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룸메이트’ 리얼만이 예능의 절대 반지가 아니다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SBS 예능 <일요일이 좋다-룸메이트>를 재밌게 봤다고 말하는 데는 적잖은 용기가 필요하다. 게시판 등 여론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너무나도 긴 방송시간, <런닝맨>처럼 몰입할 커다란 줄거리나 아이들이 나오는 프로그램처럼 명확한 볼거리도 없다. <무한도전>과 같은 방송과 우리의 현실 사이에 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지표는 나쁘지 않다. 시청률도 그렇고, 다시보기 인기순위도 그렇다. 특히 이 프로그램에 대한 많은 관심은 실시간 검색어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룸메이트>의 인기 자체는 나쁘지 않다. 그럼에도 비판 여론이 대세인 이유는 기대만큼 새롭지 않은 데 있다. 다시 말해 기대한 자극이 적다는 말이다. 우리는 관찰형 예능이라 명명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그동안 본 적 없었던 파격적인 새로움을 갈구하고 있다. 주제도 신선해야 하고 얼마나 색다른 형태인지가 마케팅 포인트다. 그러면서도 리얼해야 하고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이면 이해할만한 정서도 있어야 한다.
<룸메이트>는 최근 우리 주거문화가 변화하면서 나타난 신풍속을 예능에 접목한 관찰형 예능이라고 홍보했다. 연예인들이 한 집에 모여 사는 모습을 리얼하게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이건 관찰형 예능이 아니었다. 일상과 우리 사회의 변화상을 다룬다고 하지만 오히려 연예인들의 MT에 가깝지 ‘생활’은 아니었다. 그러자 자극을 원하는 시청자들은 실망하고, 리얼을 추구하지 않은 것에 가짜라고 질타했다. 그런 까닭에 재밌게 잘 보는 사람도 분명히 많지만 떳떳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 <룸메이트>는 관찰형 예능이 아니라, 모처럼 나타난 청춘물이다. <룸메이트>의 정서는 (작년 <몬스타>같은 드라마가 있긴 했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사라진 청춘 시트콤과 궤를 같이 한다. 성북동의 근사한 집에서 젊은 선남선녀들이 삼삼오오 시간을 보내며 요즘 말로 ‘썸’을 타는 감정선은 예전 드라마 <느낌>이나 천계영, 원수연 등의 순정만화에서 느껴지던 정서다. 성북동 숙소는 아지트에 가깝다. 11명의 연예인들은 자신의 스케줄에 따라 자유롭게 오가며 다양한 관계망 속에서 정을 쌓는다. 집은 말 그대로 이들을 어떤 식으로든 이어주는 끈이다. 어떤 이들은 화려한 성북동 집부터 공감하기 힘들다고 한다. 허나 매력적인 공간을 제시하고 그 공간에 자리 잡은 커뮤니티를 근사하게 그리는 건 청춘물의 기둥과 같은 필수요소다.
파편화되는 사회에서 서로를 보듬어주는 룸메이트들의 커뮤니티의 진정성과 매력은 시청률의 향배를 가르는 열쇠다. 함께 잘살자는 목표 아래 그 속에서 사랑도, 우정도 싹튼다. 밥을 같이 해먹고 설거지를 나눠서 한다. 한 세탁기에 빨래를 돌리고, 일요일 오후에 둘러앉아 간식을 먹는다. 밥물은커녕 쌀을 씻을 줄도 모르는 홍수현과 나나가 난생 처음 밥 짓기에 도전하고, 식구들은 맛있게 먹어준다. 늦은 밤 주방에 몇몇이 모여 앉아 라면을 먹으면서 속마음을 터놓기 시작한다. 청춘물이 주로 동아리나 특정 팀을 배경으로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소속감, 꿈, 우정, 사랑을 다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려내는 커뮤니티가 얼마나 매력적이고 함께하고 싶은가에 청춘물의 성패는 달렸다.

시청자들이 <룸메이트>를 계속 지켜보고 싶은 건 이러한 청춘물의 판타지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박봄의 그가 누구일지, 서강준을 둘러싼 묘한 경쟁 등 누구와 누가 연결될까 하는 썸의 긴장감도 긴장감이지만 박민우와 송가연의 연애놀이나 앞으로 더 강하게 나올 조세호와 나나의 러브라인 등에서 상쾌한 로맨틱 감성도 느껴보고, 새로운 친구들끼리 서로 다가가고 친해지는 모습을 함께 즐기고픈 것이다.
‘그들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이 생각을 품게 하면 성공이다. 이들의 세상이 연출이든 리얼이든 그런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진다는 게 중요하다. <룸메이트>가 관찰형 예능이든 시트콤이든 방식의 차이일 뿐 어차피 어떻게 지켜볼 판타지를 만드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서인영과 크라운제이가 활약하던 <우리 결혼했어요> 이후 오랜만에 판타지로 흡입력을 만드는 예능이 탄생했다.
가짜 낭만을 품었다고 외면 받은 청춘물의 몰락 이후, 방송 콘텐츠는 리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그 와중에 <짝>과 같은 프로그램이 나왔다. 이 프로그램의 일반인 출연자들은 사랑 앞에 진솔하면서도 세속적이었다. 방송에서 우리의 실제 세상이 비춰지니 신선했다. 하지만, 끝은 좋지 않았다.

<무한도전>은 지난주 매우 구체적이고 까다로운 노홍철 맞선녀 조건을 내세웠다. 물론 노홍철이 성공한 연예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조건을 내세운 게 더 진짜답고 현실적이다. 하지만 높은 외적 기준으로 여성들을 수소문하는 것이 50여만 명의 국민들이 참여해 모의 선거까지 치룬 프로그램의 정서에 맞는지는 의문이다. 방송의 힘을 이용해 결혼정보업체 VVIP 회원들이나 가능할 법한 여성을 줄 세우는 건 불편의 여지가 있었다. 리얼을 추구했지만 그 때문에 한 무리의 시청자들은 괴리를 느끼게 된 것이다.
<룸메이트>는 이처럼 꼭 현실과 리얼만이 우리를 만족시켜주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꼭 현실적이고 리얼한 것만이 예능의 절대 반지가 아니다. 현실에서 꽃피운 천연추출물이 아니더라도 가끔씩 달달한 인공 향이 더 편할 때도 있다. <룸메이트>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잘 만들어진 달달한 청춘의 향인 셈이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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