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극장 안에서 어떤 존재들인가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며칠 전 서울 시네마테크에서는 불쾌한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스티브 맥퀸(동명의 배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영국 감독이다)의 [헝거]가 상영되는 동안 갑자기 관객들 중 한 명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 관객의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그 관객이 극장 직원들에 의해 끌려 나갈 때까지 수십 분 동안 관객들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날려버렸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특정 영화를 평생 단 한 번 보며, 반복 감상하는 관객들에게도 첫 경험은 소중하다. 그 난동관객은 그 소중한 경험을 깨버린 것이다. 관객들은 표값을 돌려받았다지만 그것으로 이 상처가 변상될 수 있을까.
부산에서는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캐리비언의 해적] 4편을 상영하는 극장 안에서 앞좌석 관객이 아들을 화장실에 데리고 갔다가 돌아오자, 뒷좌석의 관객과 시비가 붙어 칼에 찔리는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나는 이 범죄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다. 하지만 이 사건이, 기본적인 영화 감상 에티켓의 위반 때문에 우리의 생명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유익한 교훈을 준다고는 생각한다. (부산 영화관 사건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면 에티켓은 양쪽 모두에 해당된다.)
그러니 가장 기초적인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자. 극장 안에서 우린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그걸 알기 위해서 우린 우리가 극장 안에서 어떤 존재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우리는 생각보다 시끄럽다
극장 소음의 기준은 우리 일상의 기준에 맞추어서는 안 된다. 길거리나 일반 건물 안에서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모두가 떠들고 있고 아무도 다른 사람이 내는 소음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장은 다르다. 모두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하고 있고 그 이외의 소리는 모조리 소음으로 간주한다. 당신은 나름 소리 죽여 속삭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옆자리 사람에게 의미가 통할만한 대화를 나누려면 스피커에서 나오는 영화 사운드를 이겨내야 한다. 다시 말해 당신을 중심으로 한 몇 미터 반경 안의 사람들은 당신의 사사로운 대화를 의지와 상관없이 엿듣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위험한 믿음이 있으니, 그런 소음을 더 요란한 항의로 제재하는 건 정당하다는 것이다. 몇 달 전 아녜스 바르다 회고전 때 그런 경험을 했다. 영화 중간에 어떤 아저씨가 굵직한 목소리로 “거기 껌 좀 작작 씹어!”라고 고함을 지르지 않겠나. 그 날 영화 감상을 진짜로 방해한 건 누구였을까.
▲우리는 생각보다 잘 보인다
우린 극장의 어둠 속에서 충분한 익명성을 보장받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우리가 그 익명성을 깨트리는 행위를 하지 않았을 때에나 해당되는 일이다. 그리고 요새는 그럴 수 있는 기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액정이 달린 거의 모든 것들이 이에 해당된다. 휴대전화, 타블렛, 노트북 기타등등 기타등등. 극장 상영 중 문자를 하면 아무도 못 알아차리겠지, 라는 환상은 꿈도 꾸지 마시길. 일단 당신이 스마트폰을 켜면 뒷자리에 앉은 수십 명은 반짝거리는 불빛에 감상을 방해받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사생활과 관련된 불필요한 정보까지 입수하게 된다. 누군가 이를 악용하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많은 사람들이 모르면서 저지르는 실수가 하나 있으니, 그건 상체를 수그리고 영화를 보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 사람들은 그러한 행동이 뒷사람들에게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인식하지 못한다. 모르겠다면 생각해보라. 이건 초보적인 기하학이다. 관객들과 화면을 연결하는 선은 삼각형의 빗변과 같다. 그리고 당신의 상체는 반원을 그리며 숙여진다. 이제 두 도형을 겹쳐보라. 상체를 숙이면 당신의 앉은키가 머리 하나 더 커진 것과 같은 효과가 발생한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이 정도면 심각한 민폐다.
▲우리는 생각보다 냄새가 난다
사람들이 자신의 체취를 맡지 못한다는 건 상식이다. 대부분의 상식이 그렇듯 사람들은 대부분 이걸 잊고 산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대충 넘어갈 수 있는 냄새들이 극장에서는 증폭된다는 것을 아시는지? 예를 들어 입냄새와 같은 건 극장에서 훨씬 오래 남는다. 사람들이 위치를 바꾸지 않고 환기 속도가 느리기 때문이다.
여름이 되면 끔찍한 일이 늘어난다. 자기 혼자 편하겠다고 신발을 벗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이다. 그들은 아무 냄새를 못 맡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도 그럴까?
▲에티켓은 배울 수 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우습기 짝이 없지만, 대한민국 인구 중 상당수는 제대로 된 공중도덕 교육을 받지 못했고 그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다. 더 나쁜 건 이들이 에티켓을 배울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은 어른이고 어른은 무언가를 가르쳐야 하지 배우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웃기지도 않는다.
여기 멋진 정보가 하나 있다. 에티켓은 배울 수 있다. 그것도 아주 쉽다. 내가 이 익명의 무리 안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만 알고 거기에 대응해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당신이 운전과 인터넷 사용법을 배울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다면 에티켓도 배울 수 있다. 그러니 한 번 시도라도 해보자.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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