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 KBS 예능 베끼기 논란 잠재우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한편의 드라마였다. 접전이 펼쳐진 경기 내용도 그랬고, 성장해서 정점에 치달은 예체능 팀의 능력도 그랬다. 거기에 제작진의 편집과 자막은 아마추어 농구경기를 한일전 드라마로 만들어냈다. 한일전의 긴장감, 최강창민을 보러 25: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만원 관객은 이 드라마의 열기를 활활 지폈다. 일본 현지 관중들은 최강창민의 팬으로 찾아왔지만 이내 일본인이라는 역할 갈등에 빠져버렸다. 상황에 따라 양팀 모두에 보내는 열화와 같은 응원은 홈팀과 원정팀의 구분을 무너뜨리면서 오히려 분위기를 훨씬 더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이번 경기는 <우리동네 예체능>의 지향점을 보여주었다. 성장과 감동, 그리고 스포츠가 만들어내는 드라마가 모두 있었다. ‘강호동의’ 라는 부분만 빼면 애초 기획의도에 충실히 부합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이번 한일전은 그 어떤 예능적 장치를 활용하지 않았다. 캐스터 등의 중계진도 없었고 웃음을 주기 위한 석주일 코치와 같은 인물은 일본팀 후보 선수 개그맨 외에 없었다. 사람 좋은 얼굴을 한 최인선 감독과 우지원 코치 등 우리나라 농구의 전성기를 마련한 국가대표 출신 코치진은 승부 앞에서 냉정하고 집요했다. 경기 상황에 맞게 바로바로 지시하고 소리쳤다. 하프타임 때 줄리엔을 위한 더블 스크린 작전을 마련하고 실수가 나오면 표정이 굳어졌다.

선수들은 각본 논란 따위가 나올 여지도 주지 않고, 게임에 몰입했다. 그러자 시소게임은 기울었다. 이미 우리나라 동호회 리그에서도 최상위 멤버라 할 수 있는 김혁과 줄리엔을 보유한 예체능 팀은 농구 저변이 우리보다 못한 일본 팀을 상대로 17점 차의 리드를 가져왔다. 그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농구 구력이 짧은 줄리엔은 훨씬 센 힘을 갖고도 상대팀 박스아웃과 디나이 수비에 공 한 번 못 잡았다. 이때 예체능의 또 다른 스타 김혁이 다시 한 번 높게 떠올랐다. 르브론 제임스처럼 득점과 리딩을 모두 담당하는 에이스의 부상. 고질적인 발목을 접질렸지만 이내 테이핑을 하고 나오는 투지를 발휘한 것이다. 고난. 드라마의 1막인 셈이다.



제작진은 이 드라마에 집중했다. 일본 현지 팬들의 기대와 달리 철저하게 농구에 의한, 농구를 위한 편집을 했다. 프로그램의 간판인 강호동의 분량은 물론 후보 선수인 최강창민을 딱 후보 선수만큼만 비춰졌다. 어렵게 모셔왔을 주연배우 이정진도 조연에 머물렀다. 대신 김혁의 활약과 후반 전 골밑을 지배한 줄리엔, 3점 슛을 연달아 4개 퍼부은 서지석의 부활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김혁이 발목 부상에도 불구하고 수비 리바운드를 잡자마자 비하인드 백드리블을 치고 골대로 내달린 후 화려한 볼 페이크와 유로스텝으로 수비수 4명을 따돌리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성장 스토리를 집어넣었다. 3:3 농구의 화려한 플레이를 즐기던 박진영이 그간의 시행착오와 적응 끝에 완벽한 팀플레이어로 거듭나는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화려한 그 무엇도, 경기기록이 쌓이는 슛이나 어시스트, 리바운드도 아닌, 농구를 아는 사람들만 알아주는 궂은일을 도맡았다. 상대팀 슈퍼 에이스 5번을 전담 마크해 침묵시키고, 농구를 모르는 줄리엔이 골밑에서 자리를 잡도록 끊임없이 양질의 스크린을 선사했다. 한류의 수장 중 한 명인 JYP를, 뉴욕의 화려한 밤이 어울리는 그를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건 일본 팬들에게도 특이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예체능 팀의 성장을 확인하는 드라마의 제 2막이 펼쳐졌다. 경기막판 크게 뒤지고 있던 일본팀은 일본인 특유의 근성을 드러냈다. 코트 내에서 전방위 압박수비를 펼쳤는데 농구 구력이 짧은 예체능 멤버들은 당황했고, 김혁 외에 패스조차 뿌리지 못했다. 그렇게 실책과 가로채기, 거기에 놀라운 일본팀의 집중력이 엮여서 경기 막판까지 승부를 모르는 한 점차 경기가 된 것이다. 승부의 향배가 걸린 드라마의 2막은 쫄깃했다.



원래 <슬램덩크> 같은 만화였으면 불꽃을 사르며 쫓아가는 팀이 주인공 팀이겠지만 어쨌든 현실이 반영되어 더욱 더 리얼 승부가 펼쳐진 드라마가 됐다. 생중계도 아니고 풀 경기 녹화 중계도 아니고, 편집된 화면이었지만 이렇게 경기에 빠져들 수 있었던 것은 스포츠를 스포츠로 대하는 자세와 이것을 예능으로 풀어내는 방식에서의 정공법이 통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경기는 드라마다. 여기에 예체능을 봐온 시청자들에게는 캐릭터가 보이고 성장스토리까지 보이니, 실사판 슬램덩크와 같은 묘미가 가득했다. 예능이지만 스포츠 경기 자체가 예능일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훈련부터 몇 회에 걸친 게임 속에서 우리는 스타의 탄생도 보았고, 존 박, 이혜정 등 롤플레이어들의 캐릭터도 파악했다. 이들이 점점 팀으로 모여드는 과정과 프로그램의 초점 자체도 이수근과 강호동이 진행자의 롤을 맡았던 때보다 훨씬 담백하게 농구로 집중되면서 시청자들도 경기에 더욱 몰입할 준비가 됐던 것이다.

<예체능>도 예체능팀 멤버들이 시행착오를 겪고 성장하듯 큰 틀에서부터 점점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은 침체기지만 농구라는 인기 스포츠를 선택한 것에서부터 무엇을 보여줄지에 대해 선택 결과들이 점점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관찰형 예능과 리얼 버라이어티와는 또 다른 지점에서, <천하무적 야구단>의 계보를 잇는 KBS만의 색다른 장르의 기틀을 마련한 듯하다. 이런 시도가 계속된다면 KBS 예능의 베끼기 논란도 불식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 한일전은 <우리동네 예체능>의 전성기를 기억할 명장면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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