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직아이’의 숨은 그림을 못 찾겠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최근 토크쇼의 경향은 연애를 필두로 한 사적인 주제를 다루는 수다식 토크다. <썰전>이 마련한 바닥 위에 <마녀사냥> <오늘밤 어때> <열나무>와 각종 연애관련 파일럿 프로그램들이 줄줄이 열렸다. SBS의 파일럿 <매직아이>는 이런 파도를 타면서 자기만의 고유한 ‘무브’를 보여주고자 애쓴 흔적이 드러난다. 방송인이 아닌 칼럼니스트 임경선을 고정 MC로 배치한 것은 유행을 따른 것이지만 이효리, 문소리, 홍진경 등 센 언니들을 방송국이 아닌 카페로 불러 모아 여성들의 시선과 문화를 의식한 설정을 내세운다. 남성들이 장악한 예능판에 철저히 여성의 시선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포부가 느껴진다.
이효리는 이 쇼를 가능하게 한 인물이다. 그녀의 이름만으로도 사람들(특히 젊은 여성들)은 무조건 기대한다. CJ계열 케이블 방송을 통해 보여준 라이프스타일은 젊은 세대 여성들에게 이미지가 아닌 실체적 삶으로 전파됐다. 이젠 그녀의 외모, 말투, 취향과 가치관을 포함한 모든 것이 문화적 지향이자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 이 지점에 다다른 스타급 연예인은 이효리가 유일하다. 이런 이효리를 필두로 <마녀사냥>에서 19금 입담을 선보였던 문소리, 원조 4차원 매력녀인 홍진경, 에두르지 않는 상담으로 유명한 임경선에다 말 잘하는 이적과 이 센 언니들을 받쳐줄 수더분한 남자 김기방으로 진용을 꾸렸다.
이들은 놓친 뉴스를 다시보자며 ‘데이트 폭력’과 같은 사회 이슈에 대해 수다를 펼친다. 포인트는 센 언니들의 직설화법과 적절한 경험담 고백이다. 질외사정 발언에 ‘정말 센 프로다’라는 반응이 추천사처럼 나오고 19금 마크가 자랑스럽게 달린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여섯 명이 카페 테이블에 둘러앉아 뉴스를 놓고 수다를 떠는 데, 무엇을 보여주기 위한 프로그램인지 한 줄로 요약되지 않는다. 그래서 집중할 수가 없다. <마녀 사냥>이 연애에 대한 남자들의 수다와 시선, <오늘밤 어때>가 연애 중 섹스에 대한 이슈를 다룬다면 <매직아이>는 애매하다.
모인 사람들의 면면으로 보아 앞으로도 연애 관련 사회 이슈를 주로 다룰 것으로 예측되지만, 수다를 지휘할 사람이 없다. 사연 소개처럼 직접 소통하는 방식이 아닌 이슈를 통해 이야기를 다시 펼치는 방식이라 정서적 거리감도 있다. 그래서 결국 각자의 경험담을 말하는 에피소드식 토크로 진행되다 결론은 사변적으로 귀결된다. 아무런 시청각자료도 없고 기승전결도 없는 난상 수다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라는 의문이 들기까지 한다.

<매직아이>는 가족용 예능은 아니다. 그리고 19금이라지만 40대 이상이 즐길 주제나 형식과 분위기가 아니다. <마녀사냥>처럼 명확한 타깃을 목표로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들은 친구들끼리 모여서도 짬이 나면 중간 중간 자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세대다. 아무리 센 발언과 언니 삼고 싶은 센 언니들이 있어도 자신의 흥미와 상관없는 남들의 테이블을 흥미롭게 지켜볼 사람은 드물 것이다.
물론, 제작진도 한정된 공간에서 다루는 수다를 지겹지 않게 보여주고자 노력한다. <매직아이>가 내세우는 고유의 무브는 센 언니들의 토크쇼이면서 발랄한 톤의 편집이다. 그리고 다소 산만해진다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기존 집단 토크쇼에서는 쓰지 않는 클로즈업 숏, 다른 사람 뒤에서 어깨를 걸고 찍는 숏 등 다양한 숏을 사용한 편집과 카메라 워크로 생동감을 주고자했다. 현장에 있는 여성 스텝의 웃음소리도 많이 들어갔다. 이런 방식은 영화 <저수지의 개들> 오프닝신이 연상될 정도였는데 생동감을 얻는 데는 실패했다. 형식과 내용은 별개가 아니다. 영화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긴장감을 주조한 효과가 있지만 <매직아이>는 뻔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이들 간의 경쟁이나 갈등이 빚어지지 않음을 알기에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매직아이>가 놓친 건 센 언니들이 나누고 감각적인 편집을 통해 다룰 내용이다. 연예인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건 이제 더 이상 흥미로운 설정이 아니다. 결론이 정해진 주제를 놓고 이야기하는 건 지치는 일이다. 연예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만든 몇몇 프로그램들, 이를테면 KBS2의 파일럿이었던 <대변인들> 같은 프로그램들은 대부분 사회 이슈를 주제로 가져오는데, 가장 재미없고 공감을 얻기 힘든 토크 주제다. JTBC 뉴스의 손석희 인터뷰가 인기인 건 뻔하지 않은 질문과 대답 때문이다. 최소한 찬반은 나뉘어야 시청자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시청할 수 있다.

<매직아이>는 직절화법을 자랑하는 센 언니들을 내세웠지만 주제 선정과 방송 수위, 이미지 관리 등 운신의 측면에서 한계가 드러났다. 바로 이런 점이 대중들이 센 언니들의 이미지를 좋아하는 듯하지만 정작 재미는 웃기는 오빠들의 이야기에서 찾는 이유다. 마냥 센 건 피로도의 문제도 생긴다. 에피소드식 토크의 공허함이나 사적 토크의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선 공감대가 우선되어야 한다. 재미는 그 토양 위에서 싹을 틔운다. 그런데 <매직아이>는 수다식 토크쇼에 대한 고민을 품게 한다. 센 언니, 사회적 이슈, 직설 화법 등등은 이미지일 뿐 토크는 결국 남들의 수다에서 머물기 때문이다.
참, 이 프로그램에는 김구라 배성재가 진행하는 ‘숨은 사람 찾아가세’ 코너도 있다. SBS는 배성재가 스포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를 했으면 좋겠고, 김구라는 프로그램을 줄일 필요가 있다. 김구라는 우리 예능의 독보적인 인물이고 새로운 영역과 가능성을 열어주는 개척자다. 이 코너는 김구라의 캐릭터로 만들어진 기획이지만 이런 식의 자기복제를 계속 남발하는 건 이미지의 소비가 아닌 매력 소진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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