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아시스’, 뉴트로 열풍 제대로 탄 시대극의 묘미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어딘가 옛날 드라마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끌린다. 건달과 검사 그리고 그들이 사랑한 한 여자에 대한 구도에서는 <모래시계>가 떠오르고, 영화판에서 맨몸으로 부딪쳐 성장해가는 이야기는 <빛과 그림자>가 떠오른다. 건달들이 세력 다툼을 벌이고 “형님”하고 외치는 그런 장면에서는 <야인시대>나 <왕초> 같은 드라마가 떠오른다. 그런데 올드할 수 있는 이런 느낌들이 의외로 마음을 잡아끈다. KBS 월화드라마 <오아시스>라는 시대극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격동기를 그리고 있는 <오아시스>에는 당대의 독재정권과 정치비자금을 위해 그들이 결탁한 정치깡패들의 이야기가 들어있고, 그들이 원주민을 밀어내고 재개발해 막대한 돈을 끌어 모으던 부동산 투기의 풍경이 담겨있다. 게다가 멀티플렉스가 되기 이전 극장 산업과 더불어 성장하던 연예 산업의 이야기도 더해져 있다. 그런 배경들이 시대극의 독특한 정서적 지점을 잡아낸다. 그건 복고와 추억의 향기다.

<오아시스>에 등장하는 두학(장동윤)과 철웅(추영우) 그리고 정신(설인아)이 격동기에 겪는 이야기들은 현 시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것들이다. 소작농의 아들 두학과 지주집 도련님 철웅. 일찌감치 밝혀진 출생의 비밀에 담겨 있는 것처럼 둘은 형제지만 그렇게 다른 집안에서 성장한다. 지주집의 은혜를 입었다는 이유로 두학의 아버지 중호(김명수)는 두학이 많은 걸 철웅에게 양보하게 만든다. 그리고 심지어 철웅이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까지 뒤집어쓰고 감옥에 가게 한다.
이러한 서사는 어딘가 1970년대 말의 풍경이라기보다는 훨씬 더 이전의 구한말 설정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렇게 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여겨진다. 즉 요즘의 청춘들이 마주하고 있는 이른바 ‘수저계급’의 상황을 시대극의 중요한 모티브로 끌어오기 위한 설정이다. 두학과 철웅이 실제로는 친형제지만 집안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두학은 감옥을 나와 건달의 길을 걷고, 철웅은 대학에서 프락치 역할까지 하지만 졸업 후 검사가 된다.

중요한 건 수저계급의 상황을 두학이나 철웅이 갖고 있지만 이들은 그 안에서 저마다의 생존경쟁과 노력을 통해 성장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두학은 건달이지만 그렇게 갖게 된 세력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정신을 남모르게 돕고, 철웅은 검사로 성장한다. 물론 두 사람의 성장을 과연 성장이라 말할 수 있을까 싶지만 어쨌든 노력이 어떤 결과로 돌아오는 이들의 모습은 어딘지 모든 게 수저계급 안에 꽉 막혀있는 현 시대에 드라마틱한 판타지로 느껴진다.
즉 <오아시스>라는 시대극이 어딘지 옛날 드라마 같지만 그럼에도 마음을 잡아끄는 건 현 시대와 무관하지 않다. 복고가 결국은 현재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오아시스>가 끄집어내 채워주는 결핍은 스스로 삶을 개척해가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두학은 과연 이 척박한 건달세계에서 자신과 조직을 지켜내고 사랑도 얻을 수 있을까. 정신은 입지전적인 영화판에서 성공하고 두학과의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철웅은 자신의 진짜 정체를 깨닫고 삶이 엇나가기 전 두학, 정신과 함께 웃으며 지내던 그 시절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런 욕망들이 인물들을 통해 전해진다.

여기에 말끔하고 개성 없는 디지털 시대의 반작용이 만들어낸 아날로그에 대한 감성들이 이 시대극을 색다르게 보게 만든다. 옛날 드라마 같은 거친 화면과 어떻게 보면 촌스럽게 보이는 세트와 의상 나아가 장면 구성 같은 것들이 아날로그의 정겨운 느낌을 준다. 다소 퇴색해 보이는 영상들이(다분히 의도된 연출도 들어있다) 어딘가 시간의 흔적이 더해진 빈티지의 매력으로 다가온다.
<오아시스>라는 시대극이 주는 이러한 달라진 느낌은, 어딘가 이 시대에 시대극에 대한 새로운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기성세대들만이 아니라 젊은 세대들도 반색하는 뉴트로 열풍을 타고 시대극이 재해석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결과가 어떻든 그저 청춘들이 마음껏 제 욕망을 펼쳐내는 그 광경을 빈티지한 영상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경험을 하게 해줄 수 있어서다. 어쩌면 <오아시스>는 우리 시대 새롭게 해석되는 시대극의 부활을 예고하는 작품인지도 모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K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