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별바라기’ 드디어 강호동도 착한 예능이 어울리기 시작했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강호동의 절치부심, <별바라기>가 방송됐다. 내부 경쟁을 먼저 거쳐야 하지만 이번 시즌 파일럿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정규방송화가 유력한 것이 바로 유재석의 KBS2 <나는 남자다>와 강호동의 MBC 복귀작 <별바라기>다.
무너지는 예능 톱MC의 위상을 방어해야 하는 위기에 놓인 챔피언의 입장, 스튜디오 예능으로 승부를 봐야하는 상황에서 강호동이 질 높은 토크쇼를 보장하는 황선영 작가와 손잡고 <달빛프린스>의 대참패 이후 다시 한 번 착한 예능으로 승부수를 던졌다. 결과는 4%대 중반의 시청률. 결론부터 말하면 나쁘지 않다.
지난 해 8월 폐지된 '황금어장-무릎팍도사' 이후 9개월여 만에 MBC에 복귀한 강호동은 무릎팍 도사의 이미지를 벗어나려고 애쓰는 듯 보인다. MC로서의 롱런 가능성을 여기서 보기 때문일까. 쓴맛을 보았던 <달빛프린스>도 그렇고 그는 도사와 시베리안 야생호랑이 등으로 대표되는 자신의 캐릭터를 조금 유하게 만들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래서 잡은 스타일이 있는데 특별히 새로운 건 아니고 SBS <야심만만>이나 <스타킹>의 진행스타일을 확장한 것이다. <별바라기>의 경우, 토크에서는 한 발 물러서 있지만 스타와 팬이라는 두 게스트 집단과 다수의 패널이 놓인 삼각 구도의 무대 중심에 서서 다소 과한 리액션과 호응 유도 등에서 표출되는 에너지로 좌중을 이끌어간다.
그래서인지 신개념 토크쇼라고 했지만 새로운 미학 개념이 도입되어야 새롭게 볼 수 있을 법한 무대 세트나 해외여행권을 내건 부상도 그렇고 별로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사실 대부분의 파일럿이 신개념이라고 홍보하지만 정작 신개념 예능은 보다 안정적인 정규 프로그램에서 잉태된다.)첫 회니까 안전판을 마련하고자 과했겠지만 등장인물도 너무 많다. 그냥 강호동이 진행하는 토크쇼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강호동이 진행하는 재밌는 토크쇼다. 처음 방송하는 팬들이 쏟아내는 토크의 질이 상당히 높고, 제작진은 1시간 동안 한 순간도 어색하거나 지루한 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사전 인터뷰를 통해 그린 청사진이 꽤나 정밀했다는 것인데 작가진의 노고가 드러나는 부분이자 유재석의 파일럿 프로그램과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지점이다.
등장인물이 많아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중간에 사라진 소유 정도를 제외하면 각자의 롤이 명확했다. 강호동은 웃음 욕심보단 진행에 집중했다. 송은이와 남미 에로배우라는 귀한 캐릭터를 가진 권오중, 김영철, 신동 등의 유능한 도우미들이 웃음을 책임지며 역할분담을 했다. 이것이 그간의 강호동식 토크쇼와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다. 정형화되고 의외성이 나오기 힘든 원맨쇼 스타일의 진행은 어쩔 수 없으니 아예 웃음을 강호동의 영역 밖으로 빼냈다. 이 전략은 그 어느 때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특히, 오랜만에 공중파 토크쇼에 등장한 송은이는 강호동과 은지원이 웃는 와중에서도 연신 엄지를 치켜세울 정도로 발군의 재치와 감각을 선보였다.

또한 이휘재, 은지원 등 급이 되는 게스트들이 든든하게 자기역할을 하면서 한 몫을 했고, 무엇보다 팬들도 딱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들의 예능급수만큼 입담을 뽐내면서 이 파일럿 토크쇼에 희망을 불어넣었다. 우리 오빠가 팬에게 잘해줄 사람이 아니라고 하고, 인피니티를 보고 배우라고 하며, 결혼 소식을 팬 카페에 알리지 않고 갔으면 잘살기라도 하지라고 말끝을 흐리면서도 할 말 독한 말 다하는 은지원의 팬과 결혼 소식을 팬카페에 먼저 알리지 않았다고 서운해 하는 팬들에게 속 좁다고 말하는 은지원이 주고받은 돌직구는 <라디오스타> 이상이었다. 이휘재가 마치 WWE를 보는 것 같다며 이 프로그램의 착한 취지에 안 맞는 것 같다고 할 정도였는데, 이처럼 <별바라기>는 팬클럽 관련 토크를 추억과 짝사랑의 감정으로만 오글거리게 몰고 가지 않으면서 재미를 선사했다.
아울러 이휘재의 술친구가 된 팬들의 풍부한 사연, 유인영과 손진영과 팬들과의 따뜻한 교감, 인피니트로 산후우울증을 극복했다는 팬의 감동 스토리 등 스타를 향한 각양각색의 감정과 에피소드는 스타의 여러 가지 면모, 특히 그동안 몰랐던 인간적인 부분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관찰형 예능 등 요즘 방송이 추구하는 소통과 일상의 정서를 토크쇼에서도 잘 담아낸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정작 방송 후 히트 한 건 방송에선 가장 존재감이 적었던 10등신 미녀 유인영이었다. 방송의 재미를 100% 반영하지 못한 결과다. 일단 보면 주고받는 토크의 합이 쫄깃해서 재밌지만 팬과의 소중한 소통, 추억 이외에 한 줄로 뽑아낼 무엇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방송 후 수많은 연예 기사들이 유인영의 외모 등으로 접근한 것이 그 어려움에 대한 방증이다. 이 대목에서 유인영이 주목을 독차지 한 건 ‘소통’의 정서를 전면에 내세운 프로그램에게 그리 좋은 신호가 아니다.
스타와 팬을 주제로 토크쇼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애정과 추억의 에피소드를 중심에 놓을 수밖에 없다. <별바라기>는 ‘너무 좋아요’와 ‘그땐 그랬지’를 넘어선 지점이 있음을 파일럿을 통해 보여줬지만 그 과정에서 벌써 팬클럽 역사의 핵인 젝키와 H.O.T의 라이벌리 팬덤 문화를 다뤘고 90년대 추억여행도 다녀왔다. 일단 센 카드 몇 장을 미리 쓴 셈이다. 그래서 다음과 그 다음에 이뤄질 스타와 팬의 만남이 재밌는 토크쇼는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이 구경하고 싶은 소통의 장을 마련할 꺼리가 화수분처럼 나올 수 있을지 벌써 걱정이 된다.

게다가 착한 예능은 말하려는 지점이 너무 명확해서 식상해지기까지의 유통기한이 유제품 수준이다. 지금처럼 방송환경과 시청자의 기호가 동시에 빠른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일상과의 소통’의 한 각론인 ‘스타와 팬의 소통’만으로 지속가능한 재미를 만들 수 있을지 솔직히 미지수다.
하지만 단 한 번 만이더라도 강호동과 송은이의 입담에 빠져보고 싶고 가면을 쓴 은지원의 팬처럼 새로운 입담꾼이 나타날게 기대하게 하는 묘한 힘이 있었다. 이휘재나 은지원 팬들의 파트만이라도 다시 보기를 하고 싶게 한다. 문제도 보이지만 그걸 넘어서는 기대를 품게 하는 것. 이것이 파일럿을 제작하고 정규방송으로 들어가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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