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는 재미가 없는 ‘무빙’, 멜로·액션·판타지·휴먼까지 다 잡았다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멜로, 액션, 판타지, 휴먼... 디즈니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은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물이지만, 장르적으로만 봐도 없는 재미가 없는 드라마다. 앞부분 7화까지는 봉석(이정하)과 희수(고윤정)를 중심으로 풋풋한 청춘멜로가 펼쳐졌고, 8,9화는 봉석의 부모인 김두식(조인성)과 이미현(한효주)의 스파이물을 배경으로 하는 묵직한 멜로가 이어졌다.

10,11화는 희수의 아버지인 장주원(류승룡)의 느와르물 위에 펼쳐진 절절한 멜로가 그려지더니, 12,13화에는 남북 간 대결구도 속에서 안기부 블랙팀의 액션과 가족서사가 펼쳐졌고, 14화에서는 강훈(김도훈)의 아빠 재만(김성균)과 장주원이 맞붙으면서 보여준 부성애가, 15, 16회에는 안기부 요원으로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을 발굴해내다 점점 아이들 편에 서게 되는 최일환(김희원)의 진한 선생님의 사랑을 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남한의 초능력자들이 자식들을 구해내기 위해 북한의 기력자들이 맞붙는 판타지의 스펙터클을 정점으로 찍었다.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슈퍼히어로물이지만, 강풀 작가가 얘기한 대로 <무빙>은 사람이야기에 더 초점을 맞췄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초능력을 갖고 있지만, 결국 이들이 괴물이 아닌 사람이라는 걸 드라마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심지어 북한에서 작전 수행을 위해 내려온 기력자들도 저마다의 인간적인 스토리들을 담았다. “인민은 죄가 없다. 죄는 희생을 강요하는 자에게 있다”고 말하는 북한 보위부 소속 요원 김덕윤(박희순)은 끝내 봉석을 향해 총을 쏘지 못한다. 작전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까지 희생시키는 건 잘못됐다 생각하는 것.

북한 기력자들 중 가장 능력이 뛰어난 비행능력을 가진 정준화(양동근) 역시 함께 훈련을 하다 끝내 죽음 끝까지 가게 된 동료들에 대한 상처를 가진 인물이고, 장주원 같은 재생능력을 가진 권용득(박광재)이나 손바닥으로 엄청난 충격파를 낼 수 있는 기력자 림재석(김중희)도 누군가를 죽이려는 살의가 있다기보다는 본인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작전에 뛰어든 그런 인물들이다.

<무빙>은 마지막 3회분에 쏟아 넣은 스펙터클만 봐도 슈퍼히어로물로서 볼거리가 충분한 작품인 게 분명하지만, 그보다 좋은 건 이처럼 인물 하나하나의 서사를 피와 땀과 눈물이 있는 사람이야기로 풀어낸 지점이다. 마지막에 권용득이 진한 동료애를 느꼈던 림재석이 죽고 나서 도망치듯 학교를 빠져나와 달리다 희수와 부딪치고 우는 장면은 <무빙>이라는 작품의 이런 성격을 잘 보여준다. 덩치가 산만한 권용득이 우는 걸 보고는 희수가 그 와중에 등을 토닥여주는 모습은 그들이 괴력을 가진 존재지만 괴물이 아닌 사람이라는 걸 분명히 드러내준다.

거의 모든 장르를 섭렵하다시피 작품 하나에 채워 넣고, 그 장르들에 뜨거운 온기를 더해 넣은 데다 <무빙>은 남북한 대치상황이라는 한반도 정세의 현실적인 사건들을 시대별로 적절히 밑그림 삼아 그려놓았다. 그래서 초능력자들은 하늘을 날고 총에 맞아도 죽지 않는 모습들을 보이지만, 드라마는 한국이라는 로컬 상황에 발을 딛고 있는 무게감을 갖게 됐다. 판타지에 더해진 현실감이라고나 할까. 이것 역시 <무빙>이라는 작품의 중요한 성취다. ‘한국적’ 판타지를 한반도 상황 안에서 상상력으로 재해석 해내고 있어서다.

20부작은 현재 K드라마의 흐름에서 결코 짧지 않은 분량이지만, <무빙>은 오히려 그 분량이 짧게 느껴진다. 이렇게 된 건 매력적인 인물들과 그들 하나하나의 서사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시즌1이 끝나자마자 시청자들은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에 화답하듯 <무빙>은 쿠키영상을 통해 시즌2가 열려있다는 걸 암시했다.

다 언급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성취를 담은 작품이지만 그중 가장 칭찬받아 마땅한 건 모든 장르들을 가져와 진한 한국적 서사의 향기로 재해석해낸 부분이다. 대본부터 연출 그리고 연기까지 빈틈없이 채워진 완성도 위에서 <무빙>은 한국 냄새가 물씬 풍기는 K슈퍼히어로물의 장을 하나 열어 놓았다.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K드라마가 거둔 또 하나의 중요한 진화가 아닐 수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디즈니 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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