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이냐 비싼 화장품이냐...쓸데없는 논쟁보다 중요한 것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tvN 주말극 <미지의 서울>. 12부작 중 8화까지 방송이 됐는데 요즘 본 드라마 중 단연 수작이다. 무리 없는 전개와 섬세한 서사의 인물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발군이다. 그중 ‘김로사’ 역의 원미경. 또래 배우지만 존경심이 절로 우러난다. 이번에도 본인보다 훨씬 나이 많은 역할을 맡았다. 누군가는 ‘원미경 너무 늙었더라’ 답답한 소리를 하는데 캐릭터를 위한 분장이지 않나. 주름지고 거친 피부, 헝클어진 머리, 추레한 옷차림. 듣자니 분장팀이 공들여 만든 ‘노인’을 슬며시 지우는 배우도 있단다. 그와 달리 원미경은 온전히 감내하며 진짜 노인이 된다.

반면에 마치 복사해서 붙여 넣기라도 하듯이 늘 같은 얼굴, 같은 연기만 반복하는 배우들도 있다. 미모를 내려놓지 못한 채 고운 시어머니, 단아한 엄마만 고수한다. 그렇다보니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어도 정작 어느 드라마였는지 누구 엄마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밖에. 나문희, 염혜란, 김미경 배우는 같은 엄마 역할일지라도 떠오르는 장면이며 대사가 있지 않나. 연기력보다는 역할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지 싶다.

며칠 전 김정난 배우 유튜브 채널에 <사랑의 불시착> 출연진이 모였다. 김정난을 비롯해 김선영, 차청화, 장소연, 당시 북한 주민을 연기했다. 역할이 주어지면 인물을 살리고자 얼마만큼 고심을 하는지 진심어린 이야기를 나눴다. 김정난은 tvN <눈물의 여왕> ‘범자’ 역을 두고 악몽을 꾸기까지 했다니 후배 배우들에게 귀감이 될 만한 시간이지 싶다.

그런 와중에 요즘 한참 화제인 선우용여 배우 채널에 윤미라 배우가 출연한 영상을 봤다. 박막례 님 이후에 모처럼 세대 간의 소통이 이뤄져서 반갑다. 그런데 여기서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선우용여 배우가 여든이 넘은 지금도 운전을 즐기는 건 물론 장거리 운전도 마다하지 않으신단다. 그 연세에 자유로이 활동하시는 건 바람직하지만 나라에서 70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면허 반납을 권장하는 상황이지 않나. 지난해 소공동에서 한 고령 운전자의 실수로 9명의 생명을 잃은 사고, 많이들 기억하실 게다. 그 이후 스스로 운전을 자제하는 어르신들이 늘었다는데 해당 영상을 보고 “선우용여도 하던데 나만 지레 겁을 먹었네!” 다시 운전대를 잡는 분들이 생긴다면? 교통이 불편한 지방이라면 운전을 포기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서울에서 왜 굳이? 어플로 택시를 부르는 장면을 보여주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또 한 가지, 두 분 모두 성형이나 시술을 한 번도 하지 않은 대신 고가의 화장품을 꾸준히 써왔다고 한다. 그 영상을 본 젊은이들이 ‘역시 비싼 화장품을 써야 젊음이 유지되는구나, 나도 미래를 위해 과감히 투자해야겠네’ 한다나. 과연 비싼 제품이 노화를 막는 데 효과적일까? 더 좋은 건 사실이겠지만 열 배 스무 배 비싸다고 해서 열 배 스무 배 더 좋을 리 없지 않은가. 경험상 더 좋다고 해야 한 1.5배 정도? 소소한 차이를 위해 무리한 소비를 할 필요가 있을까? 특히 뭘 써도 반짝반짝 빛이 날 젊은이들이 왜? 그날 두 분이 입을 모아 잦은 성형과 시술로 표정이 무뎌진 배우들을 나무랐다. 틀린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연구와 노력 없는, 타성에 젖은 연기 또한 문제 아닐까?

‘파노플리 효과’라는 말이 있다. 어떤 제품을 사면 그걸 사용하는 계층과 자신이 같아진다고 느끼는 심리란다. 명품 탐닉의 기반이 바로 이 개념이라고. 이제 물건이 아닌 명품 자세를 닮아보면 어떨까? 배역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원미경. 그리고 인물 안에 진심으로 스며들기 위해 고심하는 <사랑의 불시착> 배우들, 이와 같은 자세와 개념을 본받는 이들이 늘기를 바란다.

 

정석희 TV칼럼니스트 soyow59@hanmail.net

[사진=tvN,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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