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그녀’, KBS와 잘 어울리는 세대 통합 세계관의 저력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73세 할머니가 하루 아침에 21세 청춘이 됐다? KBS 수목드라마 <수상한 그녀>는 국내에서 860만 관객을 동원했던 황동혁 감독의 원작을 리메이크했다. 워낙 히트작인지라 리메이크로서는 장단점이 분명할 수밖에 없다. 이미 성공한 세계관이 주는 안정적인 재미가 그 장점이라면, 이미 원작으로도 또 그 후에 무수히 나왔던 이런 부류의 판타지가 주는 기시감은 단점이다.
그래서인지 <수상한 그녀>는 드라마로 리메이크하면서 그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살짝 변화를 줬다. 70대 오말순(김해숙)이 청춘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는 20대 청춘 오두리(정지소)가 되는 상황도, 또 그 70대 마인드를 가진 20대 청춘이 보여주는 인지부조화(?)에서 나오는 코미디와 세대 공감의 포인트는 그대로 가져가지만, 현시점의 트렌드를 반영한 변화가 엿보인다.

젊어서 꿈꿨지만 현실에 치여 포기했던 가수의 꿈을 20대로 다시 태어나 이어간다는 건 최근 들어 회귀물에서 많이 쓰이던 이른바 ‘인생 2회차’ 판타지의 변주처럼 보인다. 20대가 된 오두리는 유니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를 앞두고 있는 걸그룹 멤버 에밀리와 똑같이 생긴 얼굴 때문에 가수의 꿈을 이어간다. 에밀리와 얼굴이 같다는 데에는 그만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래서 원작과 달리 드라마 리메이크는 오말순과 에밀리가 마치 영혼 체인지를 한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긴다.
원작에서 오말순이 유일한 인생의 낙으로 아들 자랑을 하는 인물로 그려졌다면, 리메이크에서는 아들 대신 딸 반지숙(서영희)이 새로이 등장했다. 이것은 다분히 오두리가 된 오말순이 그녀의 딸인 반지숙과 손녀인 최하나(채원빈)와 관계를 이어가며 서로를 동반성장하게 하는 서사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할머니-어머니-딸로 이어지는 3대의 관계망은 그래서 여성서사를 전면에 꺼내놓으면서도 동시에 폭넓은 세대 소통의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이러한 변주들이 현 트렌드에 맞는 새로운 색깔들을 부여한다면, 원작 자체가 갖고 있는 세대를 넘나드는 소통과 공감의 코미디와 감동은 <수상한 그녀>의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온 가족이 세대를 뛰어넘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이야기는 어쩌면 KBS라는 공영방송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중장년층의 목소리를 내는 오말순과 더불어 20대 젊은 세대들의 현실을 담는 오두리를 오가며 기묘한 세대 통합의 장을 만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나문희-심은경 그리고 이진욱이 했던 역할들의 바통을 이어받은 김해숙-정지소-진영의 연기는 싱크로율을 떠올리지 않게 할 정도로 자연스럽다. 특히 70대 마인드를 가진 20대의 연기를 해내는 정지소의 코믹하고 발랄한 연기가 주목되고, 나아가 진영의 안정감 있는 로맨틱 코미디 연기도 드라마에 설렘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궁금해지는 건 과연 이 리메이크로 돌아온 <수상한 그녀>가 최근 그다지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위기의 KBS 드라마를 살려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일단 작품이 가진 세계관이나 트렌드에 맞춘 변화 그리고 연기자들의 호연은 합격점이다. 충분한 가능성을 지닌 이 작품이 KBS 드라마의 가능성도 되살려 줄 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K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