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풍선’, 이성재의 불륜남 연기가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생강의 옆구리tv] 배우 이성재는 채널A <쇼윈도>에 이어 TV조선 <빨간풍선>을 통해 연달아 불륜남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쇼윈도>의 신명섭과 <빨간풍선>의 지남철은 불륜남이라 해도 성격이 전혀 다르다.

<쇼윈도>의 신명섭은 철저하게 이중인격의 가면을 쓴 악인이다. 아내 앞에서는 누구보다 좋은 남편으로 포장했을 뿐, 실제는 냉혹한 쓰레기에 가까운 인간이었다. <쇼윈도>에서 신명섭의 악행과 또라이 기질은 시청률 견인차에 큰 역할을 했다. 악인이 못 될수록 시청자는 주인공의 복수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시원하게 느낀다. 게다가 이성재가 연기하는 신명섭은 현실에 있는 인물보다는 철저히 나쁜 남편의 캐릭터로 맞춰진 존재여서 배우 이성재까지 얄밉게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런 나쁜 놈의 두 가지 가면을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이성재의 연기에 시청자들은 탄복했다.

채널A 드라마 '쇼윈도'
채널A 드라마 '쇼윈도'

반면 <빨간풍선>의 지남철은 조금 다르다. 지남철은 함부로 욕하기에는 좀 짠한 인물이다. 어렸을 때 엄마가 버린 자식에, 배고파서 그 엄마를 찾아갔더니 만두를 빚고 있는데, 엄마는 그 만두 하나 쪄서 주지 않는다. 그래도 머리는 좋아서 장인의 눈에 띄어 장학생으로 서울대 법학과까지 졸업한다. 물론 사시 패스까지 할 만큼 운이 좋진 않아서 결국 장인의 고물상을 물려받아 권한 없는 바지 사장이 됐을 따름이다. 그렇게 어렵게 살아온 지남철에게 사랑 따위 예정에 없었다. 그저 장인이 짝지어준 고금아(김혜선)와 맺어져 자식 낳고 그렇게 고물상(윤주상) 집안의 머슴처럼 살아갈 뿐이다. 이런 그에게도 뒤늦게 첫사랑이 찾아온다. 바로 고물상 경리도 들어온 20살 아래 조은산(정유민)과의 불륜이다.

TV조선 드라마 '빨간 풍선'
TV조선 드라마 '빨간 풍선'

<빨간풍선>은 조은강(서지혜), 조은산(정유민) 자매의 불륜을 나름 깊이 있게 보여준다. 특히 각각의 불륜에 모두 이유가 있음을 그려낸다. 조은강(서지혜)은 친구 한바다(홍수현)가 보여주는 미묘한 무시의 감정에 대한 반발과 잊지 못한 첫사랑에 대한 감정 때문에 고차원(이상우)을 유혹한다.

반면 지남철과 조은산의 경우는 찬밥처럼 살아가는 두 인생이 처음으로 함께할 때 따뜻함을 느끼면서 불륜으로 빠져든다. 그들이 오피스텔에 차린 캠핑장에서 만나는 건, 은산이 캠핑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일상에서 벗어나고픈 마음의 표현이기도하다.

TV조선 드라마 '빨간 풍선'
TV조선 드라마 '빨간 풍선'

그런데 <빨간풍선>에서 지남철은 신명섭보다 더 시청자에게 미움을 받는 인물로 전락해가는 중이다. 만약 지남철이 느끼한 바람둥이이거나 아예 푹 퍼진 장년의 사내였다면 <빨간풍선>에서 이 커플은 그저 웃음거리로 전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성재가 연기하는 지남철은 연기를 잘 할수록 이상하게 시청자들을 화나게 하는 지점이 있다. 이성재는 너무 그림 같은 미남보다 묘하게 일상의 훈남 중년 같은 매력이 있다. JTBC <아내의 자격>에서의 김태호처럼 편안하게 상처 입은 여성의 마음을 달래줄 것 같은 분위기가 있는 것이다. 이성재의 지남철은 이 배우의 그런 매력은 살리면서, 그를 사연 있고 외로운 불륜남 캐릭터로 만들어간다. 게다가 이성재가 조은산 앞에서 어머니의 만두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릴 때처럼 애절한 장면도 만들어낸다.

TV조선 드라마 '빨간 풍선'
TV조선 드라마 '빨간 풍선'

다만 시청자들은 이 절절한 지점에서 지남철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이성재의 리얼한 생활 연기 때문에 마치 내 주변 어디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배우자의 현장을 보고 있는 기시감이 들기 때문이다. 거기에 조은산과의 스무 살 나이 차이에서 느껴지는 거부감도 한 몫 할 것이고.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성재는 희대의 악역이 아닌 어찌 보면 사연 많은 불륜남을 연기하면서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주인공이 되어버린 감이 있다. KBS 드라마 <거짓말>의 불륜남 준희를 통해 화제가 되면서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은 시절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칼럼니스트 박생강 pillgoo9@gmail.com

[사진=TV조선, 채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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