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필버그가 새롭게 들고 나온 21세기판 ‘구니스’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여러분들 중 리처드 도너의 [구니스]를 본 사람들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아주 제한된 세대만이 스티븐 스필버그의 공장에서 나온 이 영화를 온전하게 기억하고 있다. 80년 중반에 청소년으로 분류되었던 몇 안 되는 사람들 말이다. 그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유치한 아이들 영화라고 여기고 건너뛰었다. 이들보다 나중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 영화에 별 관심이 없으며 어쩌다 본 아이들은 유치하다고 생각한다. 당시 어른 관객들에 대해서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최근에 나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다시 볼 기회를 가졌는데, 시끄러운 초등학생들로 가득 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두 시간 동안 갇혀 있는 기분이었다. 원래 그런 영화였던가? 물론 그랬다. 그 때도 다를 건 없었다. 단지 나는 그 경험을 어른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어린 관객들에게 [구니스]는 해방을 의미했다. 당시 스필버그와 그의 동료들이 만들었던 수많은 청소년 영화들이 그랬다. 적어도 스필버그는 그 나이 또래 (남자)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었고 그것이 영화라는 매체 안에 들어가 왜곡되길 바라지 않았다. 물론 스필버그 영화에 나오는 아이들은 실제 아이들보다 욕은 상대적으로 덜 한다. (요새 미성년 아이들의 언어를 그대로 투영한다면 그 영화들은 몽땅 R등급을 받는다.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우리가 건전한 청소년 영화로 기억하는 [빌리 엘리어트]는 미국에서는 R등급이었다. 모두 욕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를 제외한 실제 아이들의 거의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조잡하고 유치하고 지저분하다고 해도 스필버그 일당들은 외면하지 않았다. [구니스]가 그 특정 세대 사람들에게 여전히 컬트영화로 군림하고 있는 건 그 영화가 당시 아이들의 현실과 꿈을 거의 완벽한 패키지로 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게 이 영화의 결정적인 단점이기도 하다고 생각하지만 여기서부터 내 사사로운 의견 따위는 별 의미가 없다.
J.J. 에이브럼스가 그의 신작 [슈퍼 에이트]의 첫 번째 공식 트레일러를 인터넷에 풀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외쳤던 것도 “[구니스]!”였다. 자전거를 타고 소도시를 질주하며 그들 마을에 발생한 무언가 멋지고 엄청나고 무서운 것을 추적하는 아이들. 게다가 시대배경이 1979년이라고? 순식간에 이 영화는 내 기대작 리스트에 올랐다. 심지어 나는 [구니스]를 그리 좋아하지 않으며, [슈퍼 에이트]가 모방했을 게 분명한 더 훌륭한 진짜 스필버그 영화들이 눈에 보이는 데도, 나에게 이 영화는 J.J. 에이브럼스의 [구니스] 영화였다.

직접 본 [슈퍼 에이트]는 [구니스]보다 훨씬 나은 영화였다. 적어도 내가 ‘잘 만든 영화’라고 쉽게 인정할 수 있는 영화였다. 다시 한 번 [구니스]를 보려면 어느 정도의 짜증의 폭발을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슈퍼 에이트]를 보는 동안 나는 짜증을 내는 대신 향수 섞인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영화가 공들여 재현한 [구니스]스러운 장면들을 감상할 수 있다. 주인공 아이들이 구토물을 쏟아내고 유치찬란한 말장난과 욕설을 퍼붓는 동안에도 [슈퍼 에이트]는 [구니스]보다 세련되고 심지어 우아하기까지 한 영화였다. 이것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쉽게 말하기 어렵다. 그냥 다른 것이리라. 아마 지금의 J.J. 에이브럼스는 80년대 당시 [구니스]를 만들었던 사람들보다 조금 더 어른인 것이리라.
그러나 [슈퍼 에이트]가 멋진 ‘스필버그’ 영화이고 [구니스] 영화임은 달라지지 않는다. 회고와 향수의 변수를 제외한다면, 에이브럼스는 [구니스]나 스필버그 초기 영화들이 했던 것과 거의 같은 일을 했다. 아이들이 속한 현실 세계를 정확히 그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들의 꿈과 환상까지 그대로 담아내는 것이다. 그 결과물로 완성된 [슈퍼 에이트]는 사실적인 어린이 영화보다 더 온전한 삶을 담고 있다. 아이들은 현실의 영역에서만 존재하지 않으며, 어떤 때는 공군 수송 열차에서 달아난 거대한 살인 괴물이 소도시에 사는 평범한 소년의 정신과 감정을 그리기 위해 필수적일 때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드문지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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