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엿보기 그 이상의 로망 자극한 하석진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정말 혼자 사는 사람처럼 조용조용하게 방송되던 <나 혼자 산다>에 공부도 운동도 잘할 것 같은 공대 오빠가 떴다. 이제 <나 혼자 산다>도 어느덧 1년 반 가까이 진행되면서 많은 부분들이 변화했다. 태초 기획은 혼자 사는 사람들의 공감에 포인트가 있었지만 갈수록 엿보기라는 지극히 여성의 관심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나아갔다. 나이부터 외모까지 다양한 계층의 혼자 사는 외로운 남자들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엿보기를 통한 일종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순정만화의 한 종류와 같은 프로그램으로 변모한 것이다.

엿보기는 여름철 음식처럼 쉽게 쉰다. 일상을 주제로 한 무지개 모임이 방송이 되기 위해선 뭔가 기획이 필요했다. 기획 요소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혼자 사는 삶 보다는 무게 중심이 무지개 멤버들만의 리그로 넘어갔다. 균형을 잡아줄 타개책으로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시키기도 하고, 백인 남자에 대한 로망까지 건드릴 수 있는 프랑스 청년 파비앙을 투입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대세라고 부를 만한 결과는 아니었다.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나 혼자 산다>는 주요 고객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줄 볼거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큰 기대가 없던 하석진이 지난해 초 ‘엿보기’와 ‘공감’이란 키워드로 여성 시청자들을 자극한 <나 혼자 산다> 초창기의 에너지를 다시금 느끼게 했다. 오윤아와 함께한 <무자식 상팔자>에서 능글한 매력을 뽐내기 전까지 그는 주상욱에 이은 실장님 전문배우로 얼굴을 알렸다. 한양대 공대생 출신의 엄친아라는 배경이 뒤를 따랐고 교내 축제에서 한류스타 장근석과 파티를 연 것 정도가 의외의 뉴스였다. 그는 좋은 하드웨어에 공부도 잘하는 엄친아라는 매력은 있으나 대중성을 지닌 연예인이라기보다 그냥 탤런트였다. 동네 단골 백반집 사장님이 그렇게 드나들어도 얼굴은 알아봤지만 이름은 들어도 잘 모르고, 카메라 팀(<나 혼자 산다>의 촬영팀)과 함께 오기 전까지 이름을 묻거나 사인 받을 생각을 안했다는 건 현재 인지도를 잘 나타내는 눈금이다.



하석진은 이런 상황에 상처를 안 받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연급 탤런트가 영락없이 그냥 평일 낮에 동네를 돌아다니는 청년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섞인다. 일부러 시장을 가거나 괜히 사람들한테 말 거는 것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너무 자세히 그리고 넓게 알려지지는 않은 적당한 인지도, 기본적으로 호감인 매력도, 멋지고 잘생겼는데 이처럼 소박하고 귀여운 구석까지 있다면? 그러면 끝이다.

야구모자(스냅백도 아니다)푹 눌러쓰고, 슬리퍼 신고 혼자 밥 먹으러 시장통에 있는 백반집에 가서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괜히 여기저기 전화한다. 제육을 시킬 때 ‘고기 많이’를 외치는 건 대한민국 아저씨들의 공통 주문이다. 살림에서 짐작은 했었다만 액자를 골라온 것 보고 친구들 사이에서 말이 도는 것을 보니 센스는 보통 공대생들 수준이다. 그런 의외의 허당 끼는 여성 시청자들의 로망을 자극하는 숨구멍이다. 자기보다 패션 취향이 까다롭고 쇼핑에 열을 올리는 남자보다, 자신이 골라준 옷을 입히며 가꾸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무던하고 단순한 남자와 연애하는 편이 더 즐겁다고 하는 여성들의 심리와 맥이 닿아 있다.

게다가 반전 매력은 누구나 호감을 증폭시키기 마련이다. 차 문도 스스로 열어본 적 없을 것 같은, 무대나 촬영장, 아니면 클럽의 룸에서 화려하게 살 것 같은 ‘배우님’이 공구함을 꺼내 조각 같은 몸에 구슬땀을 흘리며 뚝딱뚝딱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슈퍼에서 담아온 검은 봉지는 잘 개어서 정리한다. 여기서 20대 후반부터 60대 어머니들의 호감을 쌍끌이로 끌어올린다.



여기서 하석진이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의 매력이 여성들의 엿보기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그는 <나 혼자 산다>가 오래 전에 놓쳐 버렸던 남성 시청자들과의 공감을 회복할 수 있는 캐릭터다. 여자들한테 인기 많고 잘 나가는 다른 세계에 살 것 같은 남자가 나와 똑같이 평화로운 중고나라의 국민이라니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인터넷 최저가 검색 후 미개봉 신품을 찾는 보통 남자들의 소비 패턴을 그것도 몇 번 해본 솜씨로 능숙하게 ‘배송비 네고’까지 하는 걸 보니 왠지 심상치 않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직거래를 뛴 이력도 있고 상대방의 지각에는 에누리 철회까지 하는 중고거래의 베테랑이다. 세간도 다 저렴한 가격에 중고로 구매했다고 하니 젊은 여성들에게는 환상을 어머니들의 박수를 자아낼 만하다.

<나 혼자 산다>를 통해 본 하석진은 관찰형 예능의 시대에 딱 맞는 인물이다. 인물과 커리어 자체는 거리가 느껴지지만 일상의 괴리감은 제로다. 연예인이라고 집안 곳곳에 본인의 사진을 걸어놓는다든지 ‘고급진’ 취향이나 노홍철처럼 유난스럽게 유행을 선도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전시하지 않는다. 물론, 매력적인 몸부터 공개하고 시작하지만 리버풀 FC와 다양한 세계 맥주를 좋아하고, 인터넷과 떨어져 지내지 못하는 우리네 주변의 평범한 ‘남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석진이 <나 혼자 산다>에 새로운 유형의 멤버라고 볼 수 있는 건 단순히 전자제품 좋아하는 공대생이라서가 아니라 남녀불문 전 세대 시청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매력을 머금고 있기 때문이다. 단 한 번 출연했지만 하석진은 <나 혼자 산다>를 부흥시킬 열량 높은 에너지를 갖고 들어왔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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