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규 연기부터 제작진의 연구까지, ‘신사장 프로젝트’ 돌풍의 비결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소설가이자 수사전문지 <수사연구>의 편집장 입장에서 tvN 월화드라마 <신사장 프로젝트> 1회 첫 장면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 전 베테랑 협상전문가이자 현 치킨집 사장인 신사장(한석규)이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세입자(이중옥)와 협상하는 장면이 꽤 그럴듯해서다. 제작진이 경찰 위기협상 분야에 대해 상당히 많이 연구하고 이를 극화했지 싶다.

해당 사건은 방범창 설치를 미루는 주인 때문에 연달아 도둑을 맞은 세입자가 분노를 참지 못해 옥상에 올라가 분신을 시도하면서부터 시작한다. 세입자의 옆에는 여러 개의 휘발유통까지 있다. 한편 옥상 아래에는 분개한 집주인이 욕을 하며 세입자를 자극한다. 소방차와 경찰특공대는 세입자와 대치 중에 있다. 정말이지 심각한 위기상황이 아닐 수 없다. 위기상황에서 절대 금지해야 할 것은 위기자를 자극하는 일이다. 이 사건의 위기자인 세입자는 흥분 상태에서 금방이라도 온몸에 불을 붙일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신사장은 우연히 이 위기상황을 접하고 곧바로 건물로 진입한다. 물론 깨진 창 안으로 세입자의 방 안 풍경을 본다. 거기에는 미처 마시지 못한 우유 한 팩이 있다. 이후 신사장은 빨래바구니를 하나 만든 후, 옥상에 올라가 덤덤하게 위기자에게 말을 건다.

“아저씨, 나 이 빨래 좀 넙시다.”(신사장)

위기협상이란 이런 것이다. 대화가 불가능할 정도 흥분한 위기자의 마음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위기자의 문제를 급하게 해결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신사장은 이 규칙을 철저하게 지킨다. 그는 아랫집 영감의 도움으로 빨래를 널려고 왔다면서 슬그머니 위기자의 공간 안으로 들어간다. 또한 위기자가 총을 겨누는 경찰 특공대 때문에 두려움과 흥분에 젖어있자 그에게 자연스레 말을 건다.

“어차피 총 못 쏴요. 이 동네 가스랑 상하수도관이 낡아서 지뢰밭이나 마찬가지예요.”(신사장)

이 상황에서 신사장은 두 가지 스킬을 발휘한다. 우선 위기자를 안심시키고, 또 하나 객관적인 방식으로 위기자가 분신할 경우 예상 못한 큰 피해가 이 지역에 일어날 것을 알려주는 셈이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위기자 옆으로 다가가 소방차 호스에 물이 꽉 차 있다고 말한다. 분신을 해봤자 소방차에서 물을 쏴서 금방 꺼버릴 테니 다치기만 하고 죽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사장은 자기가 먹으려고 샀다면서 초코우유 한 팩을 위기자에게 건넨다.

“이거 쪼꼬우유. 당신 밤새 일하느라 아무것도 못 먹고 지금 속쓰리잖아요. 자 잡숴요.”(신사장)

초코우유를 받은 위기자는 조금씩 감정을 가라앉힌다. 위기협상에서는 위기자의 격렬한 분노의 감정을 배출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그 감정이 배출되어야 위기협상을 위한 마무리로 나아갈 수 있다.

신사장은 또 자신도 그와 비슷한 세입자 처지라면서 건물주 뒷담화에 동참한다. 바로 위기자와 라포, 정서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이다. 유대감이 형성되면 이제 위기자와 함께 위기 상황에서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만 위기상황에서 위기자의 감정은 가라앉았다가도 다시 금방 불타오른다. 그리고 어느 순간 위기자를 자극한 위협상황이 반복되기도 한다.

이 위기상황에서는 흥분한 집주인의 재등장이 그것이다. 모든 것이 잘 끝나갈 무렵 집주인은 또다시 건물 아래에서 큰 소리로 세입자를 욕하기 시작한다. 위기자가 다시 흥분하자, 이때 신사장은 또 다른 협상기술을 발휘한다. 오히려 자기가 위기자보다 더 화를 내고 집주인을 욕하면서, 위기자의 감정이 더 끓어오르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찰에게 눈짓으로 빨리 집주인을 치우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집주인이 계속해서 흥분하며 위기자를 자극하자 서둘러 묘안을 낸다. 바로 위기자가 놀랄 만큼 화를 내면서 동시에 위기자가 쌓아둔 휘발유통을 옥상 밖으로 내던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경찰특공대에게 지시하듯 말한다. “들어와, 빨리 들어와!”

극적으로 과장되긴 했지만 <신사장> 프로젝트는 이처럼 실제상황에 어울리는 위기협상 전문가 캐릭터를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 엿보인다. 당연히 베테랑 배우 한석규 또한 신뢰감 주는 미소와 목소리, 편안한 말투로 베테랑 위기협상 전문가를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그 결과 <신사장 프로젝트>는 초반부터 화력이 붙어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인기가 꼭 위기협상 캐릭터의 완성도 때문만은 아닌 것도 같다. 어쩌면 은연중에 우리는 기다리고 있던 것 아닐까? 달콤하지만 공허한 위로나 피로감을 느끼는 위협의 시대가 아닌 합리적인 언어로 내 마음을 움직여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협상의 풍경을.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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