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 이 썸의 정서를 쭉 유지할 수 있다면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일요일이 좋다-룸메이트>는 리얼이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관찰형 예능 형식과 제작방식을 따르고 1인 가구 시대에 쉐어하우스라는 새로운 가족관계와 주거형태에 주목한다. 기획의도와 제작방식은 일상과 방송의 경계를 허물고 시청자와 직접적인 공감대를 마련하는 요즘 예능의 트렌드를 따르고 있지만, 그래도 <룸메이트>는 리얼이 아니다.

그렇다고 리얼이 재미의 절대적 시금석도 아니다. 꼭 리얼해야 공감대를 얻고 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도 아니고, 리얼의 반대가 시청자를 속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룸메이트>가 홍보했던 모습과 실제 프로그램 간의 차이를 짚는 것이다. 이 과정은 매우 중요다. 무슨 리얼을 추구하고 쉐어하우스를 어떤 시선으로 다루는지에 따라 프로그램의 완성도와 재미를 어떻게 평가할지 그 기준이 달라진다.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 빚어내는 신풍속도를 어떻게 예능화할 것인지, 궁극적으로 방송을 넘어서 진짜 유사 가족이 만들어지는 스토리가 가능한지에 대한 기대와 <패밀리가 떴다>의 도시판이나 <우리결혼했어요>의 확장판에 대한 기대는 애초에 다른 장르와 차원의 기대이기 때문이다.

<룸메이트>는 출연자들이 장기자랑을 하도록 하고 박봄이 애교를 발산해 신성우의 수염을 깎는 이벤트에 꽤 긴 시간을 할애한다. 또한 배경음악, 나레이션 등을 통해 캐릭터를 잡아주고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은 일상에서 공감대를 찾는 관찰형 예능이라기보다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보여준다는 콘셉트에 가깝다. 이미 2008년부터 30쌍이 넘는 ‘우결’ 커플을 지켜봐왔던 익숙한 방식이고, 케이블 채널에서 아이돌 팬덤을 자극했던 그림이다.

<룸메이트>는 이 엿보기의 방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결>의 판타지가 둘의 연애를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성격이라면, <룸메이트>는 근사한 아지트의 커뮤니티에 시청자를 초대한다. 모두가 처음 만나다보니 11명이나 되는 출연자들이 서로 알아가고 다가가는 과정의 설렘은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파된다. 이들이 늦은 밤 2층 거실에 도란도란 앉아 서로 친해지는 동안 시청자들도 이들과 친해지고 알아가게 된다. 그리고 속하고 싶어진다.



이것이 <룸메이트>의 셀링포인트다. “언니도 저처럼 정상은 아닌 것 같아요.”라고 말하는 나나와 그 언니로 지목된 박봄(2화는 거의 박봄의 엉뚱 매력으로 이끌고 갔다)의 매력을 주말 지상파 예능에서 만난다. ‘다나까’ 말투를 쓰는 파이터 송가연, 겉은 멀쩡하지만 바보 형제가 될 것 같은 이동욱과 서강준, 아빠 같은 큰 누나 이소라, 엄마 같은 큰 형 신성우, 꽃미남 동생들 사이에서 ‘설레는 홍누나’가 된 홍수현 등이 차례차례 매력과 개성을 드러낸다. 마치 옴니버스 영화처럼 그들 한 명 한 명이 독립된 스토리요, 그들이 서로 어떤 조합으로 묶이느냐에 따라 또 다른 무궁무진한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성북동에 자리한 그들의 집은 삶의 터전이라기보다 펜션 같다. 그들은 함께 산다고 하지만, 시청자들이 볼 때 마치 MT를 떠난 연예인들을 엿보는 것 같다. MT란 기본적으로 신나는 일이면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대를 품게 하는 것처럼 시청자들은 엿보는 동시에 이 새로운 커뮤니티에서 벌어질 일들에 기대하며 기꺼이 감정이입을 할 준비를 한다. 각자의 매력과 개성을 가진 11명의 선남선녀는 것은 무궁무진한 관계의 실타래다. 찬열과 서강준이 피아노로 은근한 자존심 대결을 했고, 여자들의 은은한 기싸움도 있다. 여기서 분위기메이커이자 방송이 될 만한 장면을 많이 만들어내는 조세호는 윤활유이자 캐스터의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우결>의 판타지가 연인 관계의 로맨스였다면, <룸메이트>는 더 다양한 관계와 감정을 이른바 ‘썸타는 상황’으로 내몰면서 재미와 판타지를 만든다. 선남선녀의 미묘한 애정기류도 그렇고, 처음만난 이들이 서먹서먹하다가 하나의 가족이 되는 관계도 그렇다. 원래 설레는 게 ‘썸’의 정서다. 연애의 꽃이 사랑이 시작되기 전의 설렐 때이듯(요즘 말로 썸이듯) <룸메이트>의 식구들이 서로에게 점점 다가가는 지금이 가장 설렐 때다.

여기에다 박봄, 나나 같은 4차원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잘 맞아떨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보고 싶은 공간이자 커뮤니티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모처럼 11명이 함께해 함께 살아갈 규칙을 세우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함께하는 아침 식사를 흐뭇하게 바라보게 되는 게 다 같은 맥락이다. 지금까지의 글을 정리하자면 <룸메이트>는 예상과는 다른 그림이지만 재밌고 볼만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썸이란 게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다. 게다가 벌써 만료기한이 다가오는 증후가 보인다. 여자 연예인들의 민낯을 보여주는 건 <청춘불패>에서 확인했듯 반복적으로 쓰일 카드가 아니고, 엄마 같은 신성우의 모습이나 그에게 음악적으로 조언을 듣는 찬열, 4차원 박봄 등 캐릭터 구성이 너무 예상 가능한 방식으로 정리되고 있다. 제일 큰 문제는 2시간이나 되는 러닝타임이다. 노르웨이 방송국의 슬로티비 프로젝트도 아니고 주말 야구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시작돼 6시까지 한 공간에서의 일들이 이어지는데 ‘썸’에 집중하기엔 너무나도 긴 시간이다. 그 시간동안 에피소드들이 쉴 틈 없이 쏟아지는 것도 아니다.

야구에서 타순이 한 번 돌면 상대 투수의 공이 눈에 익는다. 밥 먹고, 친해지고, 장난치고, 장보고 이런 장면이 한 두 차례 반복될 때 <룸메이트>는 위기에 몰릴 여지가 크다. 이 썸의 정서를, 커뮤니티에 대한 관심을 더 길게 가져가고 더 크게 키우기 위해서는 런닝타임을 획기적으로 줄인 편성과 편집이 절실해 보인다. 이런 방식의 관찰형 예능은 필연적으로 지속가능성이 약점인데, 2시간의 러닝타임은 그 한계를 재촉하는 꼴이다. 매회 투구수가 이렇게 많았다간 5회 전 조기강판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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