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환장 기안장’을 우리 모두가 경험해 보고 싶은 이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넷플릭스 예능 <대환장 기안장>을 보고 있자니 얹힌 속이 단박에 내려간 양 시원했다. 그래, 방송이 이런 걸 해야지. 쉽게 가는 관찰 예능, 폭식 먹방, 의도가 모호한 해외여행, 진부한 토크쇼, 유튜브 따라 하기, 언제까지 제 자리 걸음을 할 일인가. 날씨가 요변스러운 울릉도 앞바다 바지선 위에 지어진 세트다. 안전 문제가 걱정이긴 하나 이 정도 규모라면 지상파 방송사 입장에서는 그다지 어려운 작업이 아닐 터, 출연자는 단 셋.
제작비면에서는 오히려 효율적이지 않을까? 예능이든 드라마든 제작비의 태반이 출연료라고 하지 않나. 묻고 싶다. 방송사들이 대체 왜 새로운 시도에 엄두를 못 내는 것인지. 듣자니 애써 기획안을 만들어 가져가도 윗선에서 묻는단다. “제작비는 어떻게 마련할 건데?”

<대환장 기안장>은 JTBC <효리네 민박>의 정효민 PD, 윤신혜 작가가 만들었다. 그런 이유로 <효리네 민박>을 예상한 손님이 꽤 있었는데 아뿔싸,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암벽 타기를 해야 비로소 집에 들어갈 수 있지를 않나, 밥을 먹으려면 봉을 타고 내려가야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편치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손님들은 웃으며 말한다. "이게 낭만이죠." 고통을 불평불만 없이 낭만으로 받아들이는 낯선 반응, 이게 바로 <기안장>의 기획 의도다. 이 불편함은 기안84가 설계했다. 어린 시절 스케치북에 그린 꿈의 집처럼 상상이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물론 현실은 만만치 않다. 손님이 쩔쩔매며 당황스러워 하는 모습에 본인도 한없이 흔들린다. 심지어 너무 힘들어 울기까지 했단다.
사실 위생관념이라곤 없는 기안84가 민박집 주인이라니, 어불성설이지 싶었다. 기안84를 화제성으로 이용한 제작진이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그러나 한편으론 정효민 PD라면 다르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브레이크 밟을 지점을 알고 있는 PD니까. 기안84는 돌아가려는 손님을 서운하다며 하루라도 더 묵으라고 붙잡는다. 빈말이 아니다. 과외가 있어 가야만 한다니 울릉도로 부르라고 할 정도다. 그리고 정말 학생이 왔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공간, 이게 <기안장>이다.

그리고 놀라운 존재감을 드러내는 이가 있다. BTS 멤버 진은 주인장이 흔들릴 때마다 나서서 중심을 잡아준다. 타협을 하면 여느 민박과 다를 게 없지 않느냐, 어조며 눈빛이 단호하다. 힘에 부친 기안84가 길바닥에 드러눕자 슬며시 옆에 누워주기까지 한다. 기안84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행동으로 지지한다. 월드스타지만 여기에선 눈치 빠르고 엉덩이 가벼운, 꾀부릴 줄 모르는 일꾼이자 든든한 동료다. 일예로 배드민턴 채를 들고 온 하율이가 실력 발휘를 못 한 채 떠나게 되자 그걸 알아채고는 한 판 쳐보자는 진. 배려가 일상인 모양이다.
또 한 사람 지예은. 암벽도 못 타고, 봉도 못 타고, 투정을 부리지만 이내 자기 역할을 묵묵히 해낸다. 보트 면허로 역할을 부여한 제작진의 선택이 탁월했다. “아~ 이게 뭐야”라고 소리치는 장면. 손님들이, 시청자들이 느끼는 어이없음을, 황당함을 지예은이 대변해주는 셈이다. SBS <런닝맨>에서는 수시로 외모 지적을 당하는 구박덩이 설정이지만 여기서는 독자적인 서사를 갖게 되지 않았나. 쿠팡플레이 <SNL>, <직장인들>에서와는 또 다른 얼굴로 ‘연예 대상’에 빛나는 기안84, 글로벌 스타 진에게 눌리지 않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인물로 성장 중이다. 스승과도 같은 <SNL>의 신동엽, 친오빠 같은 <런닝맨>의 유재석에 이어 기안84와 진까지, 인복이 폭발한 모양이다.

가장 놀라운 건 손님들이다. 암벽도 타고, 봉도 타고, 손으로 밥도 먹는다. 비를 맞으며 자기도 한다. 그러나 불평 없이 서로를 도와준다. 밤에 아이와 곤충을 보러 산에 오르고 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요즘 예능에서 보기 힘든 장면들 아닌가. 고생이 낭만으로 바뀌는 지점, 이게 감동이다. 굳이 손으로 밥을 왜 먹느냐, 보다가 더럽다며 혀를 차는 분도 계실 게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누가 썼는지 어떻게 닦았는지 모를 공용 숟가락보다는 꼼꼼히 닦은 자신의 손이 더 위생적일 수도 있다. 인도에 가서 기안84가 그걸 깨달았다. 물론 강요는 안 한다.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한 손님은 암 투병 중이었다. 두 아들과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기안장>을 찾았다고 한다. 기안84가 그려준 그림이 최고의 선물이지지 싶다. 그리고 세 부자가 함께 독도를 찾은 장면의 자막에 ‘독도’라고 적혀있었다. 일본어 자막에도 ‘獨島’가 선명하다. 글로벌 예능임에도 피해가지 않고 명확히 메시지를 전한 제작진의 소신에 박수를 보낸다. 기안84의 상상력, 진의 배려, 지예은의 성장, 손님들의 공감. 이 모든 게 맞아떨어진 <대환장 기안장>은 단순히 예능이 아니다. 방송의 성공이란 결국 나도 해보고 싶다, 동참하고 싶은 마음 아닐까. 여러분, <대환장 기안장>, 가고 싶지 않나요? ‘대환장’을 경험해 보고 싶지 않나요?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넷플릭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