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의 법칙’은 김병만 아이러니를 어떻게 극복할까

[엔터미디어=이만수 기자] 왜 SBS <정글의 법칙>은 굳이 출연자 모두가 각각 흩어져 살아남는 ‘나 홀로 생존’ 미션을 하게 됐을까.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간 꽤 오랫동안 정글 생존을 하면서 <정글의 법칙>의 스토리는 단순해졌다. 반복적으로 보여지는 집짓기, 사냥하기, 먹방의 스토리텔링은 여전히 흥미롭지만 과거처럼 시청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오지는 못한다.

이렇게 된 것은 이제 정글에서도 달인이 된 김병만 족장이 만들어낸 이중적인 영향 때문이다. 이제 김병만은 어느 정글에 들어가서도 적응할 수 있을 만큼 경험을 쌓아왔다. 정글의 지형이나 기후 또 소재를 활용해 척척 집을 짓고, 맨손으로 물고기를 잡는데다 요리법의 노하우까지 늘어 정글은 그에게 생존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즐거움으로 변모했다.

스카이다이빙, 스쿠버다이빙으로 하늘과 바다를 훨훨 날아다니고, 열매만 보면 제 아무리 높은 나무라도 척척 올라가는 김병만은 <정글의 법칙>의 생존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역시 족장님은 클래스가 달라”라는 말 속에는 그래서 신입 병만족들의 안심이 묻어난다. 하지만 정글 달인으로 거듭난 김병만은 바로 그것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단조로워지는 이유도 되고 있다.

김병만이 적응할수록 정글의 긴장감은 빠지기 마련이다. 또 그가 알게 된 정글 생존 노하우들은 프로그램의 스토리텔링 또한 단순하게 만든다. 정글에 일단 들어가면 해야 되는 일들이 순차적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 홀로 생존’ 같은 미션은 이러한 스토리텔링을 바꿔주기 위한 장치처럼 보인다.

김병만이 없으니 각각 저마다의 정글 생존기가 나오는 것이 가능해진다. 겁 많은 박휘순이 굳이 잡고 싶지 않은 메추라기를 잡아 오며 후회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유이의 모습이나, 굶다가 우연히 잡게 된 작은 게 한 마리를 구워 먹으며 감탄사를 날리는 니엘의 색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김병만을 그리워한다. 그가 가진 능력 안에서 편안하게 지내왔던 정글을 떠올리고 반면 자신의 무력감을 토로한다. 7인이 모두 자신의 목소리로 후시 녹음을 통해 자신의 생존기에 내레이션을 넣는 방식 속에는 이렇게 스토리텔링의 변화를 추구하려는 제작진의 노력이 엿보인다. 김병만과의 분리. 그것만으로도 이야기가 달라지고 있다는 걸 ‘나 홀로 생존’ 미션은 보여준다.

이것은 지금 현재 이른바 ‘김병만 아이러니’를 겪고 있는 <정글의 법칙>이 처한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글의 법칙>은 김병만 없이는 존재하기 어려운 프로그램이지만 그래서 이미 정글에서조차 달인이 되어 완벽 적응해내는 김병만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기가 어려워진다. 다른 공간이 주는 효과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회가 지나버리면 시청자들의 눈에는 똑같은 김병만식 정글 적응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느낌을 준다.

과거 <개그콘서트>에서 ‘달인’을 할 때 김병만은 매번 그 미션이 달랐었다. 게다가 그 스토리텔링도 몇 차례 변화를 주었다. 처음에는 못하는데 잘한다고 우기는 설정이었는데, 어느 순간에는 못할 것 같은 미션을 실제로 수행해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이런 끝없는 변화는 몇 년을 지속해도 ‘달인’의 스토리가 익숙해지지 않고 흥미롭게 다가오는 이유가 됐다.



넓게 보면 <정글의 법칙>은 ‘달인’의 정글 체험 미션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미션보다 훨씬 어려운 미션이기 때문에 그만큼 적응에 시간도 걸린 셈이다. 하지만 지금 김병만은 이미 그 미션을 수행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정글의 법칙>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이미 미션을 완수한 김병만으로 인해 <정글의 법칙>의 이야기도 반복적인 틀 속에 묶여져 버리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헝거게임’이니 ‘블라인드 퀘스트’ 또 이번 ‘나 홀로 생존’ 같은 좀 더 제작진의 손길이 닿은 인위적인 미션이 주어지는 건 바로 이런 틀에 갇힌 이야기를 벗어나려는 의도다. 하지만 이 같은 인위적인 미션은 자칫 자그마한 사고 하나로도 커다란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사고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쳐도, 제작진이 부여한 인위적 미션을 하다 사고가 난다면 그것은 제작진의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은 지금 정글 미션을 이미 완수한 김병만으로 인해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게임 같은 미션 상황을 부여함으로써 이것을 넘어서려 하고 있지만 이것은 자칫 <정글의 법칙>이 애초에 가졌던 그 ‘자연스러움’을 깨버리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과연 <정글의 법칙>은 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김병만이 있어 가능했던 프로그램이 이제 김병만이 있어 단조로워지고 있다니. 이런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이만수 기자 leems@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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