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황후’, 이건 도대체 어느 나라 이야기일까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는 우리나라 드라마일까 아니면 중국드라마일까. 사실 요즘처럼 국가를 넘어선 합작 드라마가 나오는 시대에 콘텐츠에 있어서 국적성을 논한다는 건 조심스럽다. 하지만 그래도 동시에 방영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국내에서 우리말로 제작되고 있는 그것도 사극이 그 국적성이 모호하다는 것은 충분히 문제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
물론 이 모든 국적성 논란에 대한 변론은 있다. 그것은 실제 역사가 그러하듯이 기황후라는 인물이 고려에서 공녀로 원나라에 팔려간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녀는 거기서 원나라 황제의 눈에 들어 황후라는 자리까지 올라간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가 기황후의 자리에 오른 후 고려의 공물을 늘리고, 오빠인 기철이 권력을 쥐게 하면서 고려를 농단한 데다 무엇보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정책으로 기철을 죽이자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고려를 공격했다는 사실은 왜 사극이 그녀를 조명하는가에 대한 역사의식의 문제를 끄집어낸 바 있다.
이 역사의식의 문제가 불거지자 <기황후> 측은 이 사극이 실제 역사와는 다른 허구임을 강조했다. ‘이 드라마는 고려 말, 공녀로 끌려가 원나라 황후가 된 기황후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했으며, 일부 가상의 인물과 허구의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실제 역사와 다름을 밝혀드립니다.’ 드라마가 시작하기 전에 고지되는 이 자막은 그래서 붙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사의식의 문제는 허구임을 밝힌다고 해도 여전히 <기황후>의 발목을 잡는 사안이다. 즉 <기황후>는 기본적으로 고려와의 연관관계를 깊이 있게 다루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역사의식의 문제가 불거지기 때문. 드라마가 초반부 고려에서의 이야기를 다룰 때 역사의식과 왜곡 문제가 논란이 되다가 이제 아예 원나라로 배경을 옮기고 나서 이런 문제들이 사그라든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기황후>가 저 원나라의 황궁 안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멜로에 집중하는 것은 이런 한계점을 에둘러 말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딜레마가 생긴다. <기황후>의 이야기가 고려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역사의식의 문제에서는 달아날 수는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또한 이 사극의 국적성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린다는 점이다. 지금 현재 <기황후>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중국드라마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고려라는 입장이 빠져 있다. 도대체 이 중국의 이야기를 왜 우리네 사극에서 봐야한단 말인가.
사극에 대해 역사 왜곡 운운하는 일은 이제 어딘지 식상한 논란처럼 치부되어 버렸다. 사극은 이미 역사 그 자체가 아니고 허구라는 인식도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의 왜곡이 과거만큼 큰 문제로 지목되지 않는다고 해도 그 허구라는 상상력 속에는 역사를 바라보는 의식이 투영되기 마련이다. <기황후>가 우리 역사에서 벗어나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허구의 이야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상황은 그래서 이 사극이 가진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결국 무국적의 이야기로 흘러갈 수밖에 없는 <기황후>는 재미 하나만의 목적을 세울 수밖에 없다. 거기에는 사극이 전통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던 역사의식이 투영되기도 어렵고 또한 과거를 통해 현재를 환기하는 현실적인 공감대도 자리하기가 어렵다. 멜로와 궁중암투만으로 이만한 시청률을 거두어간 것은 실로 대단하다고 말할 만하다. 하지만 이 땅의 사극에서 중국 역사의 한 부분에 이토록 천착하는 <기황후>에 남는 아쉬움과 씁쓸함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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