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과 복수, 시청률만 집착...우려되는 주중드라마들의 지나친 퇴행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보기만 해도 뒷목 잡게 만드는 빌런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처참한 상황을 맞이한 피해자가 절치부심 복수를 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사이다를 안긴다. 이른바 ‘고구마-사이다’를 반복하며 도파민 자극에만 집중하는 드라마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tvN 월화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JTBC 수목드라마 <끝내주는 해결사>가 그 대표적 사례다.

물론 이들 드라마들은 뻔한 도파민 자극 드라마라는 걸 숨기기 위한 장치들을 동원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회귀물이라는 장르를 가져왔고, <끝내주는 해결사>는 여러 캐릭터들이 모여 문제를 해결하는 케이퍼 무비 방식의 틀을 가져온 게 그것이다. 하지만 그 포장을 벗겨내면(벗길 필요도 없이 몇 회가 지나고 나자 저절로 본색을 드러냈지만), 이들 드라마들은 <펜트하우스> 같은 막장드라마와 소재적으로나 전개 방식으로서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두 드라마를 관통하는 소재가 불륜이라는 점, 그래서 그걸 막기 위해 최종 빌런인 남편들이 살인을 저지르는 일도 마다치 않는 인물들이라는 점, 그래서 피해를 당한 전 아내(주인공)가 저들 빌런인 전 남편을 상대로 처절한 복수의 사이다를 보여준다는 점,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새로운 판타지 남성과의 멜로가 이어지는 식의 전개들이 그 공통점들이다.

물론 소재가 불륜이라고 해도 이를 다루는 방식이나 새로운 관점이 들어간다면 문제일 건 없다. 또 복수극의 효과라고 볼 수 있는 자극과 사이다도 나쁘다고만 말할 순 없다. 문제는 본말의 전도다. 그저 시원한 사이다를 통한 반전의 쾌감을 주기 위해 자극적인 불륜 코드를 전면에 배치하는 방식의 일차원적인 선택들은 식상함을 안기고, 때론 사이다에 경도되어 억지로 자극적인 상황들을 배치하려는 시도가 들어갈 때 개연성은 사라지고 막장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앞부분에서만 해도 회귀물이 갖는 ‘새 인생 설계’에 대한 장르적 특징들이 묻어남으로써 자극적인 소재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강지원(박민영)의 목적이었던 박민환(이이경)과 정수민(송하윤)이 결혼을 한 후에는 더 이상 만들어지기 어려운 갈등 요소들을 억지로 끼워넣기 시작하면서 막장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헤어졌던 전 약혼자를 빼앗기 위해 살인 사주도 서슴지 않는 오유라(보아) 같은 캐릭터의 등장이 그것이다.

한편 <끝내주는 해결사>의 경우는 목적을 위해서는 아이까지 볼모로 삼는 노율성(오민석)이라는 최강 빌런을 세워두고 그에게 처절하게 당했던 김사라(이지아)가 반격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데 그 전개 과정이 너무 허술해 개연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개연성이 충분히 납득되지 않는 시원한 사이다는 갈수록 힘이 빠진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여겨져서다.

그런데 한때 지상파, 케이블, 종편을 망라해 밀도 있는 드라마들이 포진되곤 했던 주중 시간대를 이러한 도파민 과다 드라마들이 채우고 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것도 지상파 드라마들과 선을 그으며 완성도와 작품성으로 승부해왔던 tvN, JTBC가 나란히 불륜과 복수에 푹 빠져 있다는 건 생경한 풍경이다.

이건 아무래도 최근 OTT의 등장으로 전반적으로 시청률이 빠지며 힘을 잃어버린 레거시 미디어 방송국들의 고육지책처럼 보인다. 제아무리 완성도 높고 작품성 좋은 드라마를 내놔도 시청률이 너무 낮으면 적자를 면치 못하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시청률을 뽑아낼 수 있는 코드들을 갖춘 드라마들을 세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시적 현상이었으면 좋겠지만, 주중드라마들이 점점 사라지고 그나마 세워지는 드라마들도 저 아침드라마나 일일드라마들처럼 개연성이나 메시지 대신 고구마와 사이다를 반복하는 도파민 드라마의 경향을 보이고 있는 건 위태롭기 그지없는 일이다.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나, 자칫 이 흐름이 굳어져 드라마 생태계가 퇴행하는 일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시청률이 아닌 새로운 지표들이 필요한 시점이고, 광고 수익만이 아닌 새로운 수익모델들이 제시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렇지 않는다면 레거시 미디어의 드라마들은 갈수록 치열한 도파민 경쟁 속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로인한 OTT 쏠림 현상 또한 만만찮은 부작용을 유발할 테고.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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