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15세, 티빙 19세, 투 트랙 전략 선택한 ‘원경’의 노림수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본 드라마는 역사적 인물 및 사건들에 상상력을 더하여 재창조한 이야기이며 실제 역사기록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tvN, 티빙 드라마 <원경>은 이런 고지와 함께 시작한다. 이제 사극에서 이러한 사전 고지는 일상화되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르지만 ‘실제 역사와 다르다’, ‘픽션이다’, ‘허구이다’라는 내용이 앞서 붙는 일은 이제 사극에서는 당연한 일이 됐다.
그런데 <원경>의 고지에서는 다른 지점이 엿보인다. 이 작품은 ‘역사적 인물 및 사건들’이 들어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거기에 상상력이 더해져 실제 역사기록과 다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 현재 방영되고 있는 JTBC <옥씨부인전>은 아예 ‘본 드라마는 픽션이며’라 못을 박고, 채널A <체크인 한양>도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분명히 하지만 <원경>은 실제 역사를 ‘재창조’했다는 걸 드러낸다.

이건 한때 역사왜곡과 자극성 논란으로 단 2회 만에 종영했던 <조선구마사> 사태를 떠올려 보면 꽤 과감한 선택이다. <원경>에는 실제로 조선 건국 시기의 이성계(이성민), 이방원(이현욱)은 물론이고 하륜(최덕문), 이숙번(박용우), 민무구(한승원), 민무질(김우담), 민제(박지일) 같은 역사적 실존인물들이 등장한다. 물론 제목에 담긴 것처럼 세종의 어머니인 원경왕후(차주영)가 주인공이다.
<원경>은 주체적인 여성이었던 원경이 이방원이 왕위에 오르는데 중대한 역할을 했지만, 막상 왕이 된 이후에 겪게 된 갈등들을 그린 작품이다. 드라마는 이 과정들을 영실(이시아)이나 채령(이이담) 같은 이방원이 거둔 후궁들과의 갈등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데 여기에는 앞서 고지한 대로 약간의 상상력이 더해진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상상력이 완전히 근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는 아니다. 실제 역사에서 이방원은 왕위에 오른 후 외척 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해 원경의 민씨 일가들을 하나하나 밀어냈고 이 과정에서 후궁 간택 문제로 갈등을 잦은 갈등을 빚었기 때문이다.

즉 <원경>은 이 역사적 사실을 드라마로 가져와 한 때는 같이 원대한 꿈을 꿨고 그래서 왕위에 오른 후에는 모든 걸 나누자 했던 원경과 이방원이 바로 그 왕좌라는 위치가 가진 무게감에 의해 균열이 생기고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왕위에 오르기 위해 형제의 난을 일으켰던 이방원은 심지어 아버지 이성계까지 자신을 위협하는 처지에 놓이고 한편으로는 민씨 가문의 권세를 견제해야 하는 입장에 처했다.
어찌 보면 왕위에 올라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갖가지 위험요소들에 둘러싸인 이방원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건 원경이 이를 대하는 태도다. 이 주체적이고 당찬 인물은 이방원이 자신의 몸종들을 후궁으로 거두는 것에 대한 분노를 드러내면서도, 남편이 위험에 처하면 몸을 던져서라도 구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사적으로는 원망하는 마음이 깊었을 수 있으나 공적으로는 자신이 해야할 역할을 하려는 이 양가적 위치는 그래서 원경이라는 인물이 사극에 왜 매력적인가를 잘 드러낸다.

따라서 사실 <원경>은 그다지 역사왜곡이라는 논란에서는 비껴나 있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놀라운 건 이 작품이 tvN과 티빙에서 동시에 방영하면서 그 수위를 15세와 19세로 나누는 투 트랙 전략을 썼다는 점이다. 그래서 15세 버전인 tvN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정사신이 19세 버전인 티빙에서는 편집없이 등장한다. 원경과 이방원의 정사신이 그것이다.
어찌 보면 역사적 인물들을 소재로 한 19금이라는 건 파격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이것 역시 OTT라는 새로운 시청방식의 등장이 가능하게 만든 선택이다. 과거 지상파 개념에 놓여 있는 방송의 시절에는 19금 드라마 나아가 19금 사극은 거의 시도조차 어려운 것이었다. 이른바 ‘보편적 시청자’를 상정하는 당대의 방송이 가진 한계 때문이다. 하지만 ‘선택적 시청’을 전제한 OTT의 등장은 이제 19금 사극의 문을 열게 했다. 지난해 티빙에서 방영됐던 <우씨왕후> 역시 그 계보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19금 사극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사실 지금껏 보지 못한 ‘선정성’과 ‘자극’이 더해진 사극이라는 점에서 당장 시선을 끌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OTT가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고 보인다. <우씨왕후>의 경우도 초반에는 관심을 끌었지만 생각보다 작품 자체의 완성도가 낮아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15세 버전과 19세 버전을 동시에 내놓은 <원경>은 그 선택에서부터 작품 자체의 완성도에 대한 자신감이 담겨 있다고 여겨진다. 실제로 자극적인 장면들이 빠진 15세 버전의 <원경>은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서사를 풀어내고 있다. 특히 지금껏 무수한 조선의 탄생과정을 다룬 사극들 속에 늘 등장하긴 했지만 주인공이 아닌 보조적 역할로만 나왔던 원경이라는 인물이 매력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사극은 ‘역사’와 ‘허구’가 결합된 형태의 장르지만, 어느 순간부터 역사보다는 허구로 더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물론 여전히 실존 역사적 인물을 폄훼하는 상상력은 허용되지 않지만 그 역사의 무게감을 한층 내려놓은 느낌이다. 여기에 OTT는 이제 그 표현 수위의 자유도까지 넓혀 놓고 있다. 한때 사극을 ‘역사’로 받아들이던 태도는 이제 바뀌기 시작했다. 보다 자유로운 상상력이 허용되는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사전고지 자체가 불필요해지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gmail.com
[사진=tv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