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과 힐링, 식상한 두 단어로 신선하게 만든 ‘꽃청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꽃보다 청춘>은 <꽃보다 할배>에 비해 확실히 에피소드가 없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모인 사전 모임에서 바로 페루로 납치하듯 끌고 간 무시무시한 설정으로 시작했지만 좌충우돌 여행기를 만들기에 이 청춘들은 너무 똑똑했다. 언어도 셋 다 문제없고, 스마트폰 활용에도 능통하며 유학 경험에다 여행도 적당히 해본지라 할배들처럼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그래서 할배들의 여행과는 달리 고생담이나 맨땅에 헤딩하는 스토리는 설정의 과격함에 비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여행 에피소드 중간 중간 뮤직비디오처럼 구성된 화면의 높은 비중은 비지엠의 역할이 아니라 부족한 방송 분량을 채우는 장치인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마치 예복습하는 것처럼 지나간 장면과 앞으로 나올 장면으로 구성된 화면이 음악 아래서 꽤 높은 빈도로 반복됐다. 다음 상황에 대한 예고도 이런 방식으로 길게 나왔다. 특히 셋만 남겨두고 제작진이 떠났던 상황을 다룬 15분간은 영락없는 다음 주 예고편이었다.

그러나 이 영민한 제작진은 궁여지책으로 감성적인 구성을 밀어 넣은 것이 아니라 출연진의 성격에 맞게 콘셉트 자체를 <꽃보다 할배>와 달리 한 것으로 보인다. <꽃보다 청춘>은 유희열을 ‘유희견’이라고 칭하는 등 이들이 그간 방송을 통해 보여준 음악 외의 코믹 캐릭터를 활용하지만 기대진 않는다. 남미라는 거의 마지막 미지로 남아 있는 여행지를 보여주는 볼거리 차원의 접근과 중년을 관통하고 있는 세 남자를 통해 청춘과 관조 사이에선 감정의 공감, 이 두 가지 차원으로 방향을 좁힌다.



물론, 드라마도 성공시켰던 제작진답게 윤상의 배변 문제나 축구 볼 때 미묘하게 겉도는 등의 디테일을 발견하고 배열해서 캐릭터를 입체적이고 매력 있게 만든다. 윤상의 어려움과 아픔, 이적과 유희열의 긍정 에너지는 시청자들도 밝게 만든다. 또 이 셋 사이의 갈등과 화합을 아코디언 다루듯 주무르며 마치 우정에 관한 연주를 한다. 그 한편에선 <1박2일>(이번 시리즈에 새로 합류한 신효정 PD와 최재영 작가는 나영석 PD와 <1박2일>을 함께했다)과 같은 주말 버라이어티의 독한 설정을 가미했다.

<꽃보다 할배>가 캐릭터를 부각해 스토리와 할배들의 거침없는 행보와 이를 받아주는 짐꾼의 시선을 넣어 예측불가의 긴장감과 의외성을 주조했다면 이번에는 캐릭터를 귀엽게 부각하는 것을 넘어서 공감과 위안이란 정서적 차원으로 연출한다. 지난 20여 년 간 대중음악계의 한 자리를 차지해 치열하고 멋진 젊은 날을 함께 살아온 평균 43살의 뮤지션들이 졸지에 소년으로 돌아간 여행은 상징적인 자화상이다. 진정 청춘이라 불리던 시절 열심히 앞만 보며 살다가 가족도 꾸리고 어깨도 무거워지고, 책임져야 할 것도 많아진 어느 날 중년들이 쉼표를 찍고 돌아보는 그 순간이다.



윤상, 유희열, 이적은 음악이라는 본업 이외에 라디오와 예능을 통해 훨씬 친숙해진 캐릭터와 패밀리지만 <꽃보다 청춘>은 그 캐릭터에 기대지 않는다. <꽃보다 청춘>은 이적이 윤상에 대해 인터뷰 했던 말을 빌리자면, 이러한 중년과 버거운 일상을 헤쳐 나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유쾌한 지지다. 인생을 관조할 나이에 청춘을 부러워하고 또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던 ‘할배들’ 하고는 당연히 입장이 다르다. 오히려 더 시청자들의 정서에 가깝다. ‘우리도 이제 지났어.’ ‘어른 같지도 않고 청년같지도 않고.’ 이런 멘트들은 40대는 물론이요 이들의 전성기 시절 음악을 듣고 자란 이제 막 달리면서 호흡이 가빠진 20~30대들에게도 울림을 준다.

사막 오아시스 마을에서 소년처럼 뛰어놀던 이들은 어느 순간 잠시 여행을 멈추고 소년에서 ‘아빠’로 돌아온다. 아이들하고 꼭 다시 와보면 좋겠다고, 아이들이 정말 재밌어 할 것 같다는 아빠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인생과 여행, 우정에 대한 인터뷰에 이어 음악이 한 동안 깔리는 이런 순간순간의 멈춤에 시청자들은 웃음의 가치를 넘어선 힐링이란 정서적 위안 차원의 재미를 느낀다. 건강에 문제가 있었던 윤상에게도 이번 여행이 좋은 기회이자 쉼표이듯, <꽃보다 청춘> 페루 편은 살다보니 ‘모든 것이 빨리 지나간다’는 것을 알게 된 사람들에게 잠시 멈추고 돌아볼 수 있는 쉼표이자, 따뜻해지고 또 힘을 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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