이를 지탱해준 놀라운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병원에서 장난치고, 아장아장 걸으며 까꿍 놀이, 숨바꼭질을 하는 서연이는 천상 아이다. 그런데 그 아이의 절친이 간호사라는 것, 그 자유로운 아이의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주사실로 가서 주사로 대신 영양을 공급받아야 하는 서연이는 온 장기에서 출혈이 생겨 위장 전체를 도려내고 십이지장, 소장까지 수술한, 병명조차 알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는 아이다.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없어 심지어 희귀병 지원조차 받지 못하는.

자신을 서연이 아니라 '아야'라 부르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오죽할까. 서연이 때문에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쌍둥이를 맡겨놓고 찾아보지도 못하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무려 열 번씩이나 주사바늘을 찔려야 하는 아이 때문에, 목에 주사 맞는 건 싫다며 팔을 내밀고 울어대는 아이의 온 몸을 어쩔 수 없이 손으로 꼭 붙들고 있어야 하는 그녀는 그래서 스스로를 '나쁜 엄마'라 부른다. 그게 싫어서 '아야'를 꼭 껴안으며 "어우 미워"하고 말하면 아야는 거꾸로 "엄마 이뻐"하고 말해준다. 심지어 "엄마 미안"하고 말해준다.

"피 맞고 피 뽑고 집에 가자"는 엄마의 말이 거짓말이 될 것이라는 걸 알면서도 "응"하고 말해주는 서연이. 같이 살자는 쌍둥이들에게 "열 밤만. 열 밤만."하면서 세 달 네 달이 되고 3년이 다 되어버린 그 엄마의 말에도 별 탈 없이 묵묵히 기다려주는 서연이의 언니와 오빠. 수술실에 들어가는 아이를 두고 또 일터로 가야만 하는 서연이 아빠. 이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조금씩 참아주면서 함께할 날들을 기다려 주는 것. 이것이 이들이 사랑하는 방식이다.

의사들조차 병명도 모르고 갑작스런 출혈의 원인도 모르는 그 막막함 속에서 엄마가 믿는 건 오로지 서연이인 것처럼, 그들은 그 힘겨운 시간들을 사실은 서로를 믿으며 버텨내고 있었다. 서연이의 온 몸에 꽂힌 주사바늘과 주렁주렁 매달린 줄들이 힘겨우면서도 서연이를 버텨내게 해주는 것처럼, 서연이에게 웃을 수 있는 힘을 주고 가족들에게 희망을 놓지 않게 하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믿어주고 기다려주는 그 마음 때문이다.

힘겨운 나날들을 지내고 그토록 꿈꾸던 언니 오빠와 유치원에도 가게 된 서연이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가족들에게 힘을 주고 그들을 다시 이어주는 끈이 되기도 한다. 서연이 엄마는 이제 겁내거나 울지 않는다고 한다. 그녀는 용감한 서연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유치원에서 엄마랑 떨어져 있다는 사실에 울 때도 언니 오빠들은 서연이의 고사리손을 꼭 잡아주었고, 오랜 병원 생활에 서먹해진 엄마 아빠 사이를 다시 이어준 것도 서연이였다.

물론 언제 다시 병세가 나빠질 지 알 수 없다. 병명조차 아직도 모르는 상황이니 말이다. 그래도 이 가족은 매일 마당에 돗자리를 펴고 푸르른 5월을 보낸다고 한다. 하루 하루가 아깝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어떤 고통 속에서도 함께 하는 한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이 가족은 알기 때문이다. '휴먼다큐 사랑-엄마 미안' 편의 서연이 보여준 건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 절망 끝에서도 환하게 웃어줌으로써 서로를 일으켜주는 가족의 힘이었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