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슬립, 초능력...판타지 드라마 우후죽순 쏟아지지만 성적표는

[엔터미디어=최영균의 듣보잡(‘듣’고 ‘보’고 ‘잡’담하기)] 언제부터인가 한국 드라마에는 비현실적 설정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초능력이나, 시간여행을 하는 타임슬립, 또는 다른 사람과 몸이 바뀌는 보디 체인지 등 판타지적 요소가 등장하는 드라마들이 어느 채널에서인가는 항상 방송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경향이 생긴 것은 드라마들이 시청자들을 좀 더 단단히 사로잡기 위해 다중 장르 혼합 방식을 채택하면서다.
멜로면 멜로, 스릴러면 스릴러 뚜렷한 하나의 장르가 대부분이고, 아니면 서브 장르까지 두 장르(예:멜로+오피스) 정도로 드라마 전체가 굴러가던 과거와 달리 멜로+타임슬립+스릴러 등 이전에는 별개로 드라마에 도입되던 장르들을 엮은 하이브리드 드라마가 자주 시도되고 있다. 이럴 경우 시청자들을 드라마에 ‘가둬두기’에 유리하다. 여러 장르를 오가며 진행되는, 밧줄처럼 엮인 스토리 라인을 따라가다 보면 하나의 장르로 된 드라마에 비해 지루함도 덜 하고 집중력도 잘 유지돼 자칫 작품이 늘어지는 순간에 채널 돌림이 발생하는 상황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남자 주인공 변우석이 큰 화제를 모은 tvN <선재 업고 뛰어>도 타임슬립과 청춘물,에 가족물과 스릴러까지 뒤섞여 있다. 그런데 이런 유행은 뒤섞어 넣는 여러 장르 중 특히 판타지 장르가 도드라져 보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분명 하이브리드임에도 불구하고 판타지 드라마처럼 느껴지는 경향이 있다.

아무래도 대개의 사람들에게 사실주의적 장르는 오래전부터 봐왔고 현실과 유사하니 익숙한 반면, 판타지는 상대적으로 낯설어 더 강렬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일 듯하다. 그러면 현재 한국의 드라마 세상은 판타지의 시대를 지나고 있을까.
최고 24.9%(이하 닐슨코리아)로 올해 최고이자 2010년대 이후 역대급 시청률의 드라마 중 한 편으로 기록될 <눈물의 여왕>에는 판타지가 없다. 로맨틱 코미디이자 멜로이고 오피스물과 가족물 등이 결합된 역시 하이브리드 드라마이지만 비현실적인 설정은 없고 클래식한 정통 멜로가 중심이다.
물론 판타지라는 규정은 주관적일 수 있다. <눈물의 여왕>에서처럼 잘생긴 사랑꾼이면서 서울법대 수석에 대통령 경호처에서 군 생활을 한 격투에도 능한 지덕체의 남자 주인공은 비현실적이고 판타지라 말할 수도 있다.

다만 드라마를 판타지로 분류하는 일반적인 기준은 시간여행이나 초능력처럼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로 보편 인식되는 그런 요소들의 드라마만을 말하는 것이 적합할 듯하다. <눈물의 여왕>을 보면 판타지가 유행처럼 느껴지는 한드 월드에서 현시점 최고 성적 작품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좀 더 범위를 넓혀 현 인기 드라마‘들’의 판타지적 성향 분포는 어떨까. 2024년 5월 중순을 기준으로 최고 시청률 5% 이상을 기록한 경우는 주간이나 일일 드라마를 제외하면 화제성 대박을 친 <선재 업고 튀어>(5.7%)를 제외하고 MBC <수사반장 1958>(10.3%, 이하 괄호 안은 최고 시청률), tvN <졸업>(5.2%) 정도다. 그런데 두 작품 모두 판타지적인 요소는 없고 하이브리드 드라마도 아닌 정통 범죄물과 정통 멜로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있는 드라마들은 현시점에도 여러 편이 방송 중이기는 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선재 업고 튀어>나 JTBC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비밀은 없어> 등 타임슬립이나 초능력 등을 다루는 드라마들은 정통물에 비해 높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 못하는 분위기다.

2024년 현재까지로 범위를 넓혀봐도 최고 시청률 10%를 넘는 드라마는 <밤에 피는 꽃>, <고려거란전쟁>처럼 팩션이기는 하지만 판타지라 할 수 없는 사극이거나, 로맨틱 코미디(<웰컴투삼달리>), 스릴러(<원더풀 월드>), 범죄물(<재벌X형사>) 등 현실성에 기반한 작품들이 다수이고 판타지는 <내 남편과 결혼해줘> 정도다.
살펴보면 대중들이 다수 선호하는 작품은 멜로나 스릴러, 범죄물 등 판타지가 없는 전통적 형식의 드라마에 집중돼 있다. 전년도 인기 드라마 현황을 들여다봐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판타지물의 시대가 온 듯한 분위기는 왜 그럴까. 일단 현실성 짙은 전통 드라마보다 강한 인상을 주는 판타지 작품들이 이전에는 없다가 다수 등장하면서 판타지가 주도하는 듯한 착시를 느끼게 하는 것일 수 있다. 생경한 것은 더 도드라져 보이는 법이다.

여기에 <눈물의 여왕>보다도 더 높은 시청률(최고 26.9%)을 2022년 기록한 <재벌집 막내아들>의 영향 때문일 수도 있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재벌 승계 과정의 암투가 큰 인기의 원동력이었지만 작품의 근간은 타임슬립이라 판타지 장르로 여겨진다.
드라마에 판타지가 도입됨으로써 좀 더 폭넓고 다양한 소재와 아이디어들이 빛나는 작품을 보는 재미가 늘어났다. 하지만 한국 사람들에게 여전히 보편적으로 드라마는 리얼리티가 주도하는 전통적 장르의 작품들이다. 현실성은 공감을 부르기 좋다.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드라마에서 재미도 재미지만 공감과 위로를 찾고 있는지도 모른다.
최영균 칼럼니스트 busylumpen@gmail.com
[사진=tvN, JTBC,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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