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형래쇼\', 심형래와 개콘의 만남이 짠한 이유

[정덕현의 스틸컷] "야 김관장. 옛날에도 별 볼 일 없더니 아직도 이렇게 칙칙한 곳에서 생활하나? 어?" '심형래쇼'에서 과거 심형래가 했던 '내일은 챔피언'을 재연하는데, 김병만이 경쟁 도장 관장으로 출연한다. 김병만은 "외국에서 아주 좋은 물건을 하나 가져왔다"며 스파링을 제안한다. 스파링 상대는 다름 아닌 내복이(내복을 입고 있다), 심형래다. 나이트 가운을 입고 등장한 심형래는 슬랙스틱의 고수답게 연실 맞고 깨지고 넘어지면서 본능적인 웃음을 자극한다. 심형래식의 몸 개그가 '개그콘서트'와 만나는 순간이다.
"1982년에 KBS공채 1기 개그맨으로 데뷔하셔가지고 벌써 코미디 인생이 이제 30년이 다 되어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꾸준히 국민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집니다." 전현무 아나운서의 상찬으로 시작한 '심형래쇼'. 하지만 정통 코미디 개그가 늘 그렇듯이 곧이어 반전이 이어진다. 이봉원이 함께 출연한 엄용수에게 "용수형은 몇 년 됐죠?"하고 묻자, 엄용수가 자신은 31년이 됐다며 1년 빠른 자신의 사연을 줄줄이 늘어놓는다. 그러자 듣다 못한 심형래, "이게 엄용수쇼가 아니에요"라고 말하고 전현무는 급하게 "심형래의 코미디언 30년 이야기는 여기서 마치기로 하겠습니다"하고 마친다.
정통 스튜디오 코미디 시절을 봐왔던 시청자라면 이런 풍경은 너무나 낯익은 것이다. '심형래쇼'는 그 익숙함을 먼저 스튜디오로 끌어오면서 시작한다. 물론 다른 풍경이 있다.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방청객이다. 개그콘서트 후배 개그맨들로 이뤄진 방청객은 심형래라는 한 때를 풍미한 전설의 코미디언을 향해 박수를 치고 환호를 보낸다. 정통 코미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배에 대한 예우일 것이다. 실제로 심형래는 그런 존경을 받을만한 인물이다. 그는 임하룡, 이경래, 이상운 같은 코미디언들과 합을 맞춰 당대 최고의 슬랙스틱 코미디를 보여주었다.
'심형래쇼'는 그래서 당대 인기를 끌었던 '변방의 북소리', '내일은 챔피언', '동궁마마는 아무도 못말려', '영구야 영구야'를 차례로 리메이크해 보여주었다. 너무나 유명해 지금 봐도 선하게 기억이 나는 그 장면들을 심형래와 후배 개그맨들이 재연하는 과정은 충분히 보는 이를 흐뭇하게 해주었을 것이다. 특히 '동궁마마는 아무도 못말려'에서는 '개그콘서트'의 코너들이 삽입되면서 심형래 개그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두드려 맞고 쓰러지고 넘어지고 깨지는 심형래 코미디의 맛 역시 여전했다. 분명 설 특집 방송으로 '심형래쇼'는 잘 기획된 프로그램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심형래쇼'의 그 돌아온 유쾌한 웃음 끝에는 씁쓸함이 남았다. 현재 위기 국면을 맞고 있는 코미디 때문이다. 아마도 '심형래쇼'의 기획에는 작금에 도래한 코미디의 위기를 직시하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겠다는 뜻도 있을 게다. 하지만 돌아온 슬랩스틱의 옛 웃음과 현재 위기에 처한 코미디가 가야할 길은 너무 다른 것이 현실이다. 옛 웃음은 분명 반갑고 즐거운 일이지만, 그것이 코미디의 미래는 아니라는 얘기다.
심형래 본인이 말한 것처럼, 현재의 코미디가 위기를 넘기 위해서는 새로운 소재와 형식을 찾아내야 한다. 사실 '개그콘서트'가 등장한 이면에는 과거 위기에 처한 콩트 코미디를 넘어서기 위한 것이었다. 무대 개그에 경쟁 시스템을 붙이자, 어딘지 느슨했던 코미디들은 팽팽해졌다. '개그콘서트'가 코미디의 부활을 알리자, 타 방송사에서도 잇따라 비슷한 무대개그를 선보이면서 방송사 간의 경쟁 구도도 이뤄졌다. 하지만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서 유일하게 주목받는 코미디 프로그램으로 '개그콘서트'만이 남게 된 것이다. 이제 심지어 김병만이 타 방송사 사장님께 "코미디 프로그램을 살려 달라"고 말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심형래쇼'는 충분히 향수를 자극하는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러한 과거에 대한 상찬이 현재 코미디가 직면한 위기를 넘게 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과거를 끌어오는 게 나쁘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것이 현재와 어떻게 공감하고 어우러지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다. '내일은 챔피언'에서 함께 가구를 끌어올리기 위해 잡고 있던 줄을 동료들이 놓자 심형래가 줄을 잡고 연거푸 바닥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심형래는 점점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 "줄을 놓잖아? 사람이 다쳐. 나는 괜찮아. 근데 밑에 사람이 다쳐."

아마도 지금 코미디가 처한 상황이 이렇지 않을까. 코미디는 그 옛 형식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재에 더 집중해야 한다. 웃어줄 관객은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코미디 변화를 개탄할 것이 아니라, 그 웃음의 변화를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을 코미디로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할 때 그 해법이 있다.
슬랩스틱식 코미디에 리얼 요소를 그대로 접목시킨 김병만은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아닌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병만 같은 스타 한두 사람으로(심지어 과거의 전설이 부활한다고 해도) 지금 코미디가 부활하기는 너무 힘겨운 일이다. 그래서 김병만이 목숨을 걸고 개그 이상의 기예를 선보이거나, 오십줄을 넘긴 심형래가 내복에 연실 얼굴을 맞아가며 웃음을 주려 노력할 때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진다. 그 어깨가 너무나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칼럼니스트 정덕현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 = KB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