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오형제’, KBS 주말극다운 주말극의 귀환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독수리 오형제를 부탁해!>의 전작 KBS 주말극 <다리미 패밀리>는 기존의 주말극과는 다른 패턴을 보인다. 몇 년 간 주말극 특유의 촌스러운 정서를 벗어나지 못한 드라마들은 시청자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했다. <다리미 패밀리>의 전작 <미녀와 순정남>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뿐인 내 딸>로 정점을 찍은 김사경 작가의 드라마였지만, 주연배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반복된 “내 다리 내 놔, 아닌 박도라 내 놔!” 패턴과 인물들의 이해할 수 없는 감정으로 시청률은 답보상태였다.
<다리미 패밀리>의 경우 기존의 식상한 주말극과는 패턴이 달랐다. 여주인공 이다림(금새록)의 어머니 고봉희(박지영)를 비롯한 가족들이 돈다발을 얻으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다뤘다. 그렇다보니 돈을 숨기고, 잃어버린 돈을 찾으러 다니고, 돈 때문에 사람들이 달리지는 과정들이 펼쳐졌다. 기존의 주말극과는 다른 자극적인 재미였지만, 뭔가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해 보면 대중들이 공영방송 KBS 주말극에 기대하는 건 막장의 요소나 신파적인 정서만은 아닌 것 같다. 뭔가 주말의 휴식을 맞이하면서 편안한 마음으로 유쾌하게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정서가 오히려 더 크다. 그리고 그 정서는 지금은 사라진 대가족의 유쾌한 화합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그러면서도 감각적으로 지금 시대에 맞게 그려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아쉽게도 가족극의 대가였던 김수현 작가는 그 감각까지 이르지 못했기에 주말극에 복귀를 못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KBS의 새로운 주말극 <독수리 오형제를 부탁해!>는 새로운 시대의 가족극이 무엇일지 가늠할 수 있는 드라마다. <독수리 오형제를 부탁해!> 역시 재벌가와 대가족이 등장하고 훈훈한 가족의 정서가 있는 전형적인 가족극이다.

하지만 이 가족극이 다른 것은 가부장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드라마의 중심은 남편과 일주일 만에 사별 후 독수리 술도가를 이끌게 된 마광숙(엄지원)이다. 마광숙 캐릭터는 소위 긍정형 캔디형 캐릭터로 드라마 주인공으로 많이 사랑 받아온 타입이다. 하지만 <독수리 오형제를 부탁해!>는 이 캐릭터를 로맨틱코미디만이 아닌 가업 드라마의 실질적인 주인공으로 만든다. 여기에 자신의 남편이었던 큰 형 대신 네 명의 시동생 형제들의 리더로서도 훌륭한 모습 역시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여주인공을 주말 가족극의 중심으로 세워놓고 시작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반면 LX호텔 사장 한동석(안재욱)은 사연 많은 여주인공 같은 롤을 지니고 있다. 아내를 잃은 후 그는 수절에 가까운 삶을 살며 내성적이고 고뇌가 많은 인물이다. 이 인물이 밝고 긍정적인 마광숙을 만나면서 달라지고 새로운 사랑의 감정에 눈뜨게 된다.

한편 <독수리 오형제를 부탁해!>는 독수리 형제들을 통해서 시대에 맞는 풍경들을 그려내기도 한다. 둘째 오천수(최대철)는 기러기아빠고 넷째 오범수(윤박) 교수는 싱글대디다. 전직 아이돌인 셋째 오흥수(김동완)가 일하는 문화센터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사건들의 풍경 역시 새로운 재미를 준다.
<독수리 오형제를 부탁해!>는 주말극의 전형적인 휴머니즘은 유지하되 디테일을 요즘 감각에 맞게 재구성한 솜씨 있는 드라마다. 초반부의 시작이 굉장히 프레시한 느낌이 드는 건 그래서다. 익숙한 맛의 주말극을 보고 있는데 뭔가 낡고 텁텁한 막걸리가 아닌 샴페인처럼 상큼한 맛의 막걸리를 맛보는 기분이 든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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