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그 이유로 ‘사이렌’을 극찬한다면 그게 더 시대착오적이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넷플릭스 예능 <사이렌-불의 섬>에 대해 매체와 SNS상에서는 찬사 일색이다. 지난 4월 넷플릭스 코리아가 준비한 ‘넷플릭스 예능 마실’에서도 여성 피지컬 서바이벌로 큰 주목과 기대를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최종회차가 모두 공개된 현재, 성과의 기준이 다를 순 있지만 열렬한 지지의 입소문이나 K-예능의 깃발을 드높이겠다는 포부, <피지컬100>라는 확실한 비교지표 등과 견줘봤을 때 화제성이나 넷플릭스의 글로벌 순위 모두 저조하게 느껴진다. K-예능을 사랑하는 아시아권에서조차 성적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 괴리는 어디에서 오는 걸까.
최근 ‘피지컬 서바이벌’로 명명되는 생존 서바이벌 콘텐츠는 영미권에서 넘어온 유구한 장르이고 우리 예능사에도 최근 <가짜사나이> 같은 분기점이 된 콘텐츠는 물론, 피지컬로 대결한다는 점에선 <피지컬100>, 소속의 명예를 건 대결이란 점에선 <강철부대>라는 선명한 레퍼런스가 있다. OTT시대에 접어들면서 붐이 인 장르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웬만해선 호기심을 자극하기 힘들다. 여자들만이 모였다는 특별함을 제하고도 장르적인 성취가 반드시 필요하다.

<사이렌-불의 섬>은 경찰, 소방, 경호, 스턴트, 군인, 운동 등 6개 직업군으로 팀을 이룬 24명이 하나의 섬에서 벌이는 생존 전투 서바이벌이다. 직업의 명예를 걸고, 여성이란 편견에 도전한다. <사이렌>이 내세우는 것은 3만 평의 섬이란 스케일 위에서 힘 좀 쓰는 ‘언니의 멋’이다. 대결은 베네핏을 건 아레나전과 생존을 건 기지전으로 나뉜다. 그런데 장작패기, 우물파기 등 피지컬이 중시되는 아레나전과 전략과 협동, 몸싸움이 허락되는 기지전으로 나누며 다양화했음에도 생존을 위한 모든 대결과 과제가 결국 힘과 체격으로 귀결된다는 점에서 이야기와 볼거리는 단조로워진다.
여성의 몸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여준다는 점도 좋고, 특색 있는 직업군별로 나누고 각기 직업적 특장점을 살리려는 의도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관창이 달린 물호스로 불을 끄는 미션이 있던 아레나전 정도를 제외하면(그리고 이는 특혜에 가깝다) 특별히 직업적 특성이 전략에 두드러지게 반영되거나 승패에 영향을 미친 경우는 거의 없다. 새로운 세계와 인물을 알아가는 흥미에서 몰입이 시작되는 점을 고려할 때 캐릭터 구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어느 특수부대가 가장 강력한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끄집어 낸 <강철부대>와 달리 한국 여성들의 직업을 건 명예 대결은 만들어낸 질문이란 점에서 애초에 호기심의 크기도 작은데다 그 답이 명쾌하지 못해 아쉽게 다가온다.

메인이벤트인 기지전은 다른 팀 기지의 깃발을 탈취해 기지를 점령하는 싸움이다. 깃발을 빼앗긴 팀은 탈락한다. 또한 각기 자신의 목숨에 해당하는 깃발을 등에 짊어지고 몸싸움을 펼친다. 즉, 처절한 버전의 <러닝맨>이다. 지붕 위든, 계단 위든 악다구니 속에 여자들도 아드레날린 날리는 살벌한 몸싸움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하이라이트다. 문제는 기지전 또한 몸싸움이다 보니 짧은 시간 안에 끝난다. 따라서 게임과 게임 사이 앞뒤 이야기가 많을 수밖에 없는 느린 호흡의 구조다. 이때 각 팀의 직업 전문성과 기지의 지형 특성에 맞게 다양한 전술과 상황, 연대 등이 나오리라 기대한 것 같다.
체격과 힘, 연합으로 인한 인원수로 밀어붙이는 완력 외에 전술이나 반전이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승리할 때마다 탈락한 팀의 기지를 갖게 되는 변화가 있지만 수성에 불리한 조건이 될 뿐이라 활용하기보단 버려진다. 즉 일정이 거듭되면서 같은 전술이 반복되고 3만 평의 섬은 점점 좁게 쓰게 된다. 그러면서 캐릭터와 진행 방향의 가짓수가 많은 초반에 비해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떨어지는 서바이벌 예능의 대표적인 어려움에 빠진다. 중반부 이후 서사의 중심축인 소방팀과 라이벌 관계에 있던 다른 한 팀이 탈락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예측가능한 시나리오로 좁혀진다.

자신감의 표현 방식, 육체적 능력을 보여주는 멋, 편견을 뛰어넘는 여성의 도전이란 가치도 중요하지만, 서바이벌쇼는 좋든 싫든 자극적인 서사와 매력적인 캐릭터를 기반으로 한다. 하지만 자극을 만들어가기에는 프로그램의 아젠다가 생존보단 여성에 방점이 찍혀 있고, 인플루언서들을 대거 출연시켜 화제성과 콘텐츠를 상부상조하는 여타 서바이벌 예능과 달리 대중에게 알려진 인물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 캐릭터 구축에 어려움이 있다. 7일간 300대가 넘는 카메라를 동원했다는데 패자부활전을 기다리는 패자팀의 서사가 통 삭제된 점, 2차 공개된 6회부터 러닝타임이 회당 30분대로 축소되었다는 것은 볼거리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결과라 짐작된다.
그럼에도, <사이렌>에 대한 대부분의 찬사 포인트는 ‘여자들의 피지컬 대결’로 귀결된다. 이런 ‘여성 예능’ 담론의 문제는 재미를 이루는 구조, 장치, 서사에 대한 이야기를 논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새로운 지평이란 측면에서 부각되는 것은 마땅하나 그래서 ‘재밌’거나 ‘새로’워야 한다. 예를 들어 <스우파>는 ‘여자’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인기를 끌었던 것이 아니다. 춤 자체도 멋진데, 그걸 보여준 인물들이 걸어온 길과 쌓아온 캐릭터가 매력적인데다, 대결과 연대의 양립이라는 새로운 서사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여자 연예인들이 진심으로 축구를 즐기며 프로그램을 만드는 시절이다. 여자들이 갯벌을 달리고, 쇠공을 굴리고, 곡괭이질과 도끼질을 하고, 쌍욕을 주고받으며 힘 대결을 벌인다는 것 자체가 기존 서바이벌 예능의 문법을 뛰어넘을 정도의 파격은 아니다. 만약 성별을 남자로 바꾸었다면 지금의 찬사가 가능했을까. <닥터 차정숙>을 비롯해 이제 우리 드라마에서 여성서사는 흔한 주류 공식이 되었다. 그런 차원에서 <사이렌-불의 섬>은 경보다. 이제 여성 예능이라는 점만으로 박수를 보낼 시점은 지났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넷플릭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