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민이 제안하는 생존의 길, ‘연인’이 그리는 전쟁이 특별한 이유

[엔터미디어=정덕현] “오랑캐들과 싸워 진 후, 조선의 선비들이 조선의 백성들이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떳떳하게 죽거나 비굴하게 사는 일뿐이라 했었지요. 저하께서도 그리 생각하시옵니까?” MBC 금토드라마 ‘연인’에서 이장현(남궁민)은 심양에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김무준)에게 그렇게 묻는다. 아마도 당대의 조선인들이라면 전쟁에서 진 선비와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건 실제로 그 두 가지 길밖에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장현은 다른 길을 제안한다. 그 길은 ‘아주 큰 용기가 필요한 길’이다. “오랑캐를 직시하고 담대하게 살아내는 일입니다. 비굴할 틈도, 죽을 새도 없습니다. 사셔야죠. 잘 살아서 장차 좋은 날을 보셔야죠.” 이건 다른 말로 하면 생존의 길이다. 살아남는 것은 어쩌면 진정으로 이 전쟁에서 이기는 일일 수 있다. 그건 세자에게도 선비에게도 백성에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연인’은 바로 그 백성들의 생존전쟁에 집중하고 있다. 병자호란 같은 전쟁을 소재로 하는 사극들이 주로 나라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뤘던 것들과는 다른 길이다. 인조가 등장하는 사극이라면 당연하다는 듯이 ‘삼전도의 굴욕’ 장면을 보여주곤 했지만, ‘연인’은 이 장면을 굳이 생략했다. 대신 피난에서 돌아오는 백성들의 목소리로 왕이 무릎을 꿇었다는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이건 나라를 위한 전쟁에 대한 이야기보다, 그로 인해 백성들이 어떤 피폐한 상황에 놓이게 되는가에 ‘연인’이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장현도 또 유길채(안은진)도 모두 각자의 생존전쟁을 치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장현이 심양에서 용골대(최영우)를 위시한 고관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소현세자와 더불어 살아남을 길을 찾아나간다면, 유길채는 당장 식솔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생존의 상황에 놓인다. 쓸모없어진 동전을 녹여 유기를 만들고, 이를 사대부가 여인들의 가락지나 비녀 같은 물품을 받고 판 후, 그걸 기녀들에게 팔면서 그들을 통해 청나라 사신들의 교역물품 정보를 알아내 매점매석으로 돈을 번다.

무관인 구원무(지승현)의 도움을 받고 그와 가까이 지내는 길채에게 동생인 영채(박은우)가 사람들이 뒤에서 수군댄다고 말하자, 길채는 담담하게 답한다. “수군거리라고 해. 욕먹는다고 안 죽어. 밥을 못 먹어야 죽는 거야.” 길채는 달라졌다. 전쟁을 겪으며 살아남는 일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누군가의 시선이나 뒤에서 하는 이야기 따위는 ‘생존’ 앞에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바로 이장현이 보여왔던 그 모습을 이제 길채도 보여주고 있다.
과연 백성들에게 나라는 무엇이고 전쟁은 무엇일까. 백성들을 버리고 먼저 도주한 왕을 구해야 한다고 나서는 선비들 앞에 차라리 백성들을 구하라고 말하는 이장현의 목소리에서 이 질문들이 느껴진다. 전쟁은 실제 칼과 활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만 벌어지는 게 아니라, 그런 전쟁이 끝난 후 피폐해진 삶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백성들에게 먹고사니즘 그 이상을 넘어서는 전쟁이 있을까.

‘연인’은 나라의 전쟁이 아닌 백성들의 생존전쟁을 병자호란과 그 후의 시대상황을 통해 본격적으로 그려내면서 이런 현재적인 질문들을 던진다. ‘충’이니 ‘나라’니 하는 막연한 명분으로 삶과 죽음을 선택하는 그런 것보다 이제 우리의 서민들에게 더 절실한 건 저마다의 삶에서의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고. 조선시대의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연인’에 지금의 대중들이 공감하는 건 이러한 현재적 관점이 투영되어 있어서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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