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체능’ 강호동은 정형돈의 멍석이 될 수 있을까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두 명의 뚱보가 등장하는 그림은 힙합판을 제외하곤 익숙하지 않다. <무한도전>도 정형돈, 정준하를 콤비로 붙여놓지 않는다. 예부터 코미디는 이른바 미국 고전 슬랩스틱 듀오 Laurel & Hardy나 1980년대 영화 ‘Blues Brothers’, 90년대 이윤석과 김진수의 허리케인블루처럼 홀쭉이와 뚱뚱이를 붙여놓는 게 클래식이다. 강호동과 이수근, 유재석과 박명수처럼 외적으로 단박에 상반된 캐릭터를 드러내는 조합을 주로 꾸리는 식이다. 물론 <컬투>의 경우 비슷한 두 명의 입담으로 오랜 사랑을 받고 있지만 이들은 만담 형이고, 그 전신인 컬트삼총사 또한 정성한을 중심에 놓고 ‘홀쭉이와 뚱뚱이’와 비슷한 그림으로 시작했다.

<우리동네 예체능>에 정형돈이 투입된 것은 그래서 매우 흥미롭다. 중심에 뚱뚱보 콤비가 있는 그림도 낯설지만 예능계의 주전 선수로 활동하는 십 여 년 동안 딱 세 번 함께 촬영했을 뿐, 처음으로 고정 파트너가 된 두 인물의 만남이 낯설기 때문이다. 그 둘은 모두 뚱보 캐릭터로 출발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지만 두 인물이 지향하는 캐릭터는 홀쭉이와 뚱뚱이만큼이나 이질적이다.

정형돈은 정서적으로 예민하고 강호동은 외적으로 센 기운이다. 강호동이 아무리 착한 예능, 조금 더 유한 형님이 되고 싶어 하지만 형님 코미디의 안에서의 변주다. 정형돈에게 문 닫으라고 시키고, 나이와 호칭에 대한 논란을 첫 만남의 주요 웃음 요소로 가져간다. 반면 정형돈은 아무 데서나 옷을 훌떡 벗어재끼고, 안양공고 팀에게 전반에만 10점 넘게 먹어놓곤 자신이 수비수로 나서니 “니네들은 이제 골 못 잡는다 봐야지. 이제 끝났다고 봐야지.”라며 자신감 넘치게 으름장을 놓는다. 하지만 그의 호방함은 어이없음과 너드의 귀여움처럼 정서적 범주 내에 있다. G드래곤과의 패션 대결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역할 자체도 다르다. 강호동은 진행과 전반을 아우르는 데 익숙하고 정형돈은 존재감이 반짝이는 롤플레이어에 가깝다. 강호동은 다른 이들의 재능을 자신의 에너지로 웃음을 증폭시키는 타입이다. 그간 강호동과 함께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온 은지원, MC몽, 이수근 등이 모두 반짝이는 재치를 갖고 깐족거리는 동생 캐릭터였고, 특히 이수근은 보조 진행이 가능해서 강호동을 더 편하게 해주었다. 강호동의 진행이란 신동엽이나 유재석처럼 유려한 게 아니라 본인의 리액션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것인데 은지원이나 이수근은 리액션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판을 만드는 경험과 기술이 모두 탁월했다. 반면 정형돈은 강호동이 지금껏 함께해왔던 다른 예능인들보다 섬세한 지점에서 웃음을 만든다. 그래서 그냥 웃어주는 것으로는 안 되고, 그가 무엇을 하는 거고 무엇이 웃긴 것인지 옆에서 집어 줄 때 비로소 폭발력을 갖는다. 그의 은갈치 패션이나 발리 가방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둘이 처음 만났다. 모두에게 모험이다. 첫 만남을 가벼운 몰래카메라 상황으로 가면서 정형돈의 행동이 ‘예능선배’의 예상과 데칼코마니처럼 맞아떨어진다고 웃고, 놀라는 정형돈을 보고 다시 엄청난 리액션으로 웃었다. 그러나 이것은 강호동의 방식이지 정형돈의 길이 아니다. 그는 한국판 켄정과 같은 인물이다. 자기만의 독자적인 캐릭터로써 웃음을 만들어내는 드문 캐릭터다.

실제 미드를 즐겨본다고 알려진 정형돈은 <개그콘서트> 시절 이후부터 뚱보의 전형인 에너지를 벗어나 맥락 속에서 캐릭터를 통해 웃음을 만든다(물론 그 사이 긴 방황이 있었긴 했다). 깐족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비슷한 부류를 잘 찾아내고 집어낸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의 이규혁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포착해 긁어댄다. “딱 1분만 뛸 수 있다” “하다가 확 쉬니까”라며 이런저런 군색한 변명을 하는 이규혁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식이고, 그 또한 이런 맥락을 집어낼 줄 알고 맘껏 펼칠 수 있는 유재석이란 멍석을 만나 만개했다. 이런 세심함은 강호동의 것과 다른 지점이다.



이처럼 지금껏 다른 필드와 방식으로 지내온 두 뚱보 캐릭터가 한 필드 위에 함께 올랐다. 이영표가 특성을 파악하고 전술과 자리를 새롭게 배치했던 것처럼 이 둘도 각자의 특성 파악과 조정이 필요할 것이다. 단지 시간에 모든 것을 맡기기 보단 각자 지금까지 자신이 해오던 것과 전혀 다른 소재의 멍석 위에서 어떻게 구를지 좀 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부침을 겪던 <우리동네 예체능>은 월드컵을 맞아 축구를 시작했다. 제작진도 바뀌었고, 멤버도 확 바뀌었다. 그리고 대부분 도전하지 않았던 강호동과 정형돈 조합을 가지고 나왔다. 시청률은 5.7%. 이영표의 등장 등의 호재가 상승요인이었다. 이영표에 대한 반가움, 축구에 대한 관심은 좋은 흐름을 유도할 수 있지만 태권도 편이 반면교사다. 화요일 밤 자정에 가까운 시간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으려면 일단 재밌어야 한다. 그래서 들어온 정형돈 카드가 강호동과 어떤 조화를 이룰지는 두 명 모두에게 도전이기도 하고 시청자들에겐 즐거운 관전 포인트이기도 하다. 각자 웃기는 건 기본이다. 기존 예능계의 ‘라인’을 벗어나 좌충우돌 뚱뚱보 콤비만의 새로운 웃음을 기대해본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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