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은 어떻게 원작과는 또 다른 성취를 만들었나

[엔터미디어=정덕현] “나 같은 년이 나와서 제대로 살려면 세상이 한 번 시원하게 망해 주는 게 낫지.” 티빙 오리지널 시리즈 <몸값>에서 주영(전종서)은 갑자기 붕괴된 건물 속에서도 의외로 담대하다. 아니 담대하다기보다는 무언가를 포기해서 주저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그의 욕망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이 조직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 조직은 사람을 잡아와 장기 경매를 한다. 주영은 원조교제를 원하는 이들을 불러들여 ‘경매감’을 포획하고, 장기를 사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장기 부분별 몸값을 흥정하고 거래하는 이른바 ‘몸값 경매사’다. 즉 이곳은 ‘몸값’으로 굴러가는 비즈니스의 세계다. 몸값을 내고 원조교제를 원하는 이들이나, 그들을 붙잡아 장기 경매를 시키는 조직, 그리고 그 장기를 구매하려는 이들로 구성된 세계. 그건 다름 아닌 돈이면 뭐든 사고파는 거래로 굴러가는 자본주의 세상을 극단화해 은유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것과 다를 게 뭔가.

그런데 이 조직에 붙잡혀 제 몸이 팔리게 될 처지에 놓인 형수(진선규)나,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어떻게든 형수의 장기를 사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놓인 극렬(장률) 또 이 거래를 경매를 통해 성사시키는 주영 모두 이 ‘몸값’으로 굴러가는 시스템의 덫에 걸린 이들이다. 주영은 사고치고 들어간 소년원에서 목사에게 붙잡혀 단돈 300만 원에 이 조직에 팔려온 인물이고, 형수는 몸값을 내고 원조교제를 하려다 제 몸이 팔릴 상황에 놓인 인물이며, 극렬은 경매에서 자신이 가진 돈보다 더 높게 낙찰가가 나오자 제 몸을 담보로 잡아 형수의 신장을 사는 인물이다.

이 정도면 차라리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는 주영의 말이 공감되는 부분이다. 그래서였을까. <몸값>은 원작인 단편영화의 이야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진짜 망해버린 세계로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갑자기 건물이 붕괴되고 그 무너진 세계 속에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를 펼쳐 놓은 것이다.

흥미로운 건 세계가 붕괴됐는데도 이러한 몸값으로 굴러가는 욕망의 시스템은 붕괴되지 않고 계속 굴러간다는 점이다. 형수에게 이 조직이 숨겨놓은 70억이 있으며 그걸 찾아서 도망치자 제안하는 주영은 사실상 돈이 목적이 아니라 자신을 그렇게 만든 조직에 대한 복수와 그곳으로부터의 탈출이 목적이다. 그 목적을 위해 형수를 이용하려 한다. 반면 형수는 주영과 공조하지만 그의 목적은 오로지 70억을 차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비규환 속에서 살아남은 극렬은 끝까지 형수에게 자신이 산 장기를 요구한다. 결국 이러한 저마다의 욕망은 어느 한 지점에서 맞물리면서 폭발한다.

<몸값>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욕설들과 극한의 상황에서 부딪치는 광기에 가까운 감정 대립이 엄청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작품이다. 망한 세계를 보여주지만, 망해야 할 것 같은 세계에 대한 공감이 있어 그것이 묘한 통쾌함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원테이크 기법으로 연출된 장면들은 이 현장 바로 옆에서 이들의 동선을 따라가며 그 일련의 과정들을 관찰하고 직접 체험하는 듯한 실감을 만들어낸다. 에너지와 속도감, 현실감이 맞물려 한 번 보면 끝까지 볼 수밖에 없는 몰입감이 생겨나는 이유다.

진선규와 전종서 그리고 장률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는 한 마디로 압권이다. 진선규는 말 그대로 제 영혼을 갈아 넣은 듯한 미친 연기를 보여주고, 전종서는 특유의 광기어린 매력으로 시종일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잡아끈다. 게다가 마치 좀비처럼 죽을 듯 죽지 않고 욕망만이 살아남은 듯한 존재를 표현해낸 장률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에 원작 단편영화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박형수, 이주영이 다른 역할을 맡아 내놓은 연기까지 더해졌다.

무엇보다 상찬하고 싶은 건 <몸값>이 단편영화와 OTT 시리즈라는 그 장르적 차이를 그 리메이크 과정에서 제대로 파악하고 최적화된 작품을 구현했다는 점이다. 단편영화가 단 14분짜리의 분량 안에 마치 세상의 단면을 잘라 보여주는 것 같은 간결하지만 군더더기 없이 날카로운 충격을 안겨줬다면, OTT 장편 시리즈는 여기에 시리즈다운 확장된 세계와 끝없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반전의 반전을 더하면서도 원작이 가진 메시지를 끝내 쟁취해내는 몰입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이 세계는 6회 엔딩 크레딧 끝에 이어진 쿠키영상을 통해 향후 더 넓은 세계로 이어질 수 있는 시즌2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 놨다. 겨우 그 붕괴된 건물에서 빠져나온 이들이 망한 세계의 생존자와 대치하게 되고 주영이 나서서 자신이 갖고 있는 몰핀으로 생존자와 거래를 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세계가 망해도 거래는 계속된다. 한 모텔에서 시작해 붕괴된 건물 속으로 이어졌다 그 바깥으로 나오게 됐지만 <몸값>의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모든 게 거래되는 시스템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티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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