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법칙’, ‘정글의 법칙’을 넘어설 것인가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지난 1회 멤버들과 제작진이 첫 만남을 가졌을 때 맏형인 김성수는 김병만, 유재석, 강호동 없이 우리끼리 괜찮겠냐고 물었다. 이에 이지원 PD는 실험적인 예능이기에 비예능 출신의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조합으로 승부를 건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 포부에 찬성한다. 여기에 만약 기존의 예능 이미지와 역할을 가진 멤버가 투입되었다면 이 프로그램의 진정성은 애초에 깨졌을 것이다.

스케일 차원에선 실험일 수 있다만, <도시의 법칙>은 이미 검증받은 관찰형 예능 포맷이다. 이지원 PD의 히트작인 <정글의 법칙> 이후 우리나라 예능은 웃음을 추구하는 예능과 공감 및 로망을 추구하는 예능이란 서로 다른 목표를 추구하는 장르로 분화했다. 웃음 이외에도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도,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도, 새로운 판타지를 제공하는 것도 예능의 영역이 됐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김병만이 정글에서 웃겨서 프로그램이 잘 되고 있는 게 아니지 않는가. 그러니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예능으로 풀어낼 것인지나, 예능적으로 끌고 갈 예능 멤버가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도시의 법칙>은 예능이지만 즐기도록 보여주는 방식은 스토리텔링, 즉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다. 비단 이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관찰형 예능은 웃음에 대한 기대보다 기본적으로 드라마를 즐기는 방식에 더 가깝다. 연예인들은 3주간 뉴요커 체험을 하는데, 브런치는 없다. 쇼도, 이벤트도 없다. 무일푼으로 시작하는 3주간의 뉴욕 자취 스토리다. 다섯 연예인이 가족이 되어 한 공간에서 서로의 능력과 마음을 합쳐서 살아내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인데, 연예인들이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핵심 볼거리다. 이들이 어떻게 꾸려나갈지, 그 커뮤니티는 얼마나 알콩달콩한지 바라보는 재미다. 그들의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고, 그들이 사는 공간에 자신을 대입하면서 그들의 세상에 점점 빠져든다. 그러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말은 상징적이다. 이 프로그램의 기획의도, 보여주고픈 그림에 대한 모든 힌트가 다 이 한 문장 안에 들어가 있다. <도시의 법칙>의 멤버들은 뉴욕으로 갔지만 익숙한 맨해튼은 저 멀리 바라만 보일 뿐이다. 무일푼으로 도시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에게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동네인 뉴욕, 그중에서도 중심인 맨해튼은 언감생심이다. 뉴욕의 민낯을 보여주고 그들의 일상에 파고드는 것이 <도시의 법칙>의 핵심코드다.



제작진은 현실적인 체류기를 위해 겉보기에는 다소 거친 브루클린의 폴란드 이민자 동네에 멤버들의 거처 ‘뉴욕팸하우스’를 마련했다. 백진희가 이들이 뉴요커냐고 반문할 정도로 패셔너블한 뉴요커는 오간데 없고, 뉴욕 아침 조깅은 센트럴파크가 아니라 동네의 허름한 공원에서 한다. 출연자들이 생활하는 브루클린은 뉴욕을 세련과 경외가 아닌, 새로운 삶의 터전, 살아가야 하는 낯설고 다소 열악한 공간으로 그려진다. 낯선 곳에서 무일푼으로 살아내는 것은 도시인의 삶과 생존에 대한 재밌는 실험이자 그렇게 살면서 터전을 일궈 온 이민자들의 도시 뉴욕을 깊이 있게 보여주고자 하는 장치다.

정글이 도시로 바뀌었을 뿐 <정글의 법칙> 시즌2다. 생존을 해야 하는데, 환경이 다르니 그 기술과 삶의 양상이 다를 뿐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도시 뉴욕에 떨어진 연예인들은 서울에선 스타지만 브루클린에선 그냥 동양 유학생쯤으로 취급받으며 바닥 생활을 한다. 잡일을 구하러 나서서 숱한 거절 끝에 우연히 들른 한인 가게에 취업한다. 이천희는 캐셔를 보고, 김성수는 설거지부터 각종 허드렛일을 한다. <기황후>의 백진희도 공병을 줍는다.



뉴욕에선 그들의 커리어, 외모, 매니저 군단에 둘러싸여 살던 일상, 모든 것이 리셋이다. 철저히 고립된 환경 속에서 밥부터 일자리 구하기까지 직접 스스로 다해야 한다. <정글의 법칙>부터 <도시의 법칙>까지 ‘법칙 시리즈’의 근간은 ‘리셋’. 즉 초기화다. 이 법칙 시리즈는 요즘 사람들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리셋 로망을 건드린다. 이 리셋의 로망은 몇 해 전부터 주류 장르로 떠오른 재난물(좀비영화)의 정서이기도 하다. 삶이 팍팍해지니 아예 빵 터트리고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분명 최첨단 도시 뉴욕에서 살아가는 이야기지만 모든 것이 리셋되고 나니 그간 문명사회에선 딱히 발휘할 필요가 없던 생존 능력이 요구된다. 골치 아픈 미래, 답 안 나오는 돈벌이를 떠나서 아예 먹고사는 것에 집중한다. 의식주. 너무 당연하게 갖춰져서 신경 쓰지 않고 살아온 가장 기본적인 삶의 필수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선 전혀 다른 능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나로 살아가는 의도적 떨어져서 보는 과정을 지켜보며 시청자들은 일상의 소중함, 평소엔 너무 당연해서 몰랐던 것들의 아쉬움. 돈벌이와 노동의 소중함과 가치를 함께 느껴볼 수 있다. 새로 시작해서 쌓아갈 때의 에너지도 느끼고, 돌아보니 소중한 것들에 감사하며 다시 한 번 힘내볼 위로를 준다. 그리고 병만족이 그랬듯 함께 힘을 합쳐 살아갈 커뮤니티가 있다는 것은 현대 도시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 엄청난 위안이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



<도시의 법칙>은 목표가 굉장히 큰 예능이다. 실험이라면 로케촬영이라는 제작부터 노리고 담으려는 가치와 재미가 방대하다. <정글의 법칙>이 오지의 환경을 극복하는 과정과 함께 대자연의 멋을 소개한다면, 이번엔 도시 문화사에 대해서도 탐구한다. 그래서 뉴욕 적응기와 함께 틈틈이 뉴욕의 생활문화라 할 수 있는 것들, 이를 테면 수돗물을 마셔도 된다는 것, 재활용 하는 법 등의 팁부터 우리나라에는 없는 편의점 겸 식당인 ‘델리’를 소개한다든지, 폴란드와 한인 이민 문화를 통해 이민자의 도시 뉴욕을 풀어낸다.

이 포부가 큰 예능은 일단 한 번 기다리고 기대해보고 싶게 한다. 예능이 전할 수 있는 정서와 가치를 얼마나 더 확장할 수 있을까? 분명 소재 자체는 <정글의 법칙>보다는 작은 포탄이지만, 어떤 식으로 이 세상에 없던 다른 실험을 내놓을지, <꽃보다 할배>를 넘어서는 스토리텔링이 가능한지 흥미롭게 지켜볼 프로그램이 하나 더 생겨난 것은 확실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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