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사나이’, 최후의 5분을 책임질 선택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우리나라는 징병제 국가다. 이따금 병역비리 문제가 발생하긴 하지만 주로 사회 고위층에서 발생하는 권력형 비리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어쨌든 우리나라 남자들은 대부분 군대에 가거나 그에 준하는 병역의 의무를 행한다. 따라서 대다수의 남자들이 군필이요, 미필이거나 여성인 경우라도 가족이나 친구, 선후배, 직장동료 등등 그 어떤 경우를 통해서도 군대와 관련된 경험이나 일화를 직간접적으로 겪거나 듣게 된다. 이처럼 군대는 성별과 세대를 불문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의 삶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실이다. 젊은 시절의 한 때를 추억하게 만드는 한 페이지이든, 애끓는 청춘들의 현재이든, 물가에 자식을 내놓은 부모의 심정이든 모두 이 실에 꿰인다.
<진짜 사나이>의 성공 원인과 정체를 가져온 문제점 모두 이 노선 상에 있다. 징병제가 지난 수 십 년간 이어지면서 국방부가 생각하는 군대의 이미지와 일반 국민의 생각 사이에 괴리가 생겼다. 병역의 의무에 대해 토를 단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국방부가 생각하는 군대의 활기 넘치고 밝고 선진화된 병영문화를 선전하고자하는 것과 달리 일반의 군대 추억담이란 것은 대부분 누가 더 고생스런 군 생활을 했느냐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이다.
피 말리는 내무생활과 ‘삽질’로 통용되는 불합리, 말만 들으면 그린베레도 기를 못 필 고된 훈련으로 점철된 고생담, 그리고 고문관 이야기가 어찌 보면 우리 피부에 와 닿는 군대 추억담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다. 손진영, 샘 해밍턴은 바로 이런 지점을 건드리며 시청자들의 시선을 군대 안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엄청난 인기를 얻자 등장인물의 캐릭터나 내무생활보다는 국방부가 보여주고픈 군대의 모습이 점점 메인이 되었다. <진짜 사나이>의 병영은 갈수록 활기차고 따뜻해져갔다. 그리고 그에 비례해서 사람들의 관심은 시들해져갔다. 한 번 생각해보라. 그 숱한 군대 얘기 중 체육대회에서의 장기자랑이나 웃음벨의 존재나 ‘도전! 백두용사’ 등의 이야기를 들어본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제작진은 응급수술을 단행했다. 관찰형 예능의 가장 검증된 수술방식인 멤버의 교체가 그 방법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대대적으로 보이지만 뜯어놓고 보면 퍼즐을 맞춘 것 같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군대체질이었던 류수영의 자리에는 의장대 출신의 박건형을, 실제 군복무 당시부터 특출 난 능력으로 소문이 자자했던 장혁 자리에는 조교 출신 천정명을, 그리고 구멍병사 손진영의 자리에는 아예 우리나라 군대 제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중국계 캐나다인 헨리(슈퍼주니어 M의 멤버)를 투입했다.

헨리의 투입은 즉각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구멍이란 단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4차원 고문관의 출현. 그는 군대가 람보 양성이 아닌 규율을 가진 집단이라는 것에 대한 이해가 아예 없었다. 불침번 근무를 서면서 등을 벽에 기대도 되냐고 물어보고, 총 얘기만 나오면 신나는 철부지다. 힙합 제스처가 몸에 밴 그는 훈련병 신분에 건들건들 거렸고, 대형 캐리어를 끌고 신교대에 입소하는가 하면 교관에게 형님이라 부르고, 훈련병 신분임에도 자외선을 차단에 도움이 된다며 가져온 패션 선글라스를 써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인물들을 조교의 심정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헨리는 이미 전례가 있는 인물이다. 모두가 쩔쩔매면서 예를 갖추는 자리를 한 번 뒤집어엎은 적이 있다. 그는 귀엽고 해맑은 얼굴과 미소 속에 피어나는 천진난만함으로 군대만큼 규율이 엄격하다는 주방에서 이미 자기 캐릭터를 살려 제대로 놀아본 적이 있었다.
헨리는 <마스터 세프 코리아>의 외전인 <마스터셰프 코리아 셀러브리티>의 히트 상품이었다. 모두가 요리 앞에서 겸손해지고 카리스마 넘치는 심사위원인 강레오, 김소희 셰프 앞에서 주눅이 들 때 웍을 돌리고, 불쇼를 하고, 박력 터지게 간을 하다가 매번 혼 줄이 나면서도 흥이 줄지 않았다. 마치 캔디보다도 더 꿋꿋했다. 모든 도전자들이 어려워하는 경상도 출신의 돌직구 심사위원 김소희 세프가 ‘단디 해라!’라고 불호령을 그렇게 내려도 쫄기는커녕 당락이 좌우되는 그 긴장감 가득한 경연 중에도 온몸으로 춤을 춰서 모두를 당황시켰다가 이내 웃음 짓게 만들었다. 알고 보니 ‘단디’가 누구 사람 이름인줄 알았다는 변이다. 경쟁이든 뭐든 주어진 상황을 즐길 줄 아는 헨리는 그 진지한 요리 경연 대회를 엉뚱함과 천진한 캐릭터로 난장판과 파티의 중간쯤으로 끌고 갔었다. 이제 케이블에서 공중파로, 주방에서 군대로 장소를 옮겨 또 한 번의 더 큰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진짜 사나이>는 이제 국방부는 물론 각 부대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것과 함께 헨리라는 대형 구멍 병사의 성장기를 주요 스토리라인으로 가져갈 것으로 보인다. 헨리는 검증된 무기다. 실제 병영에선 도무지 해야 할 이유가 없는 몰래카메라 대신 너무나 화목한 내무반 대신 실제 선임의 무서움과 점호의 긴장감을 다시금 느낄 내무반을 만들고, 다시 떠나간 관심을 군대로 돌릴 대형 마그네틱이다.
전우들과 함께 고생한 뒤 흘리는 눈물도 좋지만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은 연예인들이 실제로 군대 생활을 하는 모습이다. 체육 대회 등의 행사들은 지리한 진짜 병영과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이벤트다. 프로그램 초반에 인기를 끌 수 있었던 것은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었다. 샘 해밍턴과 박형식이 터트렸던 웃음 폭탄은 볼거리가 아닌 누구나 군대에서 겪어봤음직한 상황과 인물에 대한 공감대에서 나왔다.
그리고 더 큰 폭탄을 장착한 헨리가 나타났다. 그의 웃음 폭탄이 불발탄이 되느냐 마느냐는 헨리라는 고문관 유형의 병사를 어떤 관점에서 다루느냐에 달렸다. 다시 말해 앞으로 <진짜 사나이>가 다시 활기를 되찾느냐, 아니면 점점 힘이 빠지느냐는 일반 시청자의 시선에서 군대를 보여줄 것인가, 아니면 화목하고 활기찬 선진 병영 문화를 보여줄 것이냐의 선택의 문제다. 그러니 이 비중에 대한 선택이 앞으로 <진짜 사나이>의 최후의 5분을 책임질 전선이 될 것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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