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기적 승부수 띄운 ‘심장이 뛴다’를 위한 조언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예능프로그램 <심장이 뛴다>는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무대다. 그곳은 리얼버라이어티 속의 현실도 아니고 보통의 관찰형 예능처럼 기획 하에 놓인 일상도 아니다. 우리가 거닐고 다니는 그 길과 동네이다. 실제 환자들이 등장하고, 모든 건 실제 그날 접수된 상황에 따라 그림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보고 있으면 웃음보단 분노가 치밀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예능으로 분류되지만 따뜻한 감동이 있는 <인간극장>류의 인물다큐나 우리사회의 어두운 곳을 파고드는 ‘카메라출동’과 같은 르뽀에 가깝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관찰형 예능프로그램이 한창 붐일 때 찾아온 <심장이 뛴다>는 소방서를 그들이 힌트를 얻었던 군대처럼 다뤘다. 실제 소방관이 되기 위해 고생스럽고 혹독한 기초훈련을 받으며 땀방울을 흘리고 소방서 내에는 시퍼런 군기에 얼어 있는 연예인들을 보는 것이 재미였다. 하지만 공감대가 클 수밖에 없는 군대 설정을 시청자와 공유하는 데 한계가 있고, 일상 자체가 훈련이 아닌 실제상황이다보니 여타 관찰형 예능처럼 진행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러자 콘셉트와 정서가 점점 변했다. 열일곱 번째 출동을 한 이번주 방송을 보면 ‘체험 삶의 현장’이 아니라 일선 소방서 최고의 이벤트에 가깝다. <심장이 뛴다>는 이미 진정성과 열정을 보여줬기 때문에 소방방재청 입장에선 엄청난 홍보효과를 누리는 셈이고 해당 소방서 입장에서는 일터에서 연예인들과 호형호제하며 생활할 기회이니 마다할 리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소방방재청 입장이고 방송국의 차원에선 고민이 깊다. 멤버들이 끈끈한 가족애를 형성하고 각자 그리고 함께 성장하는 건 리얼버라이어티 이후 관찰형 예능까지 이어져 오는 기본 정서다. 소방업무 특성상 소단위 팀으로 나뉘어 활동해야 하고, 심지어 관할서도 따로 배치 받는 판국에 기존의 예능 문법으로 풀어가려니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나마 활력소 전혜빈, 듬직한 박기웅, 귀여운 최우식, 환장할 콤비 ‘투 동혁’ 등 캐릭터가 잡힌 것은 다행이지만 웃음을 기본으로 하는 건 조동혁, 장동혁 뿐이고 그나마 현장에서는 캐릭터로 스토리를 엮을 수가 없다.



현장은 실제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개성보단 매뉴얼대로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 따라서 이야기가 많은 곳을 본능적으로 찾아가는 카메라는 멤버들에게서 우리 사회의 어두운 자화상을 비추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그곳에는 이기심과 무관심이 낳은 천박한 시민의식이 있었다. 사람들은 분노했다. 2014 특별프로젝트 ‘모세의 기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잃어버린 시민 의식 회복은 <심장이 뛴다>의 승부수다. 응급차, 소방차에 전혀 양보하지 않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공분을 자아내고, 시민들을 도와주고도 하대당하고 무시당하는 소방관의 고되고 험난한 하루를 담는다. 술 먹고 출동시킨 다음 욕설을 내뱉고, 근처 병원이 있음에도 대여섯 번이나 지정병원을 바꿔서 응급차의 업무를 마비시키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울화통이 터진다. 결정적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방법은 사연이다. <심장이 뛴다>가 만난 가장 위급한 환자였던 이종순 씨는 결국 골든타임을 확보하지 못해 다리를 잃었다. 그 큰 사고에도 의연한 그녀의 눈물은 구급차에게 길을 양보하자는 이 캠페인의 당위를 100% 담보한다.

이런 계도 목적의 캠페인을 내세운 <심장이 뛴다>는 관찰형 예능 시대의 새로운 모습이다. <인간의 조건>은 일종의 제안이고 <런닝맨>의 전 좌석 안전띠 착용 캠페인은 콘셉트가 아니라 PPL에 가까운 홍보다. 무엇보다 연예인의 실제 체험과 일상을 담는다는 관찰형 예능의 틀을 벗어났다.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넘어선 것이 아니고 벗어난 것이다.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을 개척했다기보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흘러가다보니 그 예전 <일밤>의 ‘이경규의 양심 냉장고’로 이어진 것이다.



‘모세의 기적’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그리고 필요가 절실한 캠페인은 맞다. 그리고 어쩌다 이런 방향으로 틀어졌다고 해서 폄하할 것도 없다. 이 세상 대부분의 성공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문제는 4%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저조한 시청률이다. 많은 사람들이 캠페인에는 동조하면서 정작 방송을 보지 않는다면? 캠페인은 결국 허무한 외침으로 묻히고 말 것이다. 캠페인을 성공하기 위해선 한 가지에 이야기에 집중해 더 자극적으로 공분을 끌어내든지, 이야기가 재밌어 빠져들게 하든지 해야 한다. 시청률 반등을 위해선 지금보다 무엇이든 더 확실하게 밀어붙여야만 한다.

<심장이 뛴다>의 저조한 시청률은 캠페인을, 그리고 관찰형 예능의 새로운 가능성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이다. 당위만으로 예능의 재미를 만드는 건 이미 7년 전 <느낌표>를 통해 막힌 길임이 밝혀졌다. 그렇다고 웃음과 당위를 적절히 배합하는 건 <무한도전>만 이룩한 일이다. 결국 캠페인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면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캠페인이 예능에 있어 다시 한 번 승부수가 될 수 있을까? 가능성은 충분하다. 7년 전과 달라진 점은 시청자들의 실시간 피드백이 가능한 환경이 되었고, 여론 형성이 즉각적이고 가시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이 ‘모세의 기적’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매혹해야 한다. 그냥 당위만 느낀다면 캠페인은 성공이지만 방송은 제자리에 머문다. 방송, 특히 예능은 당위나 가치가 아니라 우선 볼거리로 다가와야 다음의 모든 스텝이 가능해진다. 그런 게 바로 TV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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