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남일녀’ 결국 김구라에 기댈 수밖에 없는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MBC의 새로운 금요 예능 프로그램 <사남 일녀>는 김구라의 예능이 아니다. 김구라가 잘해왔던 장르가 아닌 점에서도 그렇고 2회까지 방송에서 드러난 존재감 측면에서도 그렇다. <사남 일녀>는 제작발표회 당시부터 김구라의 야외 예능 도전을 마케팅 포커스로 삼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구라는 유재석, 신동엽과 함께 자신의 분야를 확고하게 구축한 가장 잘나가는 메인스트림 MC이지만 야외에서는 SBS와 이경규가 야심차게 준비한 <라인업>의 몰락과 <일밤>의 어두웠던 과거를 함께했던 실패의 전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대세인 김구라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야외 예능, 즉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다시 한 번 도전한다는 것은 충분히 팔릴 만한 이야기인 것이다.

사실, ‘효’와 ‘가족’을 내세우는 <사남 일녀>는 ‘신개념 가족 리얼리티 관찰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거창한 부제가 있지만 김구라가 야외에 나왔다는 점 이외에는 모든 면에서 익숙한 프로그램이다. 시골 오지로 내려가 고생하면서 자연을 음미하고, 또 그곳에서 만난 인연을 통해 그간 잊고 지냈던 가족의 소중함을 느낀다는 콘셉트는 <섬마을 쌤><1박 2일>은 물론 <패밀리가 떴다>의 기억도 설핏 떠오르게 한다.

출연자들이 친남매가 되어 촬영지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부모님으로 모시고 가족으로 지낸다는 설정은 요즘 한창 방영 중인 <대단한 시집>이나 <우리 집에 연예인이 산다>와 같은 프로그램들과 같은 맥락에 있다. 관찰형 예능이 대세가 되면서 형성된 일상성과 친밀함에 대한 천착이다. ‘효’를 강조한 연극적 설정이 새롭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결국 관찰형 예능의 목적인 휴머니티로 수렴된다는 점에서 그렇게 신선하다고 볼 수는 없다.

캐스팅도 관찰형 예능의 법칙을 따르고 있다. 신선한 인물의 반전 매력을 노리는 추세에 따라 김민종, 김재원, 서장훈 등 예능에선 생소한 인물들이 김구라와 호흡을 맞춘다. 홍일점으로 배우 이하늬도 함께하는데 원래 기획의도에 따르면 ‘1녀’는 매번 새로운 게스트로 채우려고 했었다고 한다. 이하늬는 ‘인제’편에만 나오기로 한 게스트였지만 그녀의 털털하고도 사랑스런 모습이 많은 인기를 얻자 당분간 계속 가게 됐다고 한다.



요즘 예능에서 새로운 인물 발굴에 혈안이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왠지 우리와 다를 것 같은, 이를테면 쉽게 접하기 힘든 고급브랜드의 텍이라 할 수 있는 연예인이란 타이틀을 떼고 보기보다 서툴고 털털한 ‘인간 이하늬’의 모습을 보여주자 시청자들은 친밀감을 느끼고 빠져드는 것이다.

그런데 김구라는 좀 다르다. ‘효’를 비롯한 ‘가족주의’와 같은 따뜻한 정서를 내세우고 드러내는 것에 서툴고(경기를 일으킬 때도 있다), 휴머니티는 그가 지금껏 예능판에서 시청자들과 친밀하게 소통해온 캐릭터와 결이 맞지 않는다. 게다가 상황극 설정이다. 어느 날 갑자기 모여서 가족 행세를 하면서 궁극의 친목도모를 해야 하는데 연기도 어설프거니와 친목은 강호동과 유재석의 덕목이다. 결정적인 것은 이 상황극이 리얼버라이어티와 관찰형 예능 사이에 아직 방향이 정립이 안 되었다는 것이다. 설정 자체는 제작진이 빅브라더처럼 세팅만 해놓고 지켜보는 관찰형 예능인데 김구라가 맡은 역할은 리얼버라이어티의 진행자다.

그래서 그는 계속해서 타이밍을 놓친다. 아버지와의 첫 만남에서부터 혼자만 큰절을 올리길 주저하다가 어색한 상황을 만들고, 모두가 싹싹하게 일을 돕고 역할극에 빠져들 때 김구라는 늘 한 발씩 늦는다. 알아서 녹아들기보다 방송 진행을 해야 한다는 초조함을 드러낸다. 조카 산하의 어깨를 홱 돌려 잡아 세우고 ‘삼촌들 나이순을 맞춰보라’고 동안 대결을 펼치게 하는 것이나, 다른 출연자와 달리 선물을 준비 안 해 와서 상황에 적극 참여를 못한다. 이건 효심의 문제가 아니라 방송 콘셉트에 대한 대응이 늦은 것이다. 즉, 방송을 방송으로만 생각했을 뿐 관찰형 예능과 같이 일상이 밀착된 예능에 대한 이해가 낮았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간 장면 이외에 김구라의 비중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대신 그 빈자리를 채운 게 바로 쇼핑왕 김민종과 이하늬, 그리고 반전의 결정체 서장훈이다. 꼼꼼하고 섬세하며 비위도 약해 푸세식 화장실은 물론, 굴도 평생 다섯 개 이하로 먹어본 남자지만 조카와의 승부욕을 불사르며 게임을 치르고, 또 그 조카를 서울 애들처럼 투블럭 스타일로 해준다며 미용실에 데려가 인제 버섯머리로 만든 덩치만 큰 삼촌이 바로 국보 센터 서장훈이다. 이하늬는 똑부러질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러블리하다. 화려한 이력과 외모와 달리 서장훈에 따르면 디테일이 떨어지지만 털털하면서도 애교 넘치고, 또 따뜻한 마음 씀씀이로 엄마를 비롯해 가족 모두를 흐뭇하게 만든다. 그리고 대망의 김민종이 있다. 그는 쇼핑왕으로 단박에 리얼버라이어티의 핵심인 캐릭터 잡기에 성공했다. 이 셋의 반전 매력과 허당 퍼레이드가 <사남 일녀>의 초반 재미를 이끌고 있다.

특히 김민종은 이 연극에 잘 녹아들면서 방송을 이끈다. 그는 더 이상 드라마 <느낌>의 차갑고 샤프한 한현이나 ‘더블루’의 터프싱어가 아니다. 그는 허당 캐릭터를 가진 스펀지면서 방송을 잘 돌아가게 하는 베어링이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누구보다 커서(아마도 그래서 이렇게 지르고 사는 것일 게다) 장에만 나가면 ‘그럼 사야지’를 입에 달고 쓸어 담는 쇼핑왕 캐릭터를 구축했다. 또 자칭 아웃도어 마니아이지만 정작 바깥일에 서툴다. 싱글족인 관계로 요리도 잘 한다고 함께 요리한 김재원에게 온갖 타박을 하면서 상에 올린 건 날 계란찜이다. 핑계는 많지만 계란 후라이도 잘 못한다. 잔소리도 많고 허세도 가득하지만 모든 게 어설프다. 그 결과 김재원과 ‘톰과 제리’ 관계가 형성되어 앞으로 재미의 한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어설퍼서 호감 가는 새로운 인물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시청률이 말해주듯 신선한 인물의 반전 매력만으로는 프로그램을 성공의 반열에 올려놓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민종 때문에 할 일이 없다는 김구라의 자조는 맞는 말이다. 아빠를 만나자마자 큰 절을 올리자고 제안하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척척 나선다. 김구라도 이 정도로 상황극에 몰입을 해주어야 한다. 예능MC 김구라의 매력과 다르면서 재밌는 인간 김구라의 모습이 나와야지만 프로그램이 더욱 흥할 수 있다.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가는 인간적인 모습도 좋지만 현존하는 예능 MC중 가장 아저씨다운 김구라가 천진난만해질 때 <사남 일녀>는 추진력이 붙을 것이다.

수식어가 어떻든 착한 예능, 예능에서 보지 못한 새로운 매력을 가진 인물의 등장만으로는 전혀 새로움을 줄 수 없다. 지금까지의 <사남 일녀>는 마치 재밌긴 한데 단편소설을 각색하다보니 허점이 있는 장편 영화 같다. 순간순간은 재밌지만 전반적으로는 길게 늘여놓았다는 인상이 든다. ‘시골로 내려가 한 가족이 된다’는 설정이 단편 소설이라면 예능이라는 장편 영화로 옮길 때 나타나는 빈곳이 바로 김구라가 메워야 할 부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리얼 버라이어티와 관찰형 예능이냐 사이에서의 버전을 확실히 취하고 상황극에 몰입해야 한다.

인간 김구라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또 이를 통해 웃음을 주지 못한다면 이 프로그램은 의외로 고전을 면치 못할 수도 있다. 취지나 캐스팅은 훌륭하지만 요즘 시청자들은 단지 그것만으로 새롭다고 지켜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각자 캐릭터의 매력을 뽐내는 것을 넘어서 그 캐릭터 간의 스토리가 필요하다. 김구라의 활약이 중요하고 기대되는 이유는 바로 이 스토리의 완성도와 시작에 그의 존재가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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