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정상회담’, 이대로 그냥 가면 위험한 이유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예능 트렌드를 선도하는 JTBC의 새 예능답게 <비정상회담>은 지난주 가히 폭발적이었다. 단 1회 만에 연애와 관찰로 흘러가는 요즘 예능들과는 다른 신선함과 오래전 <미수다>를 보는 듯한 반가움이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다 한국적 사고방식을 자신의 문화적 토양과 문화로 바라보고 이해하려는 외국인들의 유연한 사고에 놀랐다. 꽤나 놀랐던 것 같다. 여기저기서 외국인 예능의 시대가 왔다거나 트렌드를 이끌어갈 새로운 예능이 탄생했다며 극찬했다.
그리고 2회. 연예 칼럼을 쓰면서 이런 빅 히트 프로그램을 놓쳤다는 게 황망해서 정좌하고 보는데, 지켜보는 내내 브라질 축구를 보듯 당황스러웠다. 신선한 기획으로 출발한 프로그램은 단 2회 만에 그저 그런 신변잡기 코미디 토크쇼가 됐다. 1시간 분량의 토크를 뽑아내는 데 시행착오를 겪는 중인지 벌써 한계가 온 것인지 아니면 제작진과 MC들이 프로그램의 장점이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지 지난 한 주의 찬사와 관심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비정상회담>이 화제를 불러 모은 이유는 한국어와 한국적 사고에 능한 11명의 외국인들의 존재다. <미수다>의 남성판이라고들 말하지만 이는 그저 성별만 바라본 게으른 평가다. 지난 1회는 <미수다>보다 한 차원 진화한 토크쇼였고, 그래서 이슈가 됐다. 물론 <미수다>도 흥미롭고 영향력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출연자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덕에 <미수다> 출신들은 섬마을을 찾아가는 선생님에서 성인TV 연기자까지 방송가의 다양한 분야에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바라보면 <미수다>는 조금은 낯간지러운 자화자찬의 한류였다. 한국에 거주하는 예쁜 외국인들에게 ‘한국 너무 좋아요’를 외치도록 하는 게 베이스였다. 사실상 섬나라인 우리의 문화적 고립이 빚어낸 세상과의 경계를 우리 입맛대로 소비했던 보수적인 프로그램이었다.
<비정상회담>이 히트친 것은 세월이 흐른 만큼 고여 있던 세계관에서 한 발 나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출연한 외국인들은 한국적 사고를 이해하지만 찬양하진 않는다. 이번 주 혼전동거나 지난주 독립 등의 주제로 토론할 때 각자 자신 문화권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면서 그 동시에 다른 나라 문화와 생각을 알아가고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한국어로 진행되지만 한국이 중심이 아니다.

한국을 중심에서 내려놓으니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외국인의 입에서 웬만한 우리나라 아저씨보다 꼰대스런 발언이 쏟아진다. 터키 유생 에네스는 유창한 한국어와 논리로 조선시대 사람이라고 불릴만한 주장을 펼치고 다른 유럽인들은 이에 발끈해 치고받는 토론이 진행된다. 이들의 토론을 지켜보면서 각 문화권을 보다 더 자세히 알아가게 되고 넓어진 시야로 우리 사회를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생각의 지평을 넓혀준다. 그 과정에서 유창한 한국어로 토론을 하는 신기하고 놀라운 모습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2회에서 이런 지점은 변방으로 밀려났다.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라고 생각한 비정상회담은 방송 말미에 살짝 진행됐고 근 40분가량을 음주문화를 비롯해 한국 생활 적응하는 <미수다>스러운 에피소드토크, 개인기, 이국주가 이끌어가는 코미디에 할애했다. 다양한 문화권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토론하자는 취지의 쇼라고 생각했는데 개그우먼 이국주와 미스코리아 정소라를 초대해 예쁜 여자 그렇지 못한 여자라는 스테레오 타입화된 뻔한 대비 구도를 설정했다. 이국주는 식탐송도 부르면서 열심히 했으나 전현무와 함께 펼치는 웃음들은 <로맨스가 더 필요해>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들이었고, 그 위에 <마녀사냥>의 성시경과 <음담패설>의 유세윤이 11명의 외국인 앞에서 코미디를 펼치는 것이 방송의 대부분이었다. 그 사이 11명의 외국인들의 역할이란 한국 코미디를 이해하고 웃을 줄 안다는 정도를 보여주는 것으로 축소됐다.
문제는 2회가 기복을 탄 것이 아니라 전술이 원래 이런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다. 제작진이 애초에 원하는 그림과 이 쇼의 장점간의 싱크가 안 맞는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지금 MC진의 구성은 토크에 특화된 것이 아니라 순발력 있게 웃음을 잡아내는 데 중점을 둔 포메이션이다. 성시경은 정리하고, 의견을 보태는 데 장점이 있는 MC다. 축구로 비교하자면 센터백 스타일이다. 유세윤은 스스로 웃음을 창출하는 창의적인 드리블러다. 전현무는 그보단 패스플레이에 능하지만 마찬가지로 공을 잡아야 시작이 되는 드리블러다. 성시경이 뒤를 받치고, 유세윤과 전현무가 미드필드에서 11명의 공격수들이 자유롭게 슈팅을 퍼부을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드리블러인 유세윤을 피를로의 자리에 놓고 그 옆에 또 다른 드리블러를 놓으니 나머지 11명과의 연계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았다.

그래서 스튜디오를 필드로 비유한다면 11명의 외국인들과 MC진이 단단한 블록을 형성하지 못하고 간격이 크게 벌어졌다. 그 결과 정작 스포트라이트를 받아야 할 외국인들의 카메라 점유율이 형편없이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한국어 실력이 딸리거나 온화한 출연자는 토론에 끼지 못하고, 기욤을 비롯한 몇 명의 출연자는 단 한마디도 못했다. <세바퀴>처럼 순서가 정해진 것이 아니다보니, 토크를 살리고 토론이 이어지도록 물꼬를 자유자재로 틀 수 있는 조율형 MC의 역할이 절실해 보인다.
방송 사상 최초라며 외국인 출연자들에게 동거 경험을 묻고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했다. 이런 고백은 자극적일지 몰라도 시청자들이 외국인 출연자들에게 기대하는 셀링포인트가 아니다. 지금은, <비정상회담> 자체의 지피지기가 선행되어야 할 때다. 자신들의 무궁무진한 장점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큰 고민 없이 얻은 전술과 전력 분석을 분위기 좋다고 그냥 밀어붙이면 어떻게 되는지 이번 월드컵에서 국가대표팀이 잘 보여줬다. 지금의 시청률과 이슈에 만족하다간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기 십상이다.
한국어 잘하는 훈남 훈녀 외국인은 늘 호감을 산다. 이 호감을 재미로 변환할 때 시청자들이 원하는 것이 연예인들의 코미디인지, 이들의 수준 높은 사고와 언어구사력을 지켜볼 때인지 판단해야 한다.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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