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배려 없는 ‘천원짜리 변호사’에 매길 수 있는 값은 얼마일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마지막 회를 남겨둔 지금 SBS 드라마 <천원짜리 변호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치는 남궁민의 브랜드 단 하나다. 이 드라마가 여전히 13%의 시청률을 거두는 단 하나의 이유이기 때문이다. 정의구현 판타지를 통해 현실의 텁텁함을 잠시나마 해소하고, 기시감을 기반으로 적절한 분노와 이를 승화하는 남궁민의 캐릭터는 다소 뻔할 수밖에 없는 해피엔딩과 권선징악의 식상함을 코믹, 통쾌함으로 퉁 치는 일종의 K-히어로물의 완벽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성공신화를 기록할 것이라 들뜬 와중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시청률이 8%에서 두 자릿수로 수직상승하는 와중에 8화 이후 예고에 없던 특집을 편성해 재정비 시간을 갖더니, 이런저런 이유로 이후 ‘금토 드라마’임에도 주1회 방영 중이다. 게다가 재정비의 결과가 참 난감하다.

현재 방영중인 모든 드라마를 통틀어 손꼽히는 시청률과 화제성을 갖고 있는 흥행 드라마임에도 12회로 축소 방영을 결정했다. 인기가 많으면 어떻게든 늘리는 경우는 있어도 이런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6회에서 8회까지 3회나 털어 넣어 이청아 배우의 열연이 돋보인 플래시백에 할애하면서 극의 메인 갈등구조의 본격화, 서스펜스, 캐릭터의 추동력을 만들었지만 재정비 후 돌아온 9회는 그간 원활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는지 계약된 PPL을 소화하기 위한 곁가지 이야기에 바쳐졌다. 모든 게 낯선 상황인데, 시청자들에게 아무런 설명이나 양해가 없다.
줄이고 주1회 방송하는 이유에 대해 지난 9월 남궁민의 코로나 이슈를 비롯해 이런저런 추측이 떠돌고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 이런저런 가설보다 궁금한 건 극의 후반부가 과연 제작에 들어가기 전에 존재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코믹함과 배우들의 개인기에 의존한 것은 초반에도 마찬가지였으나 재정비를 선언한 이후, 돌아온 드라마는 모든 것이 놀랍게도 튀고 전혀 준비된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연성 있는 전개가 완전히 무너졌다. 통쾌함을 위해 어느 정도까진 감수할 수 있었던 현실성, 핍진성이 아예 사라졌다. 검찰의 수사기법은 한없이 가볍고, 변호사가 하는 일은 만화보다 더 만화적이다. 이후 전개는 마치 8시대 드라마 특유의 우연으로 점철된 인과로 진행된다. 모든 중요하고 비밀스런 순간에 주인공들이 우연히 그 자리에 있다는 식이다. 언제나 갈등의 결정적 순간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고, 사건을 손쉽게 해결할 수밖에 없는 장면과 상황이 늘 주인공 앞에 우연찮게 펼쳐진다. 그 한 예로 검찰의 비밀 수사의 방향과 천지훈 변호사(남궁민)의 활동영역과 언제나 겹친다. 비밀은 언제나 엿 듣는데, 그 자리에 있게 만드는 설계는 우연과 코미디로 당의정을 바른 후 과감히 생략한다.
이야기의 빈틈, 설정의 헐거움이 만든 극본의 빈 여백은 남궁민, 김지은, 최대훈 등 배우들의 코믹연기와 개인기로 채운다. 후반부의 주요 줄거리가 되어야만 했던 천지훈 변호사의 본격적인 복수혈전, 즉 아버지와 아내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서사는 끝까지 유예해 마지막 1회를 남겨놓은 시점까지도 본격 대결구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지막 회에서 어떤 마법을 보여줄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끝난다면 이덕화는 성공한 좋은 할아버지 역을 맡은 비중 적은 조연일 뿐이다. 법무법인 백과 관련한 떡밥을 비롯해 이 세계관 끝판 대장의 악랄함을 어떤 신묘한 극본과 연출로 쏟아낸다고 해도 12부작 드라마의 전개와 결말을 1회에 모두 소화하다보면 체할 수밖에 없다. 드라마는 수학 문제집의 해답지처럼 설명으로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천원짜리 변호사>의 후반부를 더욱 기대한 이유는 주인공을 둘러싼 비밀과 과거가 밝혀지고 예고된 본격적인 갈등과 성장이란 메인이벤트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탐정추리극처럼 ‘풍진동 살인사건’의 진위를 파헤치던 에피소드의 완성도와 9화 이후 <천원짜리 변호사>는 완전히 다른 드라마라고 해도 될 만큼 격차가 있다. 한국 드라마 사상 가본 적 없는 위치에 도달할 것으로 추앙받던 장르드라마 <경이로운 소문>만큼이나 심하게 망가진 후반부를 가진 드라마를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나마 그때는 그렇게 망가진 배경이 드러나기라도 했지만 <천원짜리 변호사>는 졸속과 파행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아무런 설명과 인정을 않고 있다.

본격적으로 천 원짜리 변호사가 된 천지훈 캐릭터의 이야기가 시작되려고 할 찰나에 멈추더니, 통쾌한 복수, 정의구현을 위한 한 방을 치일피일 미루고 있는 모습이다. 1회밖에 안 남았는데 큰 사건의 줄거리는 수습되지 않고 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남궁민이 버티고 있으니 아무래도 남은 이야기는 다음 기회로 미루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 방송이 되고 있다. 무너진 후반부의 서사와 전개는 시즌2를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끌다보니 나오는 현상처럼 느껴진다.
드라마의 개연성이 무너지고, 시청자들과 소통할 의지도 없으면서 대중들에게 내보일 시즌2를 생각하고 있다(고 보인다)는 게 사실이라면 이런 드라마에 매길 수 있는 값은 얼마일까? OTT시대의 시청자들을 상대하면서 방송 편성이란 약속을 일방향적으로 생각하는 방송사의 편성 방침이 아쉽다. 극중 남궁민의 코믹 연기만큼이나 뻔뻔하면서 능청스럽다. 높은 기대의 드라마였지만, 현 시점에서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모습은 여러모로 제목을 따라가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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