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도 소녀시대 유리도 참여한 촛불집회의 색다른 풍경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추운 날씨에 아이크(응원봉)를 들고 집회에 참석해 주변을 환히 밝히고 있는 유애나들의 언 손이 조금이라도 따뜻해지길 바라며, 먹거리와 핫팩을 준비했다. 건강과 안전에 꼭 유의하시고 아래 사항 참고 후 해당 매장에 방문 부탁드린다.” 지난 13일 오후 아이유 소속사 이담엔터테인먼트가 공식 팬카페에 올린 이 공지는 현재 윤석열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 생겨난 새로운 문화를 잘 보여준다.
응원봉의 등장이 그 첫 번째다. 촛불집회에서 촛불이 LED 초로 대치된 후 또다시 응원봉으로 변신한 이 과정은 시위 문화의 드라마틱한 변화와 그 신세계를 상징한다. 시위 현장에 등장한 촛불은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하나하나의 마음으로 평화롭지만 도저한 메시지를 던진 상징이었다. 한 보수 정치인이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하자 시민들은 LED 초를 들고 나왔다. 결코 꺼지지 않는 촛불의 위용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색색의 응원봉이다.
색색의 응원봉은 다양한 세대와 취향이 어느 순간에는 한목소리로 뭉쳐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또한 그것은 팬덤을 경험한 세대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세상에 목소리를 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집회 현장에서 들려오는 노래들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아침이슬’과 ‘임을 위한 행진곡’만이 아니라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와 에스파의 ‘슈퍼노바’, 로제의 ‘아파트’, 샤이니의 ‘링딩동’, 방탄소년단의 ‘불타오르네’ 같은 노래들이 같이 울려 퍼진다. 도대체 이 발랄함을 그 누가 막을 수 있을까. 단단함은 부러뜨릴 수 있어도 이 발랄함은 결코 부러뜨릴 수 없다. 그 어떤 장애물도 넘어가고 피해 가며 계속 흘러가는 것이니.

시위 현장에 응원봉이 등장하자, 그 응원봉의 응원을 받던 별들도 나섰다. 아이유 소속사에서 역조공을 하고 나섰다. 집회 현장에서 2007년 소녀시대가 발표한 ‘다시 만난 세계’가 다시 울려퍼지며 때아닌 음원 차트 역주행까지 벌어지게 되면서 유리도 팬들의 응원봉에 화답했다. “추운데 잘 지내고 있어요? 소원봉 예쁘고 멋지더라... 감기 조심하고 든든히 챙겨 입어야 해요. 다만세가 울려 퍼지는 것도 잘 봤어요. 저도 매일 함께 듣고 있어요.” 집회 현장에 김밥도 쐈다. “다들 내일 김밥 먹고 배 든든히 해. 안전 조심, 건강 조심. 다만세 잘 불러봐.”
팬들이 응원봉을 들고 집회 현장에 나오자, 그에 화답하듯 별들이 선결제로 역조공을 하는 이 기막힌 상황은, 그러나 단지 K팝 팬덤 사이에서만 등장한 독특한 광경이 아니다. 집회에 등장한 선결제를 통한 참여 문화는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집회 현장 주변의 카페나 음식점, 상점 등은 그래서 집회 참여 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줄 음식이나 커피, 물품들을 미리 준비하게 됐다. 전국에서 심지어 해외 교민들에게서까지 선결제가 이뤄지고 있어서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이 연결된 이 감동적인 풍경들은 여의도와 광화문 같은 현장의 광장을 무한대로 넓혀 놓는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거대한 디지털 광장이라고나 할까. 생각해보면 1980년 비상계엄과 2024년 비상계엄이 확연히 달랐던 건 바로 이 미디어의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대의 비상계엄이 시민들이 전혀 모른 채 벌어졌다면, 이번의 비상계엄 발표와 해제의 순간들을 시민들은 거의 실시간으로 매체를 통해 접했다.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로 난입하고 이를 막는 그 일련의 과정들이 거의 생방송처럼 전해진 것이다. 시민 한 명 한 명이 미디어가 된 세상에 물리적 계엄은 무력해졌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 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이제 집회 현장에는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퍼진다. 팬들은 응원봉을 들었고 별들은 역조공으로 화답한다. 팬덤 문화까지 결합되어 축제처럼 발랄해진 집회 문화는 그래서 그 목소리가 더 크고 더 멀리 퍼져나가게 됐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tv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