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연아 경기 후 김성주의 침묵이 안타까운 이유
[엔터미디어=최명희의 대거리] 오천만 대한민국 국민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피겨여제 김연아 선수에 대한 석연치 않은 판정에 애써 외면하던 대한빙상연맹이 드디어 행동에 나섰다. 국제빙상연맹에 정식으로 재검토를 요청한 것. 물론 빙상연맹이 식물처럼 입을 닫고 있는 사이에 대한체육회가 국제올림픽위원회에 피겨 채점결과에 대한 유감을 표명하는 내용이 담긴 공식 서한을 발송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자 불같은 여론에 등이 떠밀린 모양새가 역력하다. 또 빙상연맹의 재검토 요청 발표 후 얼마 되지 않아 국제빙상연맹이 “공정하고 엄격하게 진행됐다”는 짧은 공식입장을 내놓아 사전조율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일부 극단적인 의구심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가뜩이나 러시아에 귀화한 안현수 선수가 맹활약을 펼치고 파벌논란 등이 적나라하게 알려지면서 궁지에 몰린 빙상연맹으로서는 잃어버린 국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를 날린 셈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편파판정에 대한 부당함에 공감하는 마당에 빙상연맹의 재검토 요청은 늦어도 너무 늦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빙상연맹 측에서도 억울한 부분이 있겠지만 말과 행동에는 시점이 중요한 법이다.
김연아 선수의 경기 직후 현재까지도 국내외 언론이 심판진의 판정에 대해 노골적인 표현이 담긴 비판도 서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소치올림픽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김성주가 말을 아끼고 있어 주목된다. 김성주는 쇼트 경기 중계가 끝난 직후 “우리 선수들이 혹시 점수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는 소감을 밝히며 김연아 선수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과시했다. 하지만 프리 경기 중계가 끝난 이후에는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물론 김성주는 프리 중계에서 판정 결과가 나오자 깜짝 놀라며 심판진에 대해 부당함을 지적하고 울분을 토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하지만 최대한 공정성과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는 방송을 감안하면 현장에서 보고 느낀 상황을 모두 전달했다고 보긴 어렵다. 김성주는 이전까지 이번 대회에서 방송은 물론 트위터, 인터뷰 등 각종 채널을 통해 수시로 현장 상황과 느낌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자주 전달해 왔다. 공식중계가 끝난 이후 뛰어난 대중들과의 공감 능력을 가진 김성주의 반응이 궁금했던 이유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는 김성주가 입을 닫고 있는 사이 SBS 배기완 아나운서는 트위터에 “러시아 땅을 밝기 싫다”며 현장에서의 분노가 어땠는지를 다소 격하게 표현하며 공감대를 형성했다. 배기완은 전날에도 트위터를 통해 “심판의 점수 퍼주기가 (러시아 선수를) 오히려 망칠 수 있다”며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또 배기완 아나운서와 명콤비를 이루는 방상아 해설위원은 경기 직후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연아 선수의 마지막 무대 현장 상황은 화가 날 정도였다”며 IOC 제소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하는 등 여론을 선도해 나갔다. 해외에서는 피겨의 전설 카타르나 비트가 김연아의 은메달에 대해 진행자가 만류할 정도로 분노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래저래 김성주의 침묵과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김성주는 왜 말을 아끼고 있을까. 한참 올림픽 중계 대세로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이던 중 ‘배기완-방상아 콤비’와의 김연아 경기 중계 맞대결에서 참패하며 주눅이라도 든 걸까. 그건 아닐 것이다. 다음 경기 중계로 너무 바빠서 신경쓸 겨를이 없는 것일까. 이것 역시 설득력이 약하다. 실제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라이벌 대결 만큼 화제를 모았던 김성주와 ‘배-방 콤비’의 대결은 ‘배-방 콤비’의 완승으로 끝났다. 물론 김성주가 배기완에 비해 피겨 전문성이 떨어지고 목소리 톤 자체가 피겨에는 상대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등 단점이 있었지만 MBC 시청률이 SBS보다 낮게 나온 것을 김성주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기실 모습 공개, 픽토그램, 해외언론 중계 영상 등 SBS의 사전준비가 워낙 철저했기 때문이다.

김성주가 김연아 선수 경기 이후 자신의 생각에 대해 말을 하고 안 하고는 본인의 선택이다. 사실 김성주의 입장이 엄청난 파괴력을 몰고 오지도 않을 것이며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주의 침묵이 안타까운 이유는 따로 있다. 김성주가 2년 전 런던올림픽에서 갑작스럽게 친정인 MBC의 중계를 맡았을 때만 해도 배신이나 기회주의의 이미지가 형성됐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성주는 이후 <일밤-아빠 어디가>를 통해 친근한 캐릭터를 창출하며 호감도를 높였고 이를 기반으로 이번 소치올림픽을 통해 중계 실력을 과시하면서 자신에게 남아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상당 부분 해소한 게 사실이다.
말과 행동에는 시점이 중요한 법이다. 이제까지 김성주가 “사랑하는 호동이형과 중계대결을 펼치게 됐다” “이상화, 금메달 확정 후 나를 보고 인사했다” 등등 단순한 화제성 발언으로 재미를 봤다면 이제라도 김연아 선수의 메달 스캔들 이후 현장에서 눈을 부릅뜨고 보고 느낀 생생한 분노와 분위기를 가감하게 전달해 주길 바란다. 그게 바로 애초 계획에 없던 김연아 경기 중계를 맡으며 김성주가 강조했던 ‘책임감’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어렵게 호감도를 올려놓은 터에 결정적인 순간에는 빠진다는 김성주의 이미지가 다시 부각될까 우려되는 노파심에서 나오는 충고이기도 하다.
최명희 기자 enter@entermedia.co.kr
[사진=MBC, 대한체육회, 김성주 트위터]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