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상 위치에서 광야로 나아간 나영석 사단의 혁신과 파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요즘, 가장 기대하는 예능 제작진은 놀랍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여전히 나영석 사단이다. 최근 주 활동 무대를 유튜브로 옮긴 이들은, 콘텐츠 생산하는 제작진의 정체성과 역할에 변화를 줬다. 그간 정형화되었던 제작진과 출연진의 경계를 넘어서 스스로 제작자이자 출연자가 되는, 요즘말로 크리에이터로 유튜브 콘텐츠를 창출하기 시작했다.
변화의 시작점은 나영석의 페르소나인 이서진으로부터다. 3개월 전 일반 가정집 조명의 식탁 위에서 배달음식을 올려놓고 찍은 ‘나불나불’ 이후 나영석 PD를 중심으로 ‘소통의 신’, ‘촬영비하인드’, ‘스탭입니다’, ‘빠삐용특집’ 등 주로 함께해온 출연자와 팀원들과 최소 비용으로 콘텐츠를 생산한다. 그간 방송에서 꾸준히 대형 히트작을 내놓으며 업력과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예능팀이 극도의 일상성을 추구하는 ‘라방’의 제작방식으로 유연하게 전환해 콘텐츠를 생산하고 그 위에 직원 체육대회나 MT 등 이런저런 기획을 덧붙이며 성과를 올리고 있다는 점이 포인트다.

<신서유기> 시절부터 있어왔던 채널을 완전히 리뉴얼한 이유는 몇 차례 밝힌 바 있다. 570만을 넘긴 구독자 수와 그에 비례하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면서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비효율적인 사업 구조, 송출 플랫폼만 다르지 방송 제작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콘텐츠 생산 방식에 대한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나영석 PD는 자신들의 출연자였던 침착맨에게 구체적인 조언을 듣고, 규모, 기획 등등 모든 면에서 웹콘텐츠에 맞는 웹콘텐츠 생산 방식으로 전환했다.
비유하자면 대규모 베이스캠프 꾸리는 방식에서 알파인 스타일로 경량화를 시도해, 새로운 성과를 또 한 번 이뤄냈다. 핵심은 고정비를 줄이는 데 있다. 스스로 출연하고 촬영하고 편집한다. 유튜버, 웹크리에이터의 원칙이지만, 출연진의 스타성과 제작진의 전문성과 자본의 합으로 만들던 기존 예능 제작방식과는 다른 차원이다.

캐스팅이란 그들만의 치트키를 발휘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호스트는 나영석 PD이고, 스텝과 출연진의 관계가 아니라 동료의 입장에서 손님으로 얼굴을 내비춘다. 방송 제작 기준의 완성도를 내려놓고, 방송에서는 담지 않았던 관계와 장면을 보여준다. 그로 인해 최소 투입 대비 최대 이윤 창출의 가능성은 물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진짜’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진정성이 충성도 높은 구독자를 만들 수 있는 브랜딩으로 이어진다.
새로운 얼굴을 발굴하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세상을 스토리 안에서 보여주던 게 기존 방송 문법이라면 이들은 아는 얼굴을 더욱 친숙하게, 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데 몰두한다. 스텝들과의 이야기는 일에 대한 애정과 내밀한 뒷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자리이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함께 세월을 쌓아온 연예인들과 나누는 토크는 훨씬 더 친근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느껴지는 이야기를 듣는 통로가 된다. 그 덕분에 요즘 유튜브 예능에서 가장 활발한 토크쇼 콘텐츠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대표적인 채널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이런 변화된 콘텐츠 생산 방식이 흥미로운 것은 출연자들의 뒤에서 방송을 통해 대중과 소통을 하고 평가를 받던 이들이 전면에 나선다는 데 있다. 이는 제작발표회나 이런저런 기사, 인터넷 커뮤니티의 여론 등등 비유하자면 유통을 거치지 않는 일종의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거래다. 그 덕분에 비용을 극적으로 줄였을 뿐 아니라 일종의 회사 브이로그 역할을 하면서 다음 콘텐츠에 대한 기대와 정서적 연대라는 공고한 브랜딩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예능사에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오랜 기간 최정상의 자리에 머물고 있는 예능 제작진이 웹예능의 생태계에서 진화하기 위해 대부분의 기준과 경험칙을 버리고 광야로 나아간 유연한 사고의 뿌리가 흥미로울 뿐 아니라, 환경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기는 일종의 소탈함이 나영석이란 캐릭터와 에그이즈커밍 사의 커뮤니티에 호감을 갖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사이드 이펙트겠지만 나영석 PD를 중심으로 하는 스텝들의 이야기는 웃음과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닿을 수 있는 효용이 있다. 이들이 다루는 제작 비하인드는 예능팬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뿐 아니라 각자의 삶에 힌트를 줄 수 있는 리더십, 팀워크, 인간관계에 대한 영감과 자극도 연결된다. <나는 솔로> 등을 보며 인간관계와 인생을 배우듯, 동료, 후배, 심지어 퇴사한 후배 등등과 함께 나누는 이야기에서 협업의 기술, 이상적인 선배의 모습, 예능 업계의 현재와 취업 등등 오래도록 롱런하는 팀의 비밀과 깨달음, 업계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더욱 깊이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지난 8일, 일명 나영석 블록이라고 하는 금요일 저녁, tvN이 아닌 유튜브 채널에서 ‘텐트폴’ 콘텐츠라 자칭하는 <이서진의 뉴욕뉴욕 시즌2>가 처음 공개됐다. 지금까지는 ‘라방’을 콘텐츠의 모태로 삼았다면 이번엔 여행 유튜버다운 콘텐츠다. 그런데 방송을 했던 시즌1과 달리 보다 본격 유튜브 친화적인 콘텐츠다. 전문적인 장비를 운용하고, 높은 화질과 다양한 앵글을 제공하는 외주 촬영팀이 없다. 소규모 필수인원들이 작은 휴대용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별다른 사전 계획 없이 이서진만 믿고 그가 정한 숙소와 동선을 따라 그때그때 이야기를 만든다. 차이나타운에서 짝퉁 구매를 해보는 식으로 현지를 경험하는 에피소드를 담는 여행 유튜버의 방식이다. 이 기획 자체도 ‘나불나불’에서 이서진이 언급한 휴가 계획이 확장된 지극히 유튜브다운 살아 있는 전개방식이다.

<신서유기>시리즈부터 나름 유구한 역사를 가진 유튜브 채널 <채널 십오야>는 방송 콘텐츠가 주업인 이들에게 잠시 쉬어가는 페이지 혹은 실험실에 가까웠다면 이제 이 채널은 나영석 사단 콘텐츠를 홍보하는 장이자, 시리즈의 결속과 추억을 잇는 매개이며 사실상 정체성을 대변하는 본진(플랫폼)이다. 예능 제작진 중 가장 적극적으로 웹예능에 도전했던 이들이 여전히 가장 새로운 모습을, 전복에 가까운 신선한 모습을 계속해 선도해나가고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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