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소라는 왜 힘을 빼고 노래했을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별자리 스토리] '나는 가수다'에서 공교롭게도 두 번씩이나 이소라는 가장 힘겨울 수밖에 없는 첫 무대에 서게 되었다. 어찌 첫 무대의 긴장감이 없었을까. 게다가 그녀는 꽤 오랫동안 TV프로그램에 등장하지 않았었다. 심지어 음악 프로그램에도. 그러니 '나는 가수다'의 첫 무대는 새롭게 시작하는 이소라의 첫 무대이기도 했다. 차분히 앉아 감정에 몰입하는 그녀는 긴장이 역력한 얼굴로 특유의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시작된 그녀의 노래, '바람이 분다'. 낮게 읊조리듯 조용한 미풍처럼 시작된 이 노래는 그러나 서서히 고조되기 시작하더니 절정에 가서는 폭풍처럼 관객을 압도했다. 노래가 바람처럼 흘러 다닌 4분 남짓의 시간이지만 그러나 이 짧은 시간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이소라의, 무대를 앞두고 날카로워진 모습은 보는 이들마저 무대에 더 집중하게 만들었고, 그녀가 부른 '바람이 분다'는 차분하게 관객들의 귀를 음악에 맞추더니 급기야 무언가 울컥하는 진정성의 감동까지 전해주었다. 이것으로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는 확실하게 대중들에게 각인된 것이다. 노래가 있고 도전이 있고 최고의 노력이 있고 무엇보다 그 진심이 있는.

처음 '나는 가수다'를 기획하고 런칭했던 김영희 PD는 이소라를 제일 먼저 만나 여러 방향을 서로 의논했다고 했다. '나는 가수다'라는 제목 자체가 이소라가 제안한 것이었다. 가수의 진정성을 담는 이 제목만이, 많은 가수들이 이 경연의 무대에 설 수 있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이소라가 이미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를 그리는데 상당한 일조를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녀가 사회자를 맡은 것도 단순히 '이소라의 프로포즈'의 경험 때문만은 아니지 않았을까. 김영희 PD는 그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물론 중간에 굴곡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른바 '재도전' 논란을 겪으면서 이소라의 사회자로서의 자질 논란도 불거져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편집할 것을 편집하지 않고 그대로 내보낸 제작진의 잘못이 더 크다. 그래도 이소라는 그 비판을 부인하지 않고 겸허히 받아들였다. "사회자로서 부족한 모습을 보였던 것 같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사실 무대 위에서 사회자로서의 이소라는 합격점이었다. 온전히 노래와 가수에 집중시키게 하면서도 간간히 "투표에서 저를 잊지 말아 달라"는 식으로 웃음을 주는 여유도 보여주었다.

가수로서의 도전에 있어서도 그녀는 모험을 피하지 않았다. 보아의 'No. 1'을 리메이크한 이소라는 이 댄스곡을 강렬한 록의 느낌으로 소화해냈다. 물론 이런 시도는 이소라의 옛 앨범을 기억하는 이들에게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녀는 이미 10년 전 자신의 앨범에 록을 시도한 적이 있다. 물론 대중들의 기억에는 발라드로만 기억되지만. 이소라는 그녀의 음악에 대해 흔히 대중들이 갖는 선입견을 과감해 깨버린 것이다. 이소라의 이런 도전은 다른 가수들에게도 그대로 영향을 주었다. 좀 더 자신의 틀을 깨는 모습을 과감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새로운 각오를 가수들에게 심어준 셈이다.



두 번째 경연에서 또 첫 무대는 이소라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송창식의 '사랑이야'를 그 어떤 기교나 과도한 창법에 의존하지 않고 담담하게 불러냈다. 그간의 '나는 가수다'의 무대와 비교해보면 심지어 심심하게까지 여겨지는 무대. 그러나 이 지극히 차분하고 심지어 경건하기까지 하게 만드는 무대는 또 그 날의 경연무대의 기본 바탕을 만들어주었다. 그녀의 조용한 첫 무대가 자칫 과도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는 관객들을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혔던 것. 그러자 다른 가수들로 이어지는 다음 무대는 더 돋보이게 되었다.

'나는 가수다'의 반석으로서 이소라가 빛나는 것은 단순하게 그 첫 무대의 자리에 임재범이 서 있었다면 어땠을까를 상상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만일 그랬다면 다음 무대들은 어딘지 너무 밋밋하게 여겨지지 않았을까. 자칫 엄청난 힘의 퍼포먼스만이 과도하게 강조되게 되면(물론 이 감동이 '나는 가수다'의 정체성이지만) '나는 가수다'의 무대는 점점 과해질 수밖에 없다. 무대가 끝난 후, 그녀가 한 인터뷰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힘을 많이 빼고 불렀다. 가족들과 친구들 앞에서 부르는 것처럼 불렀다. 점점 노래를 세게 부르는 것에 내 귀가 지쳐가는 것 같다." 그녀는 이러한 '나는 가수다'의 무대의 변화를 읽고 있었고 그 본래의 균형을 맞추려 했던 건 아닐까. 그것이 무엇이든 이소라가 그간 해온 역할들은 '나는 가수다'라는 무대의 기본을 유지하게 해주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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