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그녀’, 가수가 한다고 다 ‘비긴 어게인’ 될까

[엔터미디어=정덕현의 네모난 세상] 다양성 영화 <비긴 어게인>이 입소문만으로 250만 관객을 훌쩍 넘긴 까닭은 무엇일까. 신드롬에 가까운 흥행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비긴 어게인>의 흥행동력을 만든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음악’이다. 그 영화에서 음악을 빼버리면 그저 그런 남녀의 작은 성공기 정도에 그쳐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몰입이 더해지자 이 평범해 보이는 스토리는 대단히 특별한 순간들로 다가왔다.

음악에는 그런 힘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음악이 들어간다고 해서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지는 않는다. SBS 수목극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이하 내 그녀)>를 <비긴 어게인>과 비교하는 건 당치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드라마가 가진 문제를 파악하는데 그 비교점으로서 <비긴 어게인>을 거론하게 되는 건, 똑같이 음악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거기에 아무런 감흥이 느껴지지 않는데 대한 깊은 안타까움 때문이다.

<내 그녀>는 음악을 소재로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음악의 묘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작곡가를 꿈꾸는 윤세나(크리스탈)가 피아노 앞에서 연주를 하고 노래를 할 때 그것이 이현욱(비)에게는 과거 사고로 잃은 옛사랑의 노래로 오버랩되지만, 단지 장면만 그렇게 보여질 뿐 그것이 주는 애절함 같은 것들이 전혀 느껴지질 않는다. AnA라는 기획사가 그려내는 아이돌의 이야기는 지나치게 스테레오타입에 머물러 있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갈등 또한 틀에 박힌 신데렐라 이야기의 변주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연기돌의 한계는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이 드라마는 무엇보다 캐스팅에 있어서 많은 허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틀에 박힌 아이돌 그룹의 연기를 하고 있는 인피니트의 엘과 호야는 등장할 때마다 드라마의 몰입을 방해하는 연기의 한계를 보여준다. 남녀 주인공 역할인 비와 크리스탈 역시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부자연스럽다. 크리스탈이 연기하는 윤세나가 전형적인 캔디 캐릭터라면 거기에 걸맞는 선한 느낌으로 승부했어야 하지만 그것이 잘 묻어나질 않는다.



이런 사정은 과거의 상처로 인해 한껏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현욱이라는 인물을 연기하는 비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이 캐릭터 역시 너무 전형적이다. 상처를 갖고 있는 왕자님 캐릭터. 그는 윤세나의 작곡가로서의 가능성을 보고 그를 깨워줘야 하는 위치에 있지만 그 음악적인 이야기는 그다지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기획사 내부에서 벌어지는 틀에 박힌 신데렐라를 구원해주는 왕자님 이야기에 머물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단지 아이돌이 연기한다는 것에 대한 편견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비긴 어게인>에서 그레타(키이라 나이틀리)의 남자 친구인 데이브를 연기한 애덤 리바인을 보라. 굉장한 연기라고 보긴 어렵지만 최소한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괜찮은 연기를 보여준다. 물론 그것은 감독이 만들어낸 것이다. 노래하는 아이돌로서의 애덤 리바인 그 자체를 영화가 고스란히 끌어들여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 연기가 자연스럽게 보였던 것.

<내 그녀>에서 연기돌의 문제는 단순한 편견이 아니다. 물론 음악을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에 가수들이 캐스팅된 것이 장점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비긴 어게인>에서 극적 몰입을 만들어내는 건 아담 리바인이 아니라 연기자인 키이라 나이틀리다. 그녀는 노래실력은 조금 부족할지 몰라도 완벽한 몰입을 통해 그 평이해 보이는 노래조차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드라마나 영화는 소재가 음악이라고 해도 우선 중요한 것이 연기를 통한 몰입이다. 그것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음악은 스토리와 겉돌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문제는 연기돌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음악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정작 음악적 경험을 전혀 주지 않고 대신 전형적이고 식상한 스토리에 매몰된 대본이 그 일차적인 원인이다. 연기돌을 캐스팅했다면 좀 더 정교하게 그들을 어떻게 극중에서 자연스럽게 활용해 최대치의 극적 효과를 낼 것인가를 고민했어야 한다.

<내 그녀>가 지금이라도 대중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이야기 전개에 급급한 현재의 흐름을 벗어나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드라마가 메시지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음악 자체가 주는 그 기적 같은 순간들을 어떻게 감성적으로 시청자들에게 느끼게 해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음악이 더 중요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똑같은 음악이 나와도 먼저 그 음악에 몰입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들을 드라마가 포착해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것이 아니라면 이 드라마는 스토리에서도 연기에서도 총체적인 부실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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