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데 보게 되는 ‘언니네 산지직송’의 우직한 매력

[엔터미디어=정덕현] “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촬영하지 말라고.” tvN 예능 <언니네 산지직송>에 게스트로 출연한 황정민은 등장부터 시끌벅적했다. 저 스스로 그렇게 꾸며 출연자들을 놀래키겠다고 했고, 진짜 그걸 시연할 때는 ‘재능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얼해 염정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황정민의 그런 시끌벅적한 등장은 그러나 금세 노동에만 열중하는 <언니네 산지직송>의 분위기 속에서 사그라들었다. 첫째 날 바다로 나가 멸치털이를 하게 된 출연자들은 일찌감치 이 프로그램의 색깔이 ‘노동’ 그 자체 맞춰져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메이크업에 예쁜 차림을 하고 가 봐야 멸치털이 몇 번 하고 나면 얼굴은 물론이고 온몸이 땀과 멸치들로 뒤범벅되는 그런 상황이라는 걸.

그러니 둘째 날 아침부터 이들은 무얼 입어야 하는가로 그날의 노동이 무엇이 될까를 궁금해했다. 그건 기대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힘든 일을 해야 할까 하는 긴장감도 더해진 궁금함이다. 정해진 목적지로 향한 그들이 마주한 건 단호박이 익어가는 밭이었다. 그걸 따는 일이 전날 그 임팩트 강했던 멸치털이와 비교해 그리 어려워보이지 않았지만, 현실은 또 달랐다. 33도의 땡볕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노동 강도 속에서 예능을 한다는 건 이런 예능에 익숙한 베테랑 예능인들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언니네 산지직송>에 출연한 출연자들을 보면 그리 예능에 익숙한 이들이 아니다. 염정아가 과거 <삼시세끼> 산촌편에 나오긴 했지만, 그때는 그에게도 익숙한 요리가 주였다. <언니네 산지직송>도 요리가 반 정도를 차지하지만, 여기에는 강도 높은 노동이 들어있다.

염정아와 영화 <밀수> 같은 작품에서의 인연으로 함께 출연한 박준면이나, 아예 고정 예능 출연 자체가 처음인 안은진도 마찬가지다. 이런 노동 중심의 예능을 통해 어떤 모습을 보여야 재미가 만들어지는가에 이들은 그리 익숙하지 않다. 물론 덱스가 서바이벌류의 리얼 예능에 익숙하긴 하지만, 그 역시 훈훈하고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노동에 집중해야 하는 이 같은 프로그램이 어색하고 무엇보다 누나들 사이에 청일점으로 들어가 있어 처신이 쉽지만은 않다.

“이렇게 일만 해도 돼?” 황정민이 게스트로 들어와 다짜고짜 단호박 따는 일에만 몰두하다가 염정아에게 슥 물어보는 대목은 그래서 리얼 그 자체다. 이 예능 프로그램이 가진 특징이 그렇게 노동 자체에 맞춰진 우직함에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찐하게 땡볕에서 단호박을 따는 일을 하는 그들에게 밭주인이 다가와 새참 하겠냐고 묻는 그 짧은 순간에 피어나는 이들의 반색 또한 리얼이다. 땡볕에서 땀을 철철 흘리며 한 노동 중간에 먹는 얼음 동동 띄운 콩국수 한 그릇의 맛이라니. 이것이 <언니네 산지직송>의 묘미라는 걸 이 장면이 드러낸다.

물론 이런 노동을 중심으로 세워놓는 예능 프로그램은 흔하다. 이미 오래 전에 나왔던 <체험 삶의 현장>에서부터 유재석이 했던 <일로 만난 사이>, <코리아 넘버원> 같은 프로그램들이 대부분 노동을 통해 주는 재미들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들이었다. 게다가 노동 끝에 이어지는 음식의 향연 또한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이 늘 보여주던 익숙한 요소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니네 산지직송>이 시청자들의 시선을 뺏는 건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출연자들이 그래서 더 진심으로 열심히 프로그램에 임하는 자세에서 나온다.

또한 그날 노동으로 얻은 식재료를 이용해 저녁에 요리를 만들어 먹는 과정을 통해 우리네 식탁에 오르는 농수산물들이 어떤 노동을 거쳐 오게 된 것인가를 실감하게 하는 대목은 음식을 대하는 마음부터 달리 만들어준다. 하루종일 멸치 털이를 하고 나서 그날 저녁에 해먹는 멸치 튀김과 구이가 어찌 식당에서 사먹는 그것들과 같을 수가 있을까. 일만 해도 괜찮냐고 황정민은 걱정했지만, 그런 우직함 때문에 의외로 시선이 가는 <언니네 산지직송>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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