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까지 자존심 지킨 ‘아빠 어디가’ 제작진에 경배를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아빠 어디가>를 처음 봤을 때 전율을 느꼈다. 리얼버라이어티를 넘어선 진정한 리얼이었고, 정글의 생존을 넘어선 진짜 시골 여행이었다. 아이들은 방송문법을, 제작진의 요구사항을 무참히 파괴했다. 당시 오늘날의 강남처럼 예능대세였던 광희의 출연분이 어떻게 망가지고 출연이 무산되는지가 그 증거다.

아이들의 캐릭터는 누가 잡아줄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제작진과 출연자의 구도 이전에 아빠랑 아이들부터 각을 새로 잡아야 할 상황이었다. 거기서 ‘지켜볼 맛’이 생겼다. 정해진 각본도, 방향도 그릴 수 없는 좌충우돌의 묘미. 아빠와 아이들 사이의 서먹한 관계는 성장 드라마를 위한 훌륭한 발판이었다. 엄마와 떨어져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가까워져갔고, 요리 하나 못하는 아빠들의 고군분투가 이어졌다. 아이들과 놀아준 적 없는 성동일 같은 아빠부터 딸바보 송종국, 친구 같은 아빠 윤민수, 이종혁 등 다양한 부자지간은 다채로운 볼거리를 제공하며 공감의 정서를 불러일으켰다.

그 위에 꾸밈없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이 빛났다. 풍족한 환경에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여주는 ‘정형’된 행복을 전시하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빠와의 관계개선은 물론 새로운 친구들, 삼촌들과 함께 모여 어우러지는 새로운 ‘관계’에서 아이들은 뜻밖의 모습을 보여줬다. 민국이의 울음을 자신이 감당하고 싶어 한 윤후는 지아와 ‘썸’을 탔고, 의젓한 성준, 엉뚱해서 귀여운 준수처럼 성격이 확연하게 다른 아이들이 어우러지면서 함께했다.

바로 이런 모습이 <아빠 어디가>의 참 매력이자 여타 육아 프로그램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이다. 여기에 지금은 안정환과 찰떡콤비가 됐지만 송종국과 김성주 듀오의 활약, 엉뚱함이 아이들 뺨치는 매력 터지는 이종혁과 가장 보통 아빠에 가까운 성동일의 조합은 예능 프로그램다운 익숙한 안정감을 선사했다. 원조이면서 가장 실험적이고 가장 정서적으로 다가온 육아예능은 이렇게 완성됐다. 후발주자들의 훔쳐보기보다 한 차원 심화된 미션에 도전해 성공을 거머쥐었다.



관계맺음을 통한 성장을 지켜보는 감동은 진하다. 아이들의 감사편지에 아버지들은 울먹였다. 아이들 때문에 산다는 김성주의 말은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아빠 어디가>에는 그런 공감이 있다. 늘 소중하지만 다시 한 번 그 소중함을 깊이 느끼게 되는. 지난 1년 혹은 2년간의 추억을 간직하자며 마지막 잠자리에 드는 아빠와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단순히 아쉽다가 아닌 내 가족, 우리 주변을 떠올리게 한다. 정웅인의 말대로 결국은 모든 것과 헤어지겠지만 행복했던 순간의 기억은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된다. 안정환이 아버지가 우리 가족의 왕이라고 쓴 리환이의 편지를 계속 들여다보고 사진 찍어놓는 것도 다 그 때문이다. <아빠 어디가>는 그 순간을 예능을 통해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문제는 <아빠 어디가>의 기틀이 성장 드라마라는 점이다. 성장이란 목적을 기본적으로 갖기 때문에 진행에 가속도가 붙지 않으면 김이 새고, 목적을 달성하면 동력은 상실된다. 아빠와 아이가 친해지기가 목적이자 미션이다. 서투른 부자 관계가 1년도 채 안 되어 무르익자 힘이 빠진 것은 그 때문이다. 이미 아빠와 아이가 가까워질 만큼 친해졌음을 시청자들 모두가 안다. 김성주가 어른 스킨을 쓰면 수염이 난다고 한 다음 민율이가 잘 때 수염을 그려놓고 장난치는 건 물론 재밌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삼둥이의 육아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송일국에 비할 바가 안 된다. 그럼에도 잘나가는 경쟁 프로그램들을 따라 ‘훔쳐보기’에 매진하지 않은 것은 <아빠 어디가> 제작팀의 탁월한 선택이자 자존심이었다. 그 선택에 감사하고 그 용기에 경배를 바치는 바다.



하지만 <아빠 어디가2>는 캐스팅을 실패했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난 <일밤>의 구세주에서 2년 만에 폐지에 놓인 건 시즌2 캐스팅에서 너무 심하게 밀렸기 때문이다. 육아예능이 기본적으로 전시라는 차원에서 캐스팅이 무척 중요하지만 관계를 통한 성장을 추구하는 <아빠 어디가>는 모든 걸 함께 나누기 때문에 단 한 명의 누수도 허락지 않는다. 시즌1을 준비할 당시 광희의 투입은 어떻게 펼쳐질지 잘 모르고 한 것이라지만, 이번 캐스팅은 그런 면에서 총체적 패착이었다. 아이들이 출연하는 만큼 여론은 더 맑아야 하고 조화를 생각해야 한다. 아빠들 간의 시너지를 생각했어야 했다. 시즌2는 안정환과 김성주라는 명콤비를 남겼지만 터줏대감 성동일, 윤민수를 비롯한 나머지 아빠들의 존재감이 너무 죽어버렸다. 아이들의 존재감도 아빠를 따라갔다.

요즘 극장가에 부성애를 내세운 영화들이 눈에 띈다. <국제시장><허삼관>같은 국내 대작들 사이에 <아메리칸 셰프>라는 영화도 그런 영화다. 일에만 신경 쓰고 살면서 가족과 아들에게 사랑을 베풀지 못한 덜 자란 요리사 아빠가 직장에서 쫓겨난다. 그러다 우연찮게 아들과 푸드트럭 여행을 함께하면서 가까워진다는 전형적인 헐리우드 이야기다. 다만 어떤 계기, 함께 이뤄나가는 성취, 그리고 성장 드라마의 호흡이란 점에서 <아빠 어디가>가 생각해볼 수 나름의 힌트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1년이면 짧지 않은 세월이다. 민율이가 10cm나 자란 시간이다.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고 큰다. 특히 유치원과 학교생활을 하면서 그 속도는 훨씬 더 빨라진다. 문제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그보다 더 빠르게 변한다는 것이다. 다음 여행을 떠난다면 경쟁 프로그램 아이들과 비교하기 전에 이 점을 염두에 뒀으면 한다. 방송에 출연했던 아이들이 모두 건강히 잘 지내길 기원하면서 <아빠 어디가2>는 끝났지만 안정환과 류진의 말대로 아빠와의 여행이 이것으로 끝나지 않고 꼭 다시 돌아오기를 바란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