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그대’ 표절 공방, 누가 이득을 챙길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이슈공감] 한 대형포털의 만화 부문 인기순위에 들어가 보면 눈에 띄는 작품 하나가 있다. 바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표절 제기로 화제가 되고 있는 강경옥 작가의 <설희>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표절 논란이 제기되기 전까지 이 작품은 사실 그다지 뜨거운 작품은 아니었다. 하지만 강경옥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표절의혹을 제기하고 또 법적대응을 할 것이라 밝히면서 만화 단행본 순위 1위로 뛰어올랐다.
<설희>는 아직 끝나지 않은 미완의 작품이다. e북 형태로 나온 단행본은 총 94화로 대여료는 회당 2백 원, 구매할 경우 편당 6백 원이다. 전회를 한꺼번에 대여할 경우에는 1만4,560원이고 한꺼번에 구입하는 비용은 5만6,600원에 달한다. 즉 아직 표절인지 아닌지가 밝혀지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별에서 온 그대>처럼 하나의 신드롬을 만들고 있는 드라마에 단지 논란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구매효과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별에서 온 그대>의 드라마 팬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드라마에 표절 의혹을 제기한 <설희>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좋든 싫든 이 총 94화까지 나온 <설희>를 꽤 비싼 비용을 지불하며 봐야한다. 물론 <설희>의 팬들이라면 표절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그저 TV를 틀어보면 된다. <별에서 온 그대>와 <설희>가 표절논란을 두고 벌이는 설전이 팬들 간의 논쟁으로 이어질수록 그 반사이익은 고스란히 <설희>가 가져간다는 점이다.
실제로 <설희>의 단행본이 대여 혹은 판매되고 있는 사이트의 게시판을 보면 거의 대부분이 <별에서 온 그대>와 <설희>의 표절 논쟁으로 채워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책 읽어봤다 하도 난리 난리를 치길래. 이게 표절이면 표절 아닌 만화가 없고 영화가 없겠네. 억지 좀 그만부려라.’ ‘정말 만화가들의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면 본인부터 진용과의 유사성 문제에 대해 먼저 집고 확실하게 해명해야 한다. 그리고 별그대를 이용해서 설희를 홍보하는 행위도 멈추어야 하고, 그래야 강경옥 작가의 진실성을 믿어주든 할 거 아닌가.’ ‘이번 이슈로 설희를 봤는데...광해군 때란 시기랑 외계인 때문에 불사인 것만 교묘히 바꾼 한국판 진용이네?’ ‘이거 결국 1위 했네..ㅉ’ 이런 논쟁적인 게시 글들 역시 구매와 무관할 수 없다.

물론 표절은 그 사실 여부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안타깝게도 표절을 가르는 명쾌한 법적 잣대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게 현실이다. 실제로 법정으로 간 표절 논란이 처음에는 한쪽의 손을 들어주었다가 항소하고 나서 다시 반대편의 손을 들어주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니 대중들의 입장에서는 표절 여부를 밝히는 잣대로서 법정에 대한 신뢰가 낮을 수밖에 없다. 법적인 승리가 표절이냐 아니냐에 달려있는 게 아니라 ‘돈의 문제’로 여겨지는 것이다.
강경옥 작가가 블로그에 쓴 장문의 글을 보면 이미 그녀는 자신이 ‘법정으로 가면 이기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적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정으로 가겠다고 밝힌 것은 저작권법이라는 것이 ‘피해자보다는 가해자가 유리’한 업계에 일종의 사회적 환기와 경종을 울릴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강경옥 작가가 마치 엄연한 약자인 것 같은 뉘앙스를 담고 있다. 결국 약자로서 지더라도 싸우겠다는 것.
하지만 과연 강경옥 작가가 약자일까는 의문이다. 만화가들의 삶이 쉽지 않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강경옥 작가는 이미 확고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인기 만화가다. 게다가 이 표절 논란에서 사실상의 힘을 발휘하고 있는 인물 역시 강경옥 작가다. 이미 법적인 판단이 대중들에게 그다지 신뢰를 주지 못하기 때문에 제 아무리 <별에서 온 그대>가 법적 공방에서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 반사이익은 강경옥 작가가 가져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결국 <별에서 온 그대> 측에서는 법적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기도 쉽지 않고 그렇다고 이대로 강경옥 작가가 주장하는 표절 논란을 좌시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즉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된 상황이라는 것. 하지만 이 와중에 표절 논란을 이용해 그 반사이익을 얻어가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이 사안의 또 다른 심각성을 말해준다. 이 사례는 그래서 만일 앞으로 잘 나가는 드라마나 영화가 나왔을 때 무조건적으로 표절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빌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 사실여부를 떠나서 이미 제기되는 순간 그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파괴력을 갖는 마케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번 표절 논란에서 그 표절 여부를 법적으로 가르는 일과 함께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러한 논란 자체가 하나의 마케팅으로 활용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걸 밝히는 일이 될 것이다. 흔히들 표절 논란이 제기되면 제기한 쪽에 심정적인 지지를 보내기 마련이다. 그것은 표절을 당한 입장이 가진 ‘을의 정서’ 때문이다. 하지만 갑을 논란에서 그 실제 상황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는다면 그 심정적인 을에 대한 무조건적인 지지는 때로는 악용될 소지도 다분하다. 분명한 것은 이번 표절 논란으로 <별에서 온 그대>가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는 반면, 현재까지 그 실질적 이익을 가져간 건 <설희>측이란 점이다. 과연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일까.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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