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룸메이트’가 자꾸 어르신들을 초대하는 이유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룸메이트>가 아니라 이덕화가 게스트로 초대된 토크쇼를 보는 듯 했다. 마치 <무릎팍도사>의 건방진 도사 유세윤이 하듯 조세호는 이덕화의 약력을 하나하나 읊었고, 가끔 토크쇼에 요리가 등장하듯 신성우가 차린 매운탕을 먹으며 흡족해하는 이덕화의 모습이 방영됐다. 간간이 “부탁해요-”나 “좋아. 너무 좋아-” 같은 이덕화의 유행어도 빠지지 않았고, 젊은 시절 찍었던 속옷 광고를 젊은 출연자들이 재연하기도 했다.
한 바탕의 쇼(?)가 끝난 후에는 부엌 테이블에 둘러 앉아 이덕화가 젊은 배우들에게 던지는 일종의 멘토링이 이어졌다. 그 주제는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고의 위치에 있을 때 갑자기 터진 사고로 3년 간이나 병원 신세를 지게 됐던 이야기와, 그 3년을 꼬박 병수발을 해내고 이덕화와 결혼한 아내의 이야기, 그리고 함께 드라마 촬영을 하고 있는 이동욱의 남을 배려하는 사람 됨됨이에 대한 이덕화의 상찬이 이어졌다.
관찰카메라가 아니라 하나의 짜여진 토크쇼 같은 구성. 이 그림은 지난 회에 조세호의 부모님들이 출연했던 것과 유사한 구성이다. 조세호의 부모님은 역시 부엌 테이블에 앉아 조세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놔 좌중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마치 연예인과 연예인 가족이 출연하는 토크쇼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다.
이런 게스트 출연은 서강준이 있는 배우 그룹 ‘서프라이즈’가 먼저 했던 것이지만 그 임팩트는 조세호의 부모님이나 이덕화처럼 강력하지는 못했다. 확실히 인생의 경륜이 묻어있는 어르신들의 말 한 마디는 새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었고, 또 인생 선배로서의 멘토링도 뜻 깊게 만들었다.
하지만 관찰카메라 형식으로 자연스러운 공동주거의 일상을 담아내야 할 <룸메이트>가 게스트 출연에 의지한다는 것은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물론 조세호의 부모님 출연은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면이 훨씬 많았지만, 이덕화의 경우에는 아예 이덕화 토크쇼가 됨으로써 다른 출연자들이 보조 출연자나 관객이 된 듯한 인상을 만들었다. 이덕화를 통해 듣게 된 이동욱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적이었지만, 다른 출연자들은 좀체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어르신들을 게스트로 출연시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첫째는 게스트 출연이 늘 그렇듯이 무언가 프로그램에 자극제를 주기 위함이다. 새로운 인물이 들어오면 기존 관계의 틀에 새로운 이야기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세대적인 안배가 될 수 있다. <룸메이트>는 너무 젊은 세대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이덕화 같은 어르신을 게스트로 넣으면 가족들이 전부 시청하는 프로그램의 느낌을 만들어낼 수 있다.
하지만 게스트에 대한 집중은 오히려 고정 출연자들의 이야기를 배경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 <룸메이트>는 박봄 논란으로 인해 일종의 위기상황이다. 현재는 이미 찍어놓은 방송 분량이기 때문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편집 없는 방송을 강행하고 있지만 그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알 수 없다.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생각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룸메이트>는 이번 박봄 논란에 대한 입장을 프로그램을 통해서 드러낼 수밖에 없다.
<룸메이트>는 지금 내외적인 문제로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내적으로는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의 시청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어 <일요일이 좋다>가 방송3사의 일요예능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는 부담감이 있다. 외적으로 박봄 논란으로 프로그램이 어떻게 이 문제를 처리해야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어떤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출연자들의 해결되지 않은 이야기가 남아있는 상황에 게스트만 자꾸 먼저 보여주는 방식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라는 점이다. <룸메이트>는 먼저 이 문제부터 짚고 나갈 필요가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프로그램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질 수 있다.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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