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박2일’ 의외로 시크한 김주혁을 주목하라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김주혁은 의외로 시크하다. 그는 맡았던 배역보다 실제가 더 멋있는 사람이다. 최근 <무신>과 같은 사극을 통해 이미지 변신을 했지만 오랫동안 보통 남자의 범주라 할 수 있는 ‘평범남’ 캐릭터들을 주로 연기해왔다. 그래서 쌓인 이미지일 뿐, 실제 가족관계나 연애사는 오히려 드라마나 영화 속 스토리에 가깝다. 또한 본인 스스로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지 오래 전부터 선수들은 단박에 알아보는 연예계 최고 수준의 취향과 관점을 갖고 있는 패셔니스타로 유명했다.
그의 패션은 비교적 시청연령대가 높은 <해피선데이-1박2일>에 젊은 남성 시청자들이 눈길을 가질만한 새로운 요소다. <1박2일> 첫 회에 입고 나온 데크자켓이나 영구 분장에 쓰인 미군 정비공 모자는 모두 예전 군복을 복각한 일본의 유명 브랜드 제품이다. 그는 내복에도 레이어드를 먼저 신경 쓰고 비니를 살짝 얹어 쓰고 스웻셔츠에 머플러를 두를 줄 아는 남자다. 별것 아니게 보일 수도 있지만 맨투맨티라 불리던 스웻셔츠는 패션피플에게 2013년 최고의 히트 아이템이었다. 따라서 그의 착장은 전혀 튀지 않지만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비밀코드 같은 거다. 40대에 접어든 출연자 중 최고 연장자이지만 옷을 좋아하는 젊은 친구들이 푹 빠져 있는 요즘의 패션문화를 방송에서 자연스럽게 소화한 최초의 연예인이자 새로운 유형의 ‘형’인 것이다.
김주혁은 아는 사람들만 그의 패션을 알아보듯, 알면 알아갈수록 예능감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예능에서 검증되지 않은 그의 캐릭터에 의구심을 많이 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야생을 부르짖고, 두툼한 패딩을 입고 노지에서 뒹구는 <1박2일>에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도시 ‘형’의 출현은 색다른 그림과 재미를 만들어냈다.
‘아침엔 역시 빵이지’라는 지론을 가진 빵형 김주혁은 촌스러움의 인자가 선천적으로 없는 인물이다. 그냥 놓고 봤을 때 왁자지껄하다가 감성코드로 귀결되는 <1박2일>에 썩 어울리지 않는 조각이다. 가장 큰 형이지만 나서서 리드하고 보살피려고 하지도 않고 김승우나 엄태웅처럼 망가짐을 보필 받지도 않는다. 가족주의나 큰형의 역할과 권위 이런 건 크게 없다. 있는 척도 하지 않고 열심히 하는 척도 하지 않는다. 예능 첫 고정이지만 부담감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그가 게임에 열심히 임하는 건 재밌거나 진짜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다.

<일밤-아빠 어디가>의 이종혁과 마찬가지로 예능이라고 특별히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뭐 별것 있겠냐는 투의 태도와 여유 때문인지 모르고 당하는지 알면서 당하는지 모를 정도의 순진함 때문인지 매번 게임에서는 낭패를 면치 못하고, 다른 멤버들이 가위바위보를 작당하고 해서 져도 자신의 운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당하는 캐릭터이긴 한데, 좀 불리하게 돌아가면 샐쭉거리면서 앙다문 입술 사이로 찰진 멘트를 날린다. 가령 예를 들면 음식 복불복 게임을 하다가 사정이 불리하게 돌아갈 때면 “소스에 말아먹게 할 거야” 같은 말을 던지는 데 그것이 차태현의 리액션과 만나 화약처럼 터진다.
김주혁이 재밌는 지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망가지는 것만으로 웃기려고 들지 않는다. 이것이 시즌2 멤버들과 그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그가 간간히 웃음을 터트리는 건 귀요미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부르고 영구 흉내를 내서가 아니라 말쑥한 것 같으면서도 모자라는 것도 같고, 마냥 좋은 형이라고 하기에는 뺀질거리면서 때에 따라 삐질 줄도 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주연배우이자 최고 연장자이면서도 정말 자연스럽게 <런닝맨>의 이광수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데서 인간적인 매력이 샘솟는 것이다. 이는 게임 속에서 캐릭터를 드러내고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모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1박2일>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이며, 김주혁이 숨은 에이스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다.

아니나 다를까, 3번째 여행 만에 <1박2일>팀은 날씨 때문에 급격하게 행선지를 바꾸는 상황을 맞이했다. 사전 준비된 계획이 모두 날아가고 맨땅에 헤딩하듯 촬영했기 때문에 남원 뱀사골 촬영분량의 95%가 게임으로 점철됐다. 나머지 5%는 눈꽃이 핀 지리산 풍광을 스케치한 것이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감안한다 해도 맥락 없이 게임들만 나열되는 쇼는 공감과 스토리가 더욱 중요해지는 요즘 시청자들의 예능 정서에 맞지 않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1박2일> 이번 시즌이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여전히 기대를 갖게 하는 건 김주혁과 같은 새로운 캐릭터를 발굴했기 때문이다.
이번처럼 어쩔 수 없이 게임으로 모든 방송분량을 만들어야 할 때 그의 존재감은 빛났다. 김주혁은 한 마리 학처럼 고고하면서도 할 말 다하고 할 것 다 한다. 말수가 많지 않지만 웃길 줄 알고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면서도 반찬을 얻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며 열창한다. 허당 끼도 다분해서 모든 상황을 다 웃음으로 받아낼 수 있는 스펀지 같다. 데프콘처럼 에너지로 웃기지 않아서 눈에 띄지 않지만 김주혁의 예능은 지켜보면 볼수록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진다. 낯가림이 심해서 그렇지 친해지면 재밌는 사람처럼 꾸준히 지켜본 사람들에게 더 크게 다가가는 웃음이 있다. 조용하면서도 자주적으로 웃음을 창출하는 새로운 유형의 캐릭터이자 옷도 잘 입어서 더 친해지고 싶게 만드는 궁금한 ‘형’이다. 이렇게 김주혁은 숨겨둔 매력을 발산하며 <1박2일>의 재미를 아는 사람들을 늘려가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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